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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 전 국과수 원장과 법의조사관들이 3월 18일 서울과학수사연구소에서 시신을 부검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부검의 세계 : 죽은 자의 증언’ 죽은 자는 시신으로 말한다. 죽음의 진실이 그 안에 있다. 부검은 그가 남긴 마지막 단서를 찾는 과정이다.

취재팀은 수십 년간 굵직한 사건의 해결을 이끌어온 전현직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 등 법의관들을 직접 만나 부검에 얽힌 사연과 비화를 청취했다. 법의학이 어떻게 사건의 실체를 어떻게 증명해왔는지 그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화가 많았다.

사건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죽음과 마주하는 국과수 부검 현장으로 안내한다.


1화 : 포르말린과 저울, 칼끝에서 드러난 죽음의 비밀


서중석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 김종호 기자

2014년 7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부검 결과를 설명한 전문가가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이었던 서중석(68) 박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직접 부검에 나선 그는 퇴임 후에도 국과수 본원(원주)과 서울과학수사연구소에서 매주 1~2차례씩 부검을 집도한다.

국과수 서울과학수사연구소의 협조를 얻어 서 박사가 이끈 부검 현장을 참관했다. 부검을 통해 드러난 갖가지 사인(死因)들에는 우리 사회의 문제가 오롯이 녹아 있었다.

# 1. ‘혈자’로 들어올린 피의 색깔이 달랐다
저체온사로 사망했을 경우 부검 과정에서 좌우 심장에서 나온 피의 색깔이 다르게 보인다. 중앙DB

김씨(68)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마을 야산 배수로였다. 발견 당시 모습이 영화 ‘살인의 추억’을 연상시켰다.

" OO시에 사건이 많네요. "
현장 사진을 넘기며 서 박사가 물었다.

" 안 그래도 정신이 없습니다. 발견 당시 이불에 덮여 있었습니다. "
담당 형사는 김씨가 집에서 산을 넘어 1㎞가량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고 했다. 함께 사는 남편과 아들이 실종 신고를 했다. 이틀간 수색 끝에 찾았지만, 사인을 알 수 없어 부검을 의뢰했다.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부검실에는 5개의 부검대가 있다. 부검실 한쪽 면은 투명한 유리다. 경찰과 유족이 원하면 창밖에서 참관이 가능하다. 부검실 내부 온도는 20.1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낮지 않은 온도였음에도 안으로 들어서자 털끝이 곤두서는 듯 했다. 환기 시설이 있었지만 익숙지 않은 살냄새가 났다.

김씨의 시신이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한 뒤 부검대 위로 옮겨졌다. 해부로 잡아내기 어려운 두개골이나 뼈의 미세 골절을 확인하기 위해 CT 촬영이 먼저 진행된다. 뼈 손상은 외력(外力)의 징후다. “148㎝에 45㎏입니다.” 법의조사관이 시신의 키와 몸무게를 쟀다. 작은 체구의 60대 여성은 무슨 연유로 숨진 걸까.

시작은 신체 외부 검안부터였다. 서 박사는 얼굴과 목, 가슴, 손과 발, 다리 등 신체 전체에 특이한 흔적이 있는지 꼼꼼히 살폈다. 등에 빨갛고 둥근 모양의 멍이 든 듯한 자국이 있었는데, 등에 있던 물체에 눌려 생긴 시반(屍斑, 사망 후 혈액 침하로 생긴 자국)이었다.

뇌를 꺼내 무게를 쟀다. 1040g. 같은 연령대의 뇌 무게는 최소 1200g을 넘어야 한다. 뇌 단면을 살펴보던 서 박사가 말했다.

" 뇌 전체에 위축이 심하게 나타난다.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뇌가 쪼그라든 모양이다. "
경찰은 파악하지 못했던 사실이다. 심장과 간, 폐, 위장, 췌장, 콩팥 등 주요 장기를 적출해 병변과 손상 여부도 확인했다. 그런데 위에서 이상한 것이 발견됐다. 2~3mm 정도의 작은 하늘색 알갱이 수십여 개가 위액 속에 들어 있었다. 다 녹지 않고 남은 알약으로 추정됐다. 서 박사는 조용히 약독물 분석을 의뢰하라고 지시했다. 어떤 종류의 약물인지 확인해야 나올 터다. 이승의 고단함을 스스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인가.

흉강 내부를 바라보던 서 박사가 ‘혈자’를 달라고 했다. ‘혈자’는 몸속 피를 떠낼 때 사용하는 국자를 뜻했다. 법의관들의 '은어'였다. 서박사는 심장 오른쪽과 왼쪽 혈관에서 흘러나온 피를 따로 떠내 비교했다. 놀랍게도 양쪽 피의 색깔이 달랐다. 우심방에서 흘러나온 피는 짙은 붉은색이었고 좌심실에서 떠낸 피는 밝은 선홍색이었다. 서 박사의 설명이다.

" 저체온 상황에 빠지면 왼쪽 심장과 오른쪽 심장의 피 색깔이 달라진다. 주위 온도가 낮으면 산소와 헤모글로빈이 잘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동맥의 피가 훨씬 밝은 선홍색을 띤다. 심장 왼쪽의 피 색깔이 더 밝은 것은 추운 곳에서 저체온으로 사망한 경우 나타나는 현상이다. "
8개의 장기 조직 샘플과 심장 혈액, 위 내용물, 모발, 소변 등 27개 검사가 의뢰됐다. 주요 장기의 일부는 재조사에 대비해 포르말린 병에 보관된다. 법의조사관들은 머리와 가슴을 두터운 실로 봉합하고 묻은 피를 씻어내 시신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렸다. 50여 분의 부검을 마치고 나온 서 박사는 담당 경찰에게 “외력에 의한 손상이 없고, 치매 증세가 있었으며, 저체온 상황에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진행 사항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 약물이 직접적인 사인일 수 있는지 여부는 검사 결과를 받아봐야 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약을 먹이고 배수구로 옮겼다면 시신에 흔적이 남았을텐데 외상은 보이지 않는다. 시신이 발견되기 전날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
부검을 통해 타살 가능성은 배제됐다. 김씨가 처지를 비관해 약물을 과다 복용한 것인지, 치매로 인해 뜻하지 않게 배수로에 있다 저체온으로 사망한 것인지는 추가 검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어느 쪽이든 치매 환자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 2. 팔목에 남은 4개의 주삿바늘
팔목에 난 주삿바늘 자국. 중앙DB

잠시 생각에 잠긴 동안 곧바로 다음 시신이 옮겨졌다. 3월 14일 오전 7시 경기도의 한 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정모(58)씨. 그는 최근 희귀병 판정을 받았다.

(계속)

정씨의 남편은 사슴농장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팔목에 남은 주삿바늘 자국과 정씨의 사망은 어떤 인과관계가 있었을까요.

아파트 주방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한 부패 시신. 서박사가 부검을 통해 밝혀낸 사인과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부검의 세계 : 죽은자의 증언' 1화, 이어지는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좌우 심장, 피가 달랐다…부검실 국자가 퍼올린 '시신 비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23328



☞ 더 많은 기사를 보시려면?

유병언 목 졸려 살해 당했다? 부검이 찾아낸 ‘목뿔뼈’ 반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25263

노무현 서거 때 부검 안 했다…상처 없던 손바닥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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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시신엔 뇌 빠져있었다…“자연사” 멕시코 충격 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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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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