‘주 52시간 예외적용’ 빠진 반도체법 패스트트랙 지정에 업계 성토
AI 반도체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현실 외면한 규제”
미국·대만·중국은 R&D 무제한 속도전… “기술 역전 코 앞”
‘주 52시간 예외적용’이 빠진 반도체특별법 제정안이 더불어민주당에 의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되자 국내 반도체 업계는 연구개발(R&D)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 중국, 대만 등 주요 경쟁국들은 인공지능(AI) 반도체 R&D에서 ‘속도전’을 펼치고 있는데, 거대 야당은 현장의 목소리를 끝까지 외면하며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하향평준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의 대권 주자인 이재명 후보가 최근 방문한 퓨리오사AI를 비롯해 AI 반도체 기업들은 정치권을 향해 성토하고 있다. ‘K-엔비디아’를 외치며 AI 반도체 산업 육성을 공약으로 내세운 이 후보가 정작 반도체 업계에 불리한 규제를 고수하면서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비판도 나온다. 퓨리오사AI, 딥엑스, 리벨리온 등 국내 AI 반도체 다크호스들은 주 52시간 규제 철폐를 요구하고 있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주요 기업들도 민주당의 패스트트랙 지정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민주당, ‘주 52시간 예외 적용’ 빼고 패스트트랙 강행
국회는 지난 17일 본회의에서 반도체특별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안건을 무기명 표결한 결과 찬성 180명·반대 70명·기권 3명·무표 5명으로 가결했다. 반도체특별법은 반도체 산업 지원 방안을 담고 있으나, 패스트트랙에 오른 민주당의 법안에는 업계가 요구해 온 반도체 산업 주 52시간 예외 조항이 빠졌다. 주 52시간 예외 조항을 명시하는 것에 대해 반대해 온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이 조항을 제외한 법안이라도 먼저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로써 주 52시간 예외 조항을 담지 않은 반도체특별법은 최장 330일 뒤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반도체 업계는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이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들이 첨단 반도체 R&D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주요 경쟁국들은 R&D 인력을 대상으로 근로시간 제한을 두지 않고 무제한 근무를 허용하고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최대 경쟁자인 대만 TSMC는 R&D 인력이 근무시간을 연장해 더 많은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보상을 철저히 하면 된다는 기조이다. 미국 애플, 퀄컴, 브로드컴 등은 애초에 근무시간과 관련한 규제 자체가 없다.
중국 반도체 기업 또한 R&D에 몰입도를 높이며 한국과의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의 텃밭이었던 D램,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에서 전례 없는 속도로 추격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실제 중국 CXMT는 2~3년 안에 불가능하다던 DDR5 D램 양산에 돌입했으며, 연내 D램 3강이 독점하고 있는 HBM 시장에도 진입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이 충분한 R&D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기술이 부지불식간에 역전될 가능성이 있다. 안현 SK하이닉스 사장은 최근 한국공학한림원 주최로 열린 ‘반도체특별위원회 연구결과 발표회’에서 “개발이라는 특수 활동에서는 (주 52시간제가) 부정적인 습관이나 관행을 만들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안 사장은 TSMC의 사례를 들며 “TSMC는 엔지니어가 늦게까지 일을 하면 특별수당을 주고 (야근을) 장려한다”며 “엔지니어가 개발을 하면 관성이 붙어 쭉 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 “현장 목소리 외면, 韓 경쟁력 망친다”
이재명 후보가 최근 방문한 퓨리오사AI를 비롯한 AI 반도체 업계에서도 정치권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계 고위 관계자는 “스타트업은 주 52시간제에서 대기업과는 또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AI 반도체 스타트업은 대기업을 쫓아가려면 적은 R&D 인력으로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일괄적으로 주 52시간제를 적용하면 현실적으로 경쟁력을 키우기가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엔지니어들이 일을 더 하고 싶으면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지금은 이것이 불법이 되니까 문제”라며 “필요한 만큼 더 해야 할 때도 위법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 편법이 동원되는 등 불필요한 리스크가 커진다. 우수 엔지니어 인력들이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연구개발을 해나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술 집약적인 반도체업의 특성상 엄격하게 주 52시간제를 유지하는 건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라며 “자발적으로 더 일하려는 엔지니어들에겐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고 그만큼 보상을 해주면 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한 임원은 “주 52시간 규제는 하향평준화의 전형이다. 집중 개발을 하는 시기에 (정치인들이) 며칠이라도 현장에 와보면 주 52시간이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프로젝트가 몰려있을 때는 임시방편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며 일부 직원들은 휴가를 쓰고 회사로 와서 일하는 경우까지 생긴다”고 지적했다.
대형 반도체 기업의 한 엔지니어는 “주 52시간 제도는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규제”라며 “미국 (고객사) 시각에 맞춰 오전 늦게 나와서 오후에 일하고 온라인 회의를 진행하다 보면 새벽을 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억지로 근로시간을 맞추려다 보니 실제 업무시간과 다르게 예외 시간을 입력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같은 엔지니어들에겐 업무 유연성이 필수인데 주 52시간에 묶여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누가 한국에 남아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AI 반도체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현실 외면한 규제”
미국·대만·중국은 R&D 무제한 속도전… “기술 역전 코 앞”
‘주 52시간 예외적용’이 빠진 반도체특별법 제정안이 더불어민주당에 의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되자 국내 반도체 업계는 연구개발(R&D)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 중국, 대만 등 주요 경쟁국들은 인공지능(AI) 반도체 R&D에서 ‘속도전’을 펼치고 있는데, 거대 야당은 현장의 목소리를 끝까지 외면하며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하향평준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의 대권 주자인 이재명 후보가 최근 방문한 퓨리오사AI를 비롯해 AI 반도체 기업들은 정치권을 향해 성토하고 있다. ‘K-엔비디아’를 외치며 AI 반도체 산업 육성을 공약으로 내세운 이 후보가 정작 반도체 업계에 불리한 규제를 고수하면서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비판도 나온다. 퓨리오사AI, 딥엑스, 리벨리온 등 국내 AI 반도체 다크호스들은 주 52시간 규제 철폐를 요구하고 있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주요 기업들도 민주당의 패스트트랙 지정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가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퓨리오사AI에서 AI 칩을 들고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민주당, ‘주 52시간 예외 적용’ 빼고 패스트트랙 강행
국회는 지난 17일 본회의에서 반도체특별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안건을 무기명 표결한 결과 찬성 180명·반대 70명·기권 3명·무표 5명으로 가결했다. 반도체특별법은 반도체 산업 지원 방안을 담고 있으나, 패스트트랙에 오른 민주당의 법안에는 업계가 요구해 온 반도체 산업 주 52시간 예외 조항이 빠졌다. 주 52시간 예외 조항을 명시하는 것에 대해 반대해 온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이 조항을 제외한 법안이라도 먼저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로써 주 52시간 예외 조항을 담지 않은 반도체특별법은 최장 330일 뒤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반도체 업계는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이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들이 첨단 반도체 R&D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주요 경쟁국들은 R&D 인력을 대상으로 근로시간 제한을 두지 않고 무제한 근무를 허용하고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최대 경쟁자인 대만 TSMC는 R&D 인력이 근무시간을 연장해 더 많은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보상을 철저히 하면 된다는 기조이다. 미국 애플, 퀄컴, 브로드컴 등은 애초에 근무시간과 관련한 규제 자체가 없다.
중국 반도체 기업 또한 R&D에 몰입도를 높이며 한국과의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의 텃밭이었던 D램,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에서 전례 없는 속도로 추격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실제 중국 CXMT는 2~3년 안에 불가능하다던 DDR5 D램 양산에 돌입했으며, 연내 D램 3강이 독점하고 있는 HBM 시장에도 진입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이 충분한 R&D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기술이 부지불식간에 역전될 가능성이 있다. 안현 SK하이닉스 사장은 최근 한국공학한림원 주최로 열린 ‘반도체특별위원회 연구결과 발표회’에서 “개발이라는 특수 활동에서는 (주 52시간제가) 부정적인 습관이나 관행을 만들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안 사장은 TSMC의 사례를 들며 “TSMC는 엔지니어가 늦게까지 일을 하면 특별수당을 주고 (야근을) 장려한다”며 “엔지니어가 개발을 하면 관성이 붙어 쭉 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 “현장 목소리 외면, 韓 경쟁력 망친다”
이재명 후보가 최근 방문한 퓨리오사AI를 비롯한 AI 반도체 업계에서도 정치권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계 고위 관계자는 “스타트업은 주 52시간제에서 대기업과는 또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AI 반도체 스타트업은 대기업을 쫓아가려면 적은 R&D 인력으로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일괄적으로 주 52시간제를 적용하면 현실적으로 경쟁력을 키우기가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엔지니어들이 일을 더 하고 싶으면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지금은 이것이 불법이 되니까 문제”라며 “필요한 만큼 더 해야 할 때도 위법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 편법이 동원되는 등 불필요한 리스크가 커진다. 우수 엔지니어 인력들이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연구개발을 해나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술 집약적인 반도체업의 특성상 엄격하게 주 52시간제를 유지하는 건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라며 “자발적으로 더 일하려는 엔지니어들에겐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고 그만큼 보상을 해주면 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한 임원은 “주 52시간 규제는 하향평준화의 전형이다. 집중 개발을 하는 시기에 (정치인들이) 며칠이라도 현장에 와보면 주 52시간이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프로젝트가 몰려있을 때는 임시방편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며 일부 직원들은 휴가를 쓰고 회사로 와서 일하는 경우까지 생긴다”고 지적했다.
대형 반도체 기업의 한 엔지니어는 “주 52시간 제도는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규제”라며 “미국 (고객사) 시각에 맞춰 오전 늦게 나와서 오후에 일하고 온라인 회의를 진행하다 보면 새벽을 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억지로 근로시간을 맞추려다 보니 실제 업무시간과 다르게 예외 시간을 입력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같은 엔지니어들에겐 업무 유연성이 필수인데 주 52시간에 묶여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누가 한국에 남아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