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부처 이공계 비율 확대…의료분과는 이과 독식
자본권력은 이과가 절대다수, 법조와 정치권에 영향력
의사만 유일한 기득권, 대안 없는 무한 투쟁 지속
국민이 부여한 '이국종', 후배에 희망의 메시지 던지길
자본권력은 이과가 절대다수, 법조와 정치권에 영향력
의사만 유일한 기득권, 대안 없는 무한 투쟁 지속
국민이 부여한 '이국종', 후배에 희망의 메시지 던지길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56)이 최근 군의관 대상 강연에서 "조선반도는 입만 터는 문과 X들이 해 먹는 나라"라며 필수의료 붕괴를 정책 책임자들에게 돌렸다는 온라인 글이 풍파를 낳고 있다. 발언의 진위 여부를 떠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뭣도 모르는' 문과 출신들이 의료 정책을 주물러서 지금 이 꼴이 난 게 사실이냐는 것이다.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
(대전=연합뉴스) 이주형 기자 =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이 25일 오후 대전 유성구 국군대전병원에서 열린 합동 응급환자 헬기 이송훈련에 직접 참여해 신속한 헬기 이송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2024.10.25
[email protected]
(대전=연합뉴스) 이주형 기자 =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이 25일 오후 대전 유성구 국군대전병원에서 열린 합동 응급환자 헬기 이송훈련에 직접 참여해 신속한 헬기 이송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2024.10.25
[email protected]
답부터 말하자면 '아니오'에 가깝다. 정책 책임자들이 문과 출신이라는 전제부터 틀렸다. 현재 중앙부처의 실·국장급 이상 고위공무원 가운데 이과 출신 비율은 25.9%이고, 5급 신규채용자 중에선 39%가 이과 출신이다. 외교부를 비롯해 경제, 교육, 문화 등 인력이 많은 부처가 문과 영역임을 감안하면 문, 이과 간에 큰 차이가 없고 30·40 세대엔 이과가 더 많다는 추산이 가능하다.
의료 정책 분야는 어떨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고위공무원의 70.6%, 질병관리청은 50%가 이과 출신이다. 보건복지부는 수많은 의료인이 장관직에 올라 정책을 관장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권이혁 문태준 박양실 주양자 정진엽이 의사 출신 장관이었다. 약사 출신으로는 김정수, 간호사로는 김모임, 김화중이 있다. 윤석열 정부에선 의사인 정호영과 약사인 김승희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바 있다.
기업 쪽은 문과 소멸 시대에 든 지 오래다. 1위 기업 삼성전자의 경우 임원부터 말단 사원까지 이과 출신이 절대다수다. 삼성전자는 근래부터 신입사원의 90% 이상을 아예 이공계에서 뽑는다. LG 현대차 SK 등 다른 4대 기업의 주력 계열사도 삼성과 대동소이하다. 이 대목에서 '법조인이 최고 권력인데 무슨 소리냐'라고 따진다면 자본 권력의 힘을 모르고 하는 말일 것이다. 최우수 변호사들이 판검사 대신 최고 로펌으로 가고, 이들 로펌을 쥐락펴락하는 건 기업이다. 정치권과 언론도 기업의 영향력에 있긴 마찬가지다.
의협 대선기획본부 출범식
(서울=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 13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열린 대선기획본부 출범식에서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뒷줄 왼쪽)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4.13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 13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열린 대선기획본부 출범식에서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뒷줄 왼쪽)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4.13
[email protected]
다만, 의사 권력만큼은 예외다. 노무현 정권 이후 정치, 법조, 교수, 언론이 국민의 도덕성 요구와 무한 경쟁 체제에 내몰려 '동네북' 신세로 전락하는 사이 의사집단의 기득권은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다. 전공의들이 집단 파업을 하고 의대 신입생들이 수업 거부를 해도 국민의 건강을 손에 쥐고 있기에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돼 있다.
필수의료가 망가진 것은 저수가, 고위험 탓이라지만 저위험, 고소득을 좇는 의사들의 웰빙 풍조가 근본적 원인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저비용, 고품질 의료를 당연시하는 국민 눈높이에 맞춰 마른 수건 짜내듯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는 공무원을 탓할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해법이라고 정부가 내놓은 것이 의대증원 등 공급확대책이지만, 증원 혜택을 본 의대생들마저 수업 거부에 동조하며 후퇴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렇다면 의료계의 어른들이라 나서 대안 마련과 설득에 나서야 하지만, 의협부터 내부 의견수렴은커녕 정부 탓만 계속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의대생·전공의 행태 비판한 서울대 의대 교수들
(서울=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강희경(왼쪽) 교수와 하은진 교수가 18일 '우리의 현주소: 의료시스템 수행지표의 팩트 검토' 토론회에 참석해 발제를 듣고 있다. 두 사람과 오주환·한세원 교수는 전날 '복귀하는 동료는 더 이상 동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분들께 이제는 결정할 때입니다'라는 성명을 내며 사직 전공의들의 행태를 비판했다. 2025.3.18
(서울=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강희경(왼쪽) 교수와 하은진 교수가 18일 '우리의 현주소: 의료시스템 수행지표의 팩트 검토' 토론회에 참석해 발제를 듣고 있다. 두 사람과 오주환·한세원 교수는 전날 '복귀하는 동료는 더 이상 동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분들께 이제는 결정할 때입니다'라는 성명을 내며 사직 전공의들의 행태를 비판했다. 2025.3.18
보도에 따르면 이국종 원장은 의료계 일각의 블랙리스트 행태를 두둔하는 듯한 언급과 함께 "나처럼 필수의료 해서 인생 망치지 말고 탈조선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가짜뉴스이길 바라지만, 실제로 그런 말을 했다면 부적절하다. 이 원장에게 국민이 부여한 지금의 지위와 성역은 본인이 남다른 사명감을 갖고 사회에 헌신해서 얻은 것이지만, 의료계의 퇴행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이 반영된 결과로 보는 게 보다 타당하다. '이국종'을 대표로 하는 필수의들이 "나처럼 사는 것도 행복하다"고 후배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기대한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