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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건강한 교회를 위한 성평등 수업/그레이엄 조지프 힐 지음/김현산 옮김/IVP
성경에서 미리암은 모세와 함께 영적 지도자로 인정받은 예언자였다. 그림은 이탈리아 화가 루카 지오르다노(Luca Giordano)의 ‘여선지자 미리암의 노래’(The Song of Miriam the Prophetess). 위키피디아 제공

교회를 다니는 이라면, 더 나아가 봉사에도 열심히 참여하며 교회 운영을 깊숙이 들여다본 경험이 있다면 필연적으로 동의할 법한 지점이 하나 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권사님들을 필두로 한 여성 교인들 없이 과연 교회가 돌아갈 수 있을까 싶은 깨달음이다. 예배 시간이나 교회 곳곳에서 마주치는 여성 교인들을 한번 생각해보자. 이들의 왕성한 활동력과 조직력,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헌신과 열정을 마주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남성 위주의 목회자들이지만, 그들의 사역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건 여성 교인들의 헌신 없이 불가능하다는 걸 부인하진 못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제기된다. 그런 필수불가결한 여성의 교회 내 위치와 처우는 어떠한가. 그저 예배와 교회 운영을 돕는 부수적인 역할에만 한계를 두고 있지는 않은가.

이러한 의문은 비단 한국교회에 국한된 문제는 아닌 듯하다. 호주의 남성 목회자이자 신학자인 저자 역시 오늘날 개신교회의 불균형과 불평등을 초래하는 이 현실을 책을 통해 지적한다. 이 같은 교회 안의 불평등이 교회 공동체를 약화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저자는 ‘성경적 평등’을 주장한다.

다만 그가 추구하는 건 ‘페미니즘’이나 ‘진보적’ 의제로서가 아니라 ‘성경적’ 의제이다. 저자는 “나의 논점은 페미니스트 어젠다, 즉 여성 사역에 대한 옹호가 아니다. 그보다는 성령 어젠다, 즉 교회가 교회 안에서 그리고 세상에 더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우리의 제한과 구조로부터 성령을 자유롭게 해 달라는 탄원이다”라고 밝힌다.

저자의 이 말은 교회 내 남성들이 때론 ‘페미니즘’이나 ‘진보적 의제’라는 편견에 매몰돼 하나님의 본뜻을 찾는 걸 회피한 건 아니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저자는 책에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 14:34)는 바울의 말을 심층적으로 파헤치며 “경건한 남성들이여, 지금은 잠잠히 할 때다”라고 역설적으로 외친다.

바울의 외침은 그동안 교회 내 여성의 역할을 한계 짓는 구절로 종종 인용돼 왔다. 오늘날 여성 목사 안수를 불허하는 한국교회 일각에서 참고하는 핵심 구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를 비롯해 많은 신학자는 바울의 이 외침을 율법이 아닌 복음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씀의 주목적은 여성 배제가 아니라 그 시대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는 여성들이 자신도 모르게 복음의 길을 가로막는 것을 경계하라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오늘날 상황과 다른 당시 시대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 구절을 그대로 적용해 교회 내 여성의 역할과 위치를 한정하는 것도 문제로 지목된다. 교단마다 그 해석을 다르게 하는 것도 불균형과 모순을 초래하며 성도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교회 내 여성 리더십에 관해서도 성경적·역사적·신학적 측면에서 탐구한다. 창세기 1장 속 아담과 하와의 창조에서는 남녀 모두 동등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창조질서가 담겨 있다. 성경 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진 여성 사역자의 모습과 역할도 조명된다. 저자는 영적 지도자이자 예언자로서 모세와 함께 지도자로 인정받은 미리암, 여성 판관으로 사람들의 잘잘못을 가리거나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준 용감한 여인으로 기록된 드보라 등을 통해 여성을 그저 남자를 돕는 존재로만 표현하지 않았던 성경의 메시지를 주목하자고 말한다.

저자는 “예수님은 여성을 존중하셨고, 그들을 수치, 무시, 모멸감에서 해방시켜 주셨다”고 강조한다. 모든 사람이 존엄성과 존중, 자유와 지지를 누리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다. 책을 읽다 보면 교회 내에서 여성 리더십을 인정하는 문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라기보단 성경 본연의 가르침에 집중하는 일임을 알게 된다. 계급을 나누는 지배자로서의 리더십에서 벗어나 ‘섬김’이라는 성경이 가르치는 본질에 집중할 때 교회의 미래가 더욱 견고해질 것이라는 저자의 결론도 곱씹어볼 내용이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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