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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철의 안 보이는 안보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월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6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 첫 재판에서 내란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윤 전 대통령은 ”계엄과 쿠데타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군인이 총 들고 다니지만 절대 실탄 지급하지 말고 실무장 하지 않은 상태로 투입하되 민간인과의 충돌을 절대 피하라’고 지시했다”며 “평화적 대국민 메시지 계엄이지, 단기든 장기든 군정을 실시하고자 하는 계엄이 아니라는 것은 계엄의 진행결과를 볼 때 너무 자명하다”고 주장했다.

검찰총장과 군 통수권자였던 윤 전 대통령은 계엄의 법적 성격에 대해 누구보다 밝아야 하지만, 그는 계엄과 군정을 구별하지 않고 뒤섞어 말했다. 계엄은 군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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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 시민들은 ‘계엄=군정’으로 안다. 계엄이 선포되면 군인들이 전면에 나서 모든 권한을 장악한다고 여긴다. 이런 인식은 한국 현대사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1948년 제헌헌법에 대통령의 계엄선포권이 들어갔고 이후 한국전쟁과 군부독재를 거치며 계엄이 권력 유지와 권력 찬탈의 도구로 여러 차례 악용됐다. 특히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신군부가 자행한 국가 폭력은 “계엄 때는 군이 통치하며 시민에 대한 생살여탈권도 가진다”는 인식을 굳혔다.

2024년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뒤 특수전사령부 군인들이 서울 국회의사당 울타리 안에 들어와 있다. AFP 연합뉴스

계엄을 군정으로 혼동하는 이유는 계엄의 법적 성격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장군 출신 대통령들이 집권한 1990년대 초반까지는 전문가들이 군부의 위세에 눌려 계엄에 대한 연구 자체가 거의 없었고,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는 계엄 선포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여겨 계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병현 전 성균관대 교수는 논문 ‘계엄법의 기원과 문제점’에서 군정은 전쟁 때 군대가 점령한 적의 영토 내에서 점령군사령관 책임하에 실시하는 통치이고, 계엄은 적지가 아닌 자국 영토 안에서 헌법과 법률의 규정에 따라 행해지는 예외적 통치 행위를 말한다고 설명한다. 적과 교전하는 상태에서 헌법도 법률도 적용되지 않는 상태가 전쟁이고 군정인데 반하여 계엄은 한 나라의 헌법질서 하에서 계엄법이란 규정에 따라 실시되는 특수 통치방식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의 비극은 신군부가 계엄과 군정을 혼동한데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오병현 전 교수는 지적했다.

12·3 내란사태 당시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이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국회 출입 통제를 요청했고, 처음엔 조 청장이 법적 근거가 없어 못 한다고 했지만 박 전 계엄사령관이 “포고령을 확인해달라”고 하자 그는 포고령을 확인하고 국회를 봉쇄했다. 조 청장이 제시한 ‘국회 봉쇄’ 근거는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내용의 계엄사령부 포고령 1호다. 헌법은 비상계엄하에서도 국회나 정당의 권한 제한을 허용하지 않아 포고령 자체가 위헌이지만, 조 청장은 국회 출입을 전면 통제했다. 그는 지난해 12월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 참석해 “포고령이 발동되면 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헌법을 어긴 포고령이지만 계엄과 군정을 혼동해 ‘계엄 때는 헌법이 정지되고 계엄사령관이 마음대로 한다’고 오판한 것이다.

조지호 경찰청장이 지난해 12월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email protected]

계엄과 군정을 구별하는 것은 남북관계, 한미관계에서도 오래된 쟁점이다. 한국전쟁 때인 1950년 10월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북한 지역을 점령한 뒤 통치방식을 두고 한국과 미국이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당시 한국은 계엄을 주장했고 미국은 군정을 고집했다. 북한 점령 지역의 통치 주체와 방식에 대한 양국의 이견은 북한 지역에 대한 한국의 주권 인정에서 비롯됐다.

당시 미국은 “38선 이북에 대한 대한민국의 주권은 일반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과 그 군대는 유엔군의 일원으로 38선 이북 지역에서 군사작전과 군사점령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북한 점령지역은 한국군이 관할하는 계엄지구가 아니라 미군(유엔)이 통치하는 군정지역이란 것이다. 이에 대해 이승만 대통령은 “북한도 엄연히 대한민국 땅이다. 북한에 대한 주권행사는 응당 우리가 해야 한다”고 맞섰다. 북한 지역 통치 주체와 방식 논란은 중국군의 참전으로 북한 점령지역에서 후퇴함에 따라 가뭇없이 사라졌다.

지금도 미국은 유사시 북한 점령지역에는 계엄이 아니라 군정을 실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 유사시 상황 관리의 주도권을 미국에 넘겨주고 한국의 주권이 제약받는 상황이 우려된다.

2년 10개월간 국가안보를 책임졌던 윤 전 대통령은 누구보다 계엄과 군정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갖춰야 했지만, 헌법재판소 탄핵심판과 형사 재판에서 계엄에 대한 무지와 착각, 아전인수성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그는 지난 14일 첫 재판에서 ‘26년 검사 경력’을 직접 언급하며 후배 검사들에게 “공소장이 난삽하다”고 지적했지만 자신은 계엄과 군정을 혼동했다. 헌법재판소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한 ‘계엄 선포는 평화적인 대국민 호소 메시지’란 주장을 반복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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