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약속과 원칙 헌신짝처럼 버려
모집인원 줄여도 의대생 복귀 불투명
의대 입시 준비하던 수험생들 황당
모집인원 줄여도 의대생 복귀 불투명
의대 입시 준비하던 수험생들 황당
이주호(왼쪽)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 조정 방향 브리핑을 마치고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정부 부처 내 이견 속에서도 내년도 의대 모집인원 '3,058명' 안을 밀어붙였던 교육부의 고집이 혼란만 거듭하다 실패로 끝났다. 수업 거부 의대생들을 돌아오게 하려면 내년 신입생을 덜 뽑는 등 명분을 줘야 한다는 논리였지만, '등록 투쟁'이라는 꼼수 앞에 무기력해졌다. 이번 사태로 교육부는 얻은 건 하나도 없이 국민적 신뢰 등 중요한 자산만 잃게 됐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①원칙 저버린 교육부, 의대생 복귀도 미지수
우선 공개적으로 약속했던 원칙을 저버린 게 가장 큰 논란 거리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7일 브리핑에서 "3월 말까지 의대생이 전원 복귀한다는 전제로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증원 이전 규모인) 3,058명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전국 40개 의대 총장 모임인 의과대학선진화총장협의회(의총협) 회장단과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사장 등도 함께했다.
하지만 '전원 복귀'의 뜻을 두고 '수업이 가능한 수준의 복귀'라는 애매한 기준만 던졌다. 다만, 70~80%는 수업에 실제 복귀해야 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분위기가 관가 안팎에서 감지됐다.
이후 의대생들의 복귀율이 미진하자 대학 총장 등은 문턱을 크게 낮추려는 듯한 발언을 했다. 양오봉 의총협 회장은 지난달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전원 복귀의 기준을 알려달라'는 질문에 "각 대학 사정에 따라야 하지만 통상 과반은 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나마 '복귀율 50%' 기준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의대의 평균 수업 참여율(16일 기준)은 25.9%에 불과하다. 미등록 시 제적 등 학칙대로 처리하겠다며 복귀를 유도했지만 의대생들은 등록금을 내 제적만 피하고 수업에는 들어오지 않는 '등록 투쟁'으로 전환했다.
그래픽= 김대훈 기자
교육부도 국민과의 약속을 어긴 점은 자인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3,058명안은 우리가 (의대생에게) 내줄 수 있는 마지막 카드라 이걸 꺼냈는데 안 돌아올까봐 고민했다"며 "반면 의대생들은 '학교로 돌아갔는데 3,058명 회귀가 지켜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선제적으로 내년 선발인원을 감축함으로써 의대생 복귀를 유도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의대생이 돌아올지는 미지수다.
수차례 경험을 통해 '버티면 정부와 대학이 먼저 물러선다'는 점을 학습
한 탓이다. 실제 경북대와 인하대, 이화여대 등에서는 의대 학생단체가 학생 대상 설명회를 열어 "실제 무더기 유급을 하면 의료 인력 배출이 안 될 테니 정부가 유급을 못하고 항복할 것"이라거나 "차기 대통령이 허니문 기간(6월)에 부담스러운 이슈인 의정갈등을 해결하고 싶을 테니 우리가 협상력을 가지고 버텨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②트리플링 우려에, "의대생들 돌아올 것" 희망회로만
트리플링 우려는 커졌는데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트리플링은 집단휴학해온 24, 25학번과 내년 신입생인 26학번이 1학년 과정을 함께 배워야 하는 상황을 뜻한다. 교육부와 대학들은 '3,058명' 확정과는 무관하게 수업 거부 의대생에 대한 유급 처리는 원칙대로 하겠다는 입장이다. 만약 의대생들이 1, 2주 내에 복귀하지 않으면 대규모 유급은 피할 수 없고 트리플링은 현실화된다.
교육부와 대학 총장, 학장들은 17일 브리핑에서 트리플링 대책을 내놓는 대신 '희망회로'를 돌렸다. "3,058명 확정을 계기로 의대생들이 대거 돌아와 유급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강경파 의대단체 측은 트리플링 우려를 지렛대 삼아 협상 우위를 점하려는 모습
이다. 이들은 의대생들에게 "트리플링이 되면 교육을 못 시킬 테니 신입생 선발 인원을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퍼뜨리고 있다.
③그렇게 공언하더니, 입시 정책 신뢰 잃어
교육당국이 수험생과 학부모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도 뼈아프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주도로 의대 증원 정책의 후퇴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으나, 교육부로 주도권이 바뀌면서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다.
의대 증원을 전제로 미래를 설계하던 수험생들은 황당한 처지가 됐다. 이 부총리는 "(수험생들이 겪는 상황이) 안타깝다"면서도 "(내년도 의대 모집 인원 결정을) 다음 정부로 넘기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불확실성이 더 커져 신속히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