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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 고려대 교수 "퇴직연금, 노후 소득 보장 기능 못 해…개편은 더는 미룰 수 없는 시대 과제"

"국민연금공단도 기금형 퇴직연금 운용 사업자 참여하도록 허용해야"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윤영석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2025.4.8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400조원 넘게 쌓인 국민의 노후 자금, 퇴직연금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연평균 수익률이 2%대에 머물면서 '쥐꼬리 수익률'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는 가운데, 근본적인 해법으로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달 23일 민주당 한정애 의원실 주최로 열리는 국회 토론회에 앞서 미리 공개한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의 쟁점' 주제 발표에서 퇴직연금 개편은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는 시대 과제라고 강조한다.

노후 소득 보장?…이름뿐인 퇴직연금의 현실
한국의 노후 소득 보장 체계는 크게 기초연금, 국민연금, 퇴직연금의 3층 구조를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김태일 교수는 "퇴직연금은 노후 소득 보장 기능을 거의 못 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실제 통계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노인 소득은 전체 평균 소득의 88% 수준이지만, 한국은 66%로 최하위다. 연금소득 비중 역시 OECD 평균(56.5%)에 한참 못 미치는 17.0%에 불과하다. 반면, 근로소득 비중은 52%로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높다. 은퇴 후에도 일하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다.



퇴직연금 제도를 갖춘 다른 나라들은 퇴직연금을 통해 노후 소득의 한 축을 담당하지만, 한국은 강제 가입(노사협의 포함) 제도임에도 OECD 기준 연금 통계에서 제외될 정도다.

왜일까? 표면적으로는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아 가는 관행, 잦은 중도 인출 등이 거론된다. 최근 연금 수령 비율이 10% 정도로 늘었다지만, 이마저도 절세 목적으로 10년간 나눠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민연금 7.6% vs 퇴직연금 2.3%…낮은 수익률이 근본 원인
하지만 김 교수는 "근본 이유는 퇴직연금 수익률이 너무 낮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수익률이 낮으니 종신 연금으로 받아봤자 금액이 너무 적고, 차라리 일시금으로 받아 직접 운용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실제 수익률 차이는 극명하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퇴직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고작 2.35%에 그쳤다. 같은 기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연평균 수익률은 7.63%에 달했다. 흔히 '공공은 비효율적'이라는 통념과 달리, 민간 금융기관이 운용하는 퇴직연금이 공공기관인 국민연금보다 훨씬 낮은 성과를 내는 셈이다.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2024년 말 현재 432조원을 넘었으며, 10년 뒤에는 1천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9%)에 버금가는 보험료율(8.33%)을 적용받는 거대한 자금이 이처럼 낮은 수익률에 방치되는 상황을 언제까지 용인해야 할까?

김 교수는 낮은 수익률의 원인을 금융기관과 가입자 간 '정보 비대칭성'에서 찾는다. 스웨덴(공적 중개기관), 네덜란드(직역별 기금의 집합 운용), 호주(엄선된 디폴트옵션), 미국(401k 디폴트옵션 평균 7% 수익률) 등 성공적인 퇴직연금 운용 국가들은 가입자의 이익을 보호하고 수익률을 높이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낮은 수익률의 기회비용은 막대하다. 월 400만원 급여자가 30년간 연 2% 수익률로 퇴직연금에 가입하면 원리금은 약 1억 6천만원이지만, 연 7% 수익률이라면 4억원이 넘는다. 2017년 초 150조원이었던 적립금이 2023년 말까지 7년간 매년 7%의 수익률을 냈다면, 실제(연 2% 가정)보다 69조원이 더 쌓였을 것이라는 계산도 나온다.

해법은 '기금형' 도입…쟁점은?
전문가들은 현재의 '계약형' 구조로는 낮은 수익률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계약형은 개별 가입자가 금융회사의 상품을 선택하는 방식인데, 정보 부족과 무관심 속에서 원리금 보장 상품에만 돈이 몰리고 수익률은 정체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기금형'이다. 기금형은 별도의 수탁법인(기금 운용 주체)이 적립금을 전문적으로 운용하고, 그 성과를 가입자에게 배분하는 방식이다. 김 교수는 "기금형 도입은 확실히 이뤄질 것"이라면서도 "어떤 형태의 기금을 어떤 방식으로 도입하는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기금형 도입을 둘러싸고는 몇 가지 쟁점이 있다.

우선 국민연금공단의 참여 여부다.

김 교수는 국민연금공단이 기금 운용 사업자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세계적 수준의 운용 능력을 입증했고(최근 수익률 비교 시 근로복지공단의 '푸른씨앗'보다도 우수), 국민연금공단의 참여가 '메기 효과'를 일으켜 전체 시장의 수익률 경쟁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입자에게 선택권을 주면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영리 기관의 참여도 논란거리다. 김 교수는 "현재 시장 구조상 민간 금융회사의 참여를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영리법인을 허용하되 금융당국의 철저한 관리 감독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또 "운용 비용 절감과 수익률 제고 등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려면 기금의 대형화가 필요하다"며 "국민연금공단, 푸른씨앗, 산업별 대형 기금 중심으로 재편하고, 개인연금(IRP 포함) 가입자도 기금형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나아가 기금형의 구체적 모델로 개별 가입자가 운용 책임을 지는 일반적 DC(확정기여형)보다는 기금이 장기적 관점에서 안정적 수익을 추구하는 집합적 DC를 기본(디폴트)으로 하되, 가입자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기금형 취지에는 맞지 않을 수 있지만, 한국 현실을 고려해 원리금 보장 상품 편입도 고려할 수 있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실제로 과학기술인공제회가 운용하는 퇴직연금(사실상 기금형)이 원리금 보장 상품 위주면서도 지난 10년간 연평균 5% 이상 수익률을 낸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김 교수는 "퇴직연금 개편 논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기금형 도입은 단순히 제도를 바꾸는 것을 넘어, 금융기관의 이해관계가 아닌 '근로자의 노후 소득 보장 강화'라는 본래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교수는 특히 "기금형 도입 시 벤치마크 수익률을 국민연금 수준으로 설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목표치를 높게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잘 설계된 퇴직연금은 국민연금과 함께 공무원연금 부럽지 않은 노후 버팀목이 될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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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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