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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득실이 명확히 밝혀지면
환경, 문화, 지역의 정체성 같은 더 소중한 가치를 위해
얼마나 쓸 수 있을지 따져볼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인지적 판단과 정서적 요인이 얽히고 무의식의 영역도 있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도 모른다. 더구나 충동적 요인이나 제약조건 때문에 마음대로 행동하지도 않는다. 죽기 살기로 반대하는 ‘싫다’와 잘 모르지만 그냥 ‘좋다’는 답을 합산해서 ‘중립’이라 해석하는 것도 황당한 일이다. 따라서 몇 줄의 설문조사로 다수의 속마음을 읽어 실제 행동을 예측한다면 그야말로 무식해서 용감한 짓이다.

설문조사(survey)는 명확하게 정의된 질문을 조사자나 응답자의 편향(bias)이 작용하지 않게 설계할 때 의미가 있다. 단어의 선택, 질문의 배치와 배경설명에 따라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확실한 차이가 드러나지 않으면 함부로 결론지을 수 없다.

쏟아지는 정치 여론조사들에 대해서 이런 한계들이 알려지고 이를 이용한 ‘왜곡과 조작’이 발견되면서 설문조사 기법에 대한 회의가 늘고 있다. 지역이나 나이를 꾸며서 답하는 응원전도 등장한다. 그럼에도 다른 대안이 없으니 조사는 계속되고 정당의 후보 선출은 물론 주요 정책결정에 활용되고 있다.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 심층 면접과 토론으로 논점을 찾아 설문을 만들어야 하고, 통제된 조건을 만들어 실험결과를 얻거나 행동특성을 반영한 측정치로 통계분석을 해서 보완해야 한다. 예컨대 기업인들에게 경기 전망을 묻는다면 같은 조건이던 과거의 상황과 비교하고 실제 투자집행 동향을 살펴야 마땅하다.

절실한 생각이 담긴 단단한 한 표와 별 생각 없이 답한 떠다니는 한 표의 차이를 반영하면 더 의미있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이른바 지불의사(willingness to pay)를 묻는 방법이다.

◆내 돈 낼 때는 다르다

사람들은 좋다고 여겨지는 사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당장 내 일도 아니고(질문자를 포함해서) 다른 사람들 눈치도 본다. 하지만 막상 자신의 이해득실이 걸렸을 때는 달라진다.

북한과 경제협력에 적극적인 H사는 정부의 전향적 통일정책과 여론의 반응에 고무돼 있다. 남북의 관계자가 직접 만나고 관련 단체들의 교류행사가 이어지면서 정책자금 지원도 논의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남북교류와 경제협력에 대한 지지가 70%가 넘는다.

그런데 정책자금 조성을 위한 예비조사에서는 “북한을 돕기 위해 수입의 얼마를 낼 용의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90% 이상의 응답자가 2% 미만이라고 답했다. 좋은 일이지만 내 돈 낼 생각은 없다는 얘기다. 통일이라는 긍정적 가치가 돈이라는 싸늘한 현실이 만났을 때 벌어지는 일이다.

북한 돕기가 북한 동포 돕기와 다르고 경제협력과는 또 다른데 내 돈 갖다 쓰는 관련 단체나 기업, 북한 당국에 대한 속마음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추가적 재원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돈으로 사업이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알아보면 더 명확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대충 얻은 엉터리 조사 결과에 기대어 정책을 추진하다 엉망이 되는 것보다 훨씬 낫다.

A자치도는 신공항 건설을 놓고 난항을 겪고 있다. 반대하는 분들은 건설 과정의 환경파괴와 주민 불편을 주장하고, 찬성하는 쪽은 지역 관광객과 관련 사업들이 성장할 것임을 강조한다. 그런데 현지 사정을 심층 조사해보면 기존에 공항이 있는 지역의 주민과 사업자들이 매상이 줄고 부동산값 떨어질 것을 우려한 경우가 제법 많은데, 돈 얘기를 뒤로하고 여론의 지지를 얻기 쉬운 환경과 주민 편의를 명분으로 삼은 면이 있다. 신공항으로 이득을 보는 외지 방문객들이 직접 정책수요자인데 이들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았으니 난감한 일이다.

대안을 생각해보자. A자치도에 가는 항공권 구매자 혹은 탑승자에게 신공항을 만드는 데 얼마를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 물어볼 수 있다. 구공항 지역주민과 사업자들에게는 얼마의 지원금을 받으면 신공항을 지지할 의사가 있는지 묻는다. 신공항 지역의 환경파괴와 주민 불편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으로 보상 의사를 물어보면 된다. 신공항으로 이득을 얻는 당사자들을 파악해서 이들에게 받을 수 있는 금액을 계산할 수 있다. 공항 건설과 관리, 입점 사업에 대한 입찰은 지불 의사를 그대로 반영한다.

이해득실이 명확히 밝혀지면 환경, 문화, 지역의 정체성 같은 더 소중한 가치를 위해 얼마나 쓸 수 있을지 따져볼 수 있다. 그래야 나라살림의 이해당사자인 전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고 항공사, 건설사, 장비업체, 여행사, 면세점 사업자, 택시·버스회사가 사업계획을 세울 수 있다.

◆한 번 더 생각한 솔직한 반응

현안에 대해 지불의사(혹은 수령의사)를 물어보면 응답자는 자신에게 주는 의미를 생각하고 경제적 가치를 따져본다. 막연한 생각으로 뻔한 답을 하는 경향이 조금은 줄어드는 셈이다.

돈 많이 내면 이기는 가진 자들의 게임을 만들자는 뜻이 아니다. 앞에서 본 북한 돕기에 대한 조사는 통일의 숭고한 가치는 익숙하지만 자신의 일로 생각하지는 않았던 응답자에게 자신의 참여의사를 돌아보고 지원의 구체적 내용과 방법을 따져보게 돕는다. 신공항 건설의 사례는 지불의사 혹은 수령의사를 따져보면서 당사자들의 이해득실이 드러나고 이를 종합한 합리적 정보판단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도심 교통혼잡을 막기 위해 주요 길목에서 통행료를 받는 경우가 있다. 사람마다 급한 사정이 있고 경제사정이 다른데 야속하지만 길목에서 경찰관이 물어보고 승인할 수도 없다. 대기하는 줄은 길어지고 승인받지 못해 돌아가는 시민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를 것이기 때문이다. 통행료는 그만한 대가를 지불할 의향이 있는지 확인하는 효과가 있다. 복지제도나 보험을 활용할 때 일정 금액을 부담시켜서 남용(overuse)을 막는 것도 같은 원리가 들어 있다.

민주사회에서 모든 사람의 의견은 소중하다. 자신의 인생이 걸린 일이면 더 소중하지만 아무 이해관계가 없어도 공동체를 위해 애써 고민하고 헌신하는 정성도 소중하다. 좋은 뜻이 있어도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이런 헌신에 대해 존경하고 나름의 보상을 한다. 지도자의 역할을 맡기기도 한다. 다른 의미의 지불의사가 작동하는 것이다.

◆엉터리 정책, 망하는 전략

전략경영은 단순히 물건 만들어 파는 수준을 넘어서 세상의 흐름을 읽어 기회와 위협을 판단한다. 나아가 세상 일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참여해서 유리한 여건을 만들어낸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들이 어떤 스토리로 세상을 바라보며 이것이 부딪히며 모여서 어떤 사회적 서사를 형성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막연히 좋은 말, 남들 다 하는 그럴듯한 얘기는 현실에 부딪히면 쉽게 바뀐다. 그대로 믿고 정책을 만들고 여기 편승해서 전략을 수립하면 망하기 딱 좋다. 이해관계가 걸린 일은 절실하므로 그 생각이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다. 지불의사를 반영한 조사는 한 번 더 생각하고 사안의 무게를 따져보게 만든다.

인터넷과 모바일의 시대, 인공지능은 사람들의 생각을 다각도로 읽을 수 있게 도와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수다에는 설문조사로 얻을 수 없는 솔직한 얘기들이 담겨 있고, 쇼핑과 미디어 시청의 기록은 ‘고민과 선택의 결론’을 보여준다. 어떤 고민으로 무엇을 얻고 지불했는지 살펴보면 지불의사의 더 깊은 속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일도 아니고 알지도 못하는 한마디와 생명과 재산이 걸린 절실한 주장을 똑같이 ‘한 표’로 생각하면 망한다. 남들 따라하는 좋은 말에 숨은 속내를 읽지 못하면 세상을 읽지 못해 망한다. 이런 어려운 일을 남보다 잘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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