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미국에 연구용 원자로 설계를 수출한다. 사진은 한국원자력연구원 컨소시엄이 16일(현지시간) 미국 미주리대와 ‘차세대 연구로 사업’ 초기설계 계약을 체결하는 모습. [연합뉴스]
한국이 원자력 기술 종주국인 미국에 연구용 원자로(연구로) 설계를 수출한다. 1959년 미국에서 원자로 기술을 이전받은 지 66년 만에 역수출에 성공했다.
1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한국원자력연구원 컨소시엄은 미국 미주리대가 국제 경쟁입찰로 발주한 ‘차세대 연구로 사업(NextGen MURR 프로젝트)’의 초기설계 계약을 체결했다. 원자력연구원과 사업 경험이 풍부한 현대엔지니어링, 엔지니어링 컨설팅 회사인 미국 MPR사로 구성된 컨소시엄이다.
컨소시엄은 미주리대가 건설하기로 한 차세대 연구로의 초기 설계를 수출한다. 연구로 건설은 통상 건설부지 조건, 환경영향평가 등 사전 정보를 분석하는 초기 설계(1단계)를 한 뒤 2단계인 개념설계·기본설계, 3단계 인허가 획득 및 건설 과정을 거친다. 컨소시엄을 이끈 임인철 원자력연구원 부원장은 “1단계 초기 설계 계약 규모는 약 1000만 달러(약 141억원)이고, 후속 단계까지 연속 수주가 유력한 만큼 계약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미주리대는 미국 내 연구로 중 최대 규모인 10메가와트(㎿)급 연구로를 운영하고 있다. 연구로는 우라늄 핵분열에서 발생하는 중성자를 이용해 의료용 신물질을 생산하거나 연구를 진행하는 역할을 한다. 미주리대는 연구로를 통해 주로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방사선을 방출하는 불안정한 원자핵을 가진 동위원소)를 생산해 미국 병원에 암 치료용으로 납품하고 있다. 이번에 20㎿급 차세대 원자로를 추가 설치해 함께 운영할 계획이다.
이번 수출 계약은 원전 종주국인 미국에서 한국 원자력 기술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은 1959년 미국으로부터 0.1㎿급 연구로 ‘트리가 마크-2’를 도입하면서 원자력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1995년 30㎿급 연구로 ‘하나로’를 자력으로 만들었고, 현재 부산시 기장군에 신형 연구로를 건설하고 있다. 과학계에선 차세대 원전 분야 글로벌 경쟁에서 미국이 선택한 기술인 점을 내세워 한국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현재 가동 중인 전 세계 연구로의 70% 이상이 노후화한 상태다. 향후 20년간 50기 정도의 연구로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임 부원장은 “미국 뉴스케일, 아르헨티나 인밥 등 총 7개 컨소시엄 또는 개별 업체가 경쟁했는데, 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고성능 연구로 핵연료’ 등 기술력과 그간의 사업 수행 경험이 입찰 성공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계약은 미국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효력이 시작된 지난 15일 이후 체결됐다. 미국은 국가 안보, 핵 확산, 테러 지원 등의 우려를 이유로 민감국가를 지정해 연구 협력, 기술 공유 등에 제한을 두고 있다. 이창윤 과기정통부 1차관은 “이번 계약은 민감국가 지정 이후에도 한·미 간 과학기술 동맹 관계가 훼손될 일은 없을 것이라는 미국 측의 기존 입장을 실질적·구체적으로 확인한 결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