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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억대 부부 어음 사기로 이름 알려
"나는 권력 투쟁 희생자다" 강변했지만
3월에 징역 1년 확정... 34년 철창 신세
1982년 5월 7일 부부 어음사기 사건으로 구속된 장영자씨.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제는 유통입니다. 나를 풀어주면 막힌 돈을 유통시킬 자신이 있어요!"

7,111억 원짜리 어음사기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38세 여성. 자장면 한 그릇에 고작 600원, 국립대 등록금이 50만 원이 안 되던 시절인 1982년 5월, 미결수 번호 '396'이 새겨진 수형복을 입고 포승줄에 묶이고서도 그는 옅은 미소를 띤 채 자신 있게 얘기했다. '단군 이래 최대 사기꾼' 타이틀을 얻은 장영자(81)씨는 30대 후반에 세상에 자신을 알렸다.

사기 행각의 '뒷배'는 화려한 인맥이었다. 숙명여대 '메이퀸' 출신인 장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 배우자인 이순자씨의 삼촌 이규광의 처제였다. 당시 한 일간지는 이렇게 썼다. "장영자는 1970년대부터 권력 주변에 있고 권력층과 밀착돼 있다는 인상을 주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1982년 5월 '어음 사기' 혐의로 구속된 장영자씨 모습. 장씨는 남편 이철희씨와 함께 사채시장을 통해 7,000억 원에 육박하는 사기 행각을 벌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관계 고위 인사들과의 관계를 등에 업은 정씨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에 재직 중이던 남편과 함께 사람들의 믿음을 샀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기업에 자금을 지원해 몇 배에 달하는 어음을 할인 유통하며 이득을 챙겼다. 어음은 부도가 났고 도급순위 8위였던 공영토건과 철강업계 2위인 일신제강이 무너졌다. 그런데도 장씨 부부는 법정에서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 기업을 하다 보면 그런 일은 다반사"라며 적반하장이었다. 결국 법원은 장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한다. 장씨는 또 어록을 남긴다. "나는 권력 투쟁의 희생자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하지만 장씨는 시대의 희생자라기보단 탐욕에 눈먼 자에 가까웠다.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시작된 장씨의 '수감 생활'은 1992년 가석방으로 끝나는 듯했지만, 출소 1년 10개월 만에 140억 원 규모의 차용금 사기 사건 피고인이 되면서 계속됐다. 징역 4년이 확정돼 구속된 장씨는 1998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지만 2000년 구권 화폐 사기 사건으로 다시 구속됐다. 장씨는 시중은행장과 사채업자에게 접근해 "수천억 원대 사회 고위층의 구권 화폐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는데 선금을 주면 나중에 웃돈을 얹어 구권 화폐를 몰아주겠다"면서 240억 원대 사기 행각을 벌였다.

2006년 법원은 장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고 1992년 내려진 가석방이 취소돼 수감생활이 4년 8개월 연장됐다. 장씨는 2015년 초 출소했지만 2018년 고인이 된 남편 명의의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기증한다고 속여 6억 원을 가로챈 혐의로 또다시 구속됐다. 징역 4년을 확정받은 장씨는 2022년 만기출소했다.

2000년 5월 19일 세 번째 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장영자씨가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받기 위해 법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자유인으로서 그의 삶은 짧았다. 올해 1월 장씨는 다섯 번째로 구속됐다. 2017년 7월 서울 서초구의 한 호텔에서 장씨에게 농산물을 공급하기로 한 업체 대표와 계약을 체결하고 154억 원의 위조수표를 선급금 명목으로 건넨 혐의다. 1심은 무죄를 선고했지만 항소심은 징역 1년을 택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사기, 위조유가증권행사 등으로 여러 차례 처벌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누범 기간 중 또다시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면서 "(그런데도)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범행을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장씨를 질책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위조유가증권행사 혐의로 징역 1년이 선고된 장씨의 원심 판결을 지난달 21일 확정했다. 이번 선고로 장씨는 인생의 절반에 가까운 34년을 철창 안에서 갇혀 보내게 됐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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