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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충북대·한밭대 학생들, 스토킹 희화화 영상 올려
남성이 여성 무작정 뒤쫓는 '밤에 모르는 여자 집 바래다주기'
"피해자에 고통스러운 기억…범죄에 대한 사회의 감각 둔감화"


"밤에 학우 과방에 빨리 데려다주기"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학생회 인스타그램 캡처. DB 및 재판매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승연 기자 = 스토킹과 젠더 폭력으로 목숨을 잃는 피해자들이 잇따르는 가운데 대학생들이 이러한 범죄를 웃음 소재로 삼아 공분을 사고 있다.

어두운 골목길에서 남성이 여성을 무작정 쫓아가는, 일명 '밤에 모르는 여자 집 바래다주기'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며 즐기고 있는 것이다.

최근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학생들이 만든 인스타그램 소모임 계정에는 '흔한 전전(전기전자공학부의 줄임말)의 안전 귀가 서비스'라는 내용의 릴스(숏폼 영상)가 올라왔다.

영상에는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남학생이 여학생을 뒤쫓는 모습과 함께 '랜덤으로 아무 여자 골라서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기'라는 자막이 달렸다. 앞뒤 맥락 없이 남성이 여성에 시선을 고정한 채 뒤쫓아 달리는 모습, 여성은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며 달리는 모습이 약 10초 동안 이어진다.

이같은 영상은 스토킹 성범죄를 연상시킨다는 논란이 일었고, 지난 17일 해당 소모임 측은 영상을 삭제 조치했다.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어떤 포인트가 웃긴 것인지 모르겠다", "모르는 여자 쫓아가는 영상이 어떻게 바이럴되나"라며 유행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달렸다.

"랜덤으로 아무 여자 골라서 집까지 데려다주기"
[고려대 에브리타임 캡처. DB 및 재판매 금지]


유사한 논란은 충북대와 국립한밭대에서도 발생했다.

최근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학생회는 중간고사 간식 이벤트를 홍보하는 목적으로 인스타그램에 릴스를 게시했다. 남학생 3명이 여학생 1명을 뒤쫓는 모습과 함께 '밤늦게 공부하면 위험하니까 학우 과방 빨리 데려다주기'라는 자막이 달린 영상이었다.

누리꾼들의 비판이 거세자 학생회는 영상을 삭제했고, 지난 17일 입장문을 발표했다.

학생회는 "많은 여성이 두려워하는 귀갓길을 조롱하는 듯한 형식으로 구성됐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다"며 "사회적 문제를 가벼운 웃음 소재로 만들어 문제의식을 흐리게 만든 점 사과드린다"고 고개숙였다.

지난 15일에는 국립한밭대 산업경영공학과 학생회가 유사한 영상을 올렸다가 논란이 일자 이틀 뒤 게시물을 삭제했다. 영상에는 마찬가지로 남학생 3명이 여성 1명을 뒤쫓는 모습이 담겼으며, '시험공부 하다 늦은 여학생 빨리 데려다주기'라는 자막이 달렸다.

'시험공부하다 늦은 여학생 빨리 집 데려다주기'
[한밭대 산업경영공학과 학생회 인스타그램 캡처. DB 및 재판매 금지]


이러한 '밤에 모르는 여자 집 바래다주기' 콘텐츠는 지난해 말 틱톡을 중심으로 해외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주로 어둡고 한적한 길에서 모자·복면을 쓴 남성이 무작정 여성을 뒤쫓아가는 모습이 담긴다. 쫓기는 여성이 소리를 지르거나, 남성이 위협적인 소리를 내거나, 여성의 팔을 붙잡자 이를 뿌리치는 연출이 가미되기도 한다.

이같은 영상은 챌린지처럼 확산했고, 제목 뒤에 번호를 붙여가며 유사한 영상물을 게시하는 것이 하나의 놀이처럼 됐다.

높은 조회수와 많은 '좋아요'도 달렸다. 틱톡에 게시된 '밤에 아무 소녀들이나 안전하게 집에 바래다주기 파트 72'(Helping random girls get home safely at night Part 72) 영상은 조회수 5천710만회, '좋아요' 840만개를 기록했다.

챌린지를 패러디해 여성 대신 아이들을 뒤쫓는 영상물까지 만들어지는 형국이다.

'여자를 안전하게 집 바래다주기' 틱톡 영상물
[틱톡 캡처. DB 및 재판매 금지]


네이버 이용자 'ds***'는 "실제로 저런 식으로 쫓기다 잡혀서 성폭행당하고 죽임을 당한 여성 피해자들이 수없이 많다. 범죄 과정을 재현하는 영상이 웃긴가"라고 비판했다.

엑스(X·옛 트위터) 이용자 'ma***'도 "스토킹 범죄로 비칠 수 있는 내용을 콘텐츠화해서 릴스로 게시하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썼다.

스토킹을 희화화하는 대학생들의 무분별한 행동은 전 여자친구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찾아가 가족 앞에서 흉기로 살해한 서동하(2024년), 스토킹하던 여성의 일터에 찾아가 흉기로 살해한 전주환(2022년),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며 여성의 집에 찾아가 동생·어머니와 함께 살해한 김태현(2021년) 등 끔찍한 범죄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심지어 이러한 영상이 공분을 사고 있음에도 여전히 뭐가 문제냐는 반응을 보이는 학생들도 상당수다.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익명으로 글을 쓴 재학생은 "진짜 스토킹한 것이 아니라 비슷한 릴스를 따라 한 것이지 않느냐"며 과도한 비판이라고 주장했고, 또 다른 재학생도 "누가 봐도 짜고 치는 상황인데 물어뜯는 것이 무섭다"고 댓글을 적었다.

추모와 규탄의 목소리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2022년 9월 19일 서울 중구 신당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스토킹 범죄 피해에 대한 대응책 촉구 기자회견하는 참가자들 뒤로 시민들의 추모 메시지 및 꽃다발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2025.4.18.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18일 "성범죄 및 스토킹 피해자들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환기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곽 교수는 "촬영한 이들은 단순한 놀이로 생각하겠지만 그 이상으로 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감각을 둔감화 시키고 기존 가치관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더 나아가 실제로 문제 행동을 하는 사람의 책임 의식이 낮아지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합리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대학 교수는 "콘텐츠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오로지 '조회 수'가 되면서 점차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영상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라며 "플랫폼 이용자들이 단 하나의 기준, 바로 대중성에 기반해 움직이면서 발생한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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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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