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미주리대 연구로 설계 사업, 한국 컨소시엄 수주
전 세계 연구로 70% 노후화…수출 시장 열린다
민감국가 지정에도 한미 과기 협력 문제 없어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현대엔지니어링이 미국 대학의 최대 규모 연구용 원자로를 설계한다. 1959년 미국에서 연구용 원자로를 받으면서 시작된 한국의 원자력 기술이 66년 만에 원자력 종주국인 미국에 기술을 역수출하게 된 것이다. 정부는 이번 설계 수주를 계기로 전 세계 연구용 원자로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는 계획이다.
원자력연과 현대엔지니어링, 미국 현지 엔지니어링 기업인 MPR이 꾸린 컨소시엄은 미국 미주리대의 차세대연구로 사업(NextGen MURR)에서 초기 설계 계약을 수주했다고 17일 밝혔다.
한국 컨소시엄은 작년 7월 최종 협상 대상자에 선정됐고, 이후 협의를 거쳐서 이날 실제 계약을 체결했다. 임인철 원자력연 부원장은 “미국과 아르헨티나를 포함해 7개 회사가 경쟁한 끝에 한국 컨소시엄이 선정됐다”며 “독보적인 기술력과 풍부한 경험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용 원자로 1기 8000억원, 50여 기 수요
연구용 원자로는 우라늄의 핵분열에서 발생하는 중성자를 이용해 전기 대신 의료용 동위원소나 반도체, 신소재 등을 생산하는 장치다. 원자력발전소에서는 중성자로 우라늄 핵분열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이때 나오는 에너지로 물을 끓이고 터빈을 돌려 전력을 생산한다.
미국 미주리대는 10㎿(메가와트)급 연구로를 운영 중인데, 의료용 동위원소 생산 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차세대 연구로 건설 사업에 나섰다. 차세대 연구로는 20㎿급으로 미국 대학이 운영하는 연구로 중에서는 가장 출력이 크다. 이 사업은 1단계인 초기 설계와 2단계인 개념·기본설계, 3단계인 건설로 이뤄진다.
한국 컨소시엄이 따낸 1단계 초기 설계 계약은 1000만달러(약 142억원) 규모다. 정택렬 과기정통부 공공융합연구정책관은 “최종 협상 대상자 선정은 1·2단계가 포함된 것으로 이변이 없는 한 2단계 사업도 우리가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한규 원자력연 원장은 “이번에 우리가 하나로(HANARO) 연구로를 독자 설계하고 요르단에 연구로를 수출한 경험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 원자력 산업은 1959년 7월 14일 미국으로부터 연구용 원자로 1호기(TRIGA Mark-Ⅱ)를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연구용 원자로 1호기를 활용해 원자력 연구개발(R&D)과 인력 양성을 시작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1978년 고리 1호기를 지으면서 상업용 원자력 발전도 시작했다.
한국은 1995년 30㎿급의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를 자력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기장군에 신형 연구로를 건설하고 있다. 연구용 원자로를 자력으로 건설한 경험을 바탕으로 요르단 연구로 설계·건설 사업을 수주했고, 방글라데시 연구로와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연구로, 말레이시아 소형 연구로 관련 사업도 잇따라 수주했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현재 54국에서 연구로 227기를 운영하고 있다. 이 중 70% 이상인 161기가 건설된 지 40년 이상 된 노후 연구로다. 여기에 더해 방사성 의약품 생산에 필수적인 동위원소 수요가 증가하면서 신규 연구로를 건설하려는 수요도 늘고 있다.
이창윤 과기정통부 차관은 “앞으로 20년간 50기 정도의 연구로 건설 수요가 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연구로 수출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해외 진출 활성화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로는 1기를 짓는 데 대략 7000억~8000억원 정도가 든다. 50기로만 잡아도 40조원의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상업용 원자력발전소에 비해 경쟁이 덜한 것도 한국에는 이점이다. 상업용 원자력발전소는 미국, 프랑스, 중국, 일본, 한국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연구로는 공사 규모가 작다 보니 경쟁이 덜하다.
아르헨티나 인밥과 2승 1패
연구로 시장에서 한국의 가장 큰 경쟁 상대는 아르헨티나다. 아르헨티나의 인밥(INVAP)과 한국의 원자력연이 전 세계 연구로 시장을 놓고 늘 경쟁한다. 이번 미주리대 계약에서도 인밥과 원자력연 컨소시엄이 경쟁했다.
임인철 부원장은 “요르단에서는 우리가 이겼다가 네덜란드에서는 우리가 졌고, 이번에 다시 우리가 이겼다”며 “인밥과는 2승 1패로 앞으로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6월 안에 연구로 수출 활성화 전략을 발표할 계획이다. 국가별로 원자력 기술 성숙도에 맞춰서 맞춤형 전략을 세우고, 경제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단순 설계, 공사에서 그치지 않고 핵연료 공급까지 이어질 수 있게 한다는 구상이다. 연구로 관련 기업을 육성하고, 인력 양성과 전 세계 연구로 관련 정보를 모으는 방안도 마련한다.
원자력연과 함께 이번 계약을 수주한 현대엔지니어링도 연구로 분야를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이승원 현대엔지니어링 상무는 “40년 동안 원자로 설계 사업을 수행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로 설계에서도 성과를 냈다”며 “이번 사업을 바탕으로 원자력연과 협력을 강화해 연구로 시장을 확대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현지에선 민감국가 영향 없어”
공고롭게도 이번 연구로 수주 낭보는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 리스트에 등재한 지 하루 만에 전해졌다. 국내에선 한국이 민감국가 리스트에 오르면서 미국과의 과학기술 분야 협력이 제한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번 수주는 이런 우려를 기우로 만들었다.
지난 14일부터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주한규 원장은 “민감국가 지정 하루 만에 이번 계약이 체결됐는데, 미국 현지에서는 민감국가 지정과 관련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라며 “국내에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도 “이번 연구용 원자로 수출은 한국 연구계의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민감국가 지정과 무관하게 한국과 미국이 계속 협력해 나갈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민감국가 지정 해제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창윤 차관은 “미국 측에서는 민감국가 지정이 한미 간 과학기술 동맹 관계를 훼손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는데, 이번 수출 계약은 그런 입장이 구체적인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라며 “민감국가 지정 해제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 세계 연구로 70% 노후화…수출 시장 열린다
민감국가 지정에도 한미 과기 협력 문제 없어
한국원자력연구원 컨소시엄이 16일(현지시간) 미국 미주리대와 차세대연구로 초기 설계 계약을 체결했다. 왼쪽 세 번째부터 문 초이 미주리대 총장, 토드 그레이브 미주리대 이사회 의장,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장, 임인철 한국원자력연구원 부원장./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현대엔지니어링이 미국 대학의 최대 규모 연구용 원자로를 설계한다. 1959년 미국에서 연구용 원자로를 받으면서 시작된 한국의 원자력 기술이 66년 만에 원자력 종주국인 미국에 기술을 역수출하게 된 것이다. 정부는 이번 설계 수주를 계기로 전 세계 연구용 원자로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는 계획이다.
원자력연과 현대엔지니어링, 미국 현지 엔지니어링 기업인 MPR이 꾸린 컨소시엄은 미국 미주리대의 차세대연구로 사업(NextGen MURR)에서 초기 설계 계약을 수주했다고 17일 밝혔다.
한국 컨소시엄은 작년 7월 최종 협상 대상자에 선정됐고, 이후 협의를 거쳐서 이날 실제 계약을 체결했다. 임인철 원자력연 부원장은 “미국과 아르헨티나를 포함해 7개 회사가 경쟁한 끝에 한국 컨소시엄이 선정됐다”며 “독보적인 기술력과 풍부한 경험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원자력 연구개발 역사는 1959년 우리나라 최초 연구용 원자로인 '트리가 마크-2'(사진)를 미국 제너럴아토믹으로부터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용 원자로 1기 8000억원, 50여 기 수요
연구용 원자로는 우라늄의 핵분열에서 발생하는 중성자를 이용해 전기 대신 의료용 동위원소나 반도체, 신소재 등을 생산하는 장치다. 원자력발전소에서는 중성자로 우라늄 핵분열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이때 나오는 에너지로 물을 끓이고 터빈을 돌려 전력을 생산한다.
미국 미주리대는 10㎿(메가와트)급 연구로를 운영 중인데, 의료용 동위원소 생산 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차세대 연구로 건설 사업에 나섰다. 차세대 연구로는 20㎿급으로 미국 대학이 운영하는 연구로 중에서는 가장 출력이 크다. 이 사업은 1단계인 초기 설계와 2단계인 개념·기본설계, 3단계인 건설로 이뤄진다.
한국 컨소시엄이 따낸 1단계 초기 설계 계약은 1000만달러(약 142억원) 규모다. 정택렬 과기정통부 공공융합연구정책관은 “최종 협상 대상자 선정은 1·2단계가 포함된 것으로 이변이 없는 한 2단계 사업도 우리가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한규 원자력연 원장은 “이번에 우리가 하나로(HANARO) 연구로를 독자 설계하고 요르단에 연구로를 수출한 경험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 원자력 산업은 1959년 7월 14일 미국으로부터 연구용 원자로 1호기(TRIGA Mark-Ⅱ)를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연구용 원자로 1호기를 활용해 원자력 연구개발(R&D)과 인력 양성을 시작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1978년 고리 1호기를 지으면서 상업용 원자력 발전도 시작했다.
전 세계 연구로 운용 현황. 54개국에서 227기의 연구로가 가동 중이다./IAEA RRDB
한국은 1995년 30㎿급의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를 자력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기장군에 신형 연구로를 건설하고 있다. 연구용 원자로를 자력으로 건설한 경험을 바탕으로 요르단 연구로 설계·건설 사업을 수주했고, 방글라데시 연구로와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연구로, 말레이시아 소형 연구로 관련 사업도 잇따라 수주했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현재 54국에서 연구로 227기를 운영하고 있다. 이 중 70% 이상인 161기가 건설된 지 40년 이상 된 노후 연구로다. 여기에 더해 방사성 의약품 생산에 필수적인 동위원소 수요가 증가하면서 신규 연구로를 건설하려는 수요도 늘고 있다.
이창윤 과기정통부 차관은 “앞으로 20년간 50기 정도의 연구로 건설 수요가 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연구로 수출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해외 진출 활성화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로는 1기를 짓는 데 대략 7000억~8000억원 정도가 든다. 50기로만 잡아도 40조원의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상업용 원자력발전소에 비해 경쟁이 덜한 것도 한국에는 이점이다. 상업용 원자력발전소는 미국, 프랑스, 중국, 일본, 한국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연구로는 공사 규모가 작다 보니 경쟁이 덜하다.
아르헨티나 인밥과 2승 1패
연구로 시장에서 한국의 가장 큰 경쟁 상대는 아르헨티나다. 아르헨티나의 인밥(INVAP)과 한국의 원자력연이 전 세계 연구로 시장을 놓고 늘 경쟁한다. 이번 미주리대 계약에서도 인밥과 원자력연 컨소시엄이 경쟁했다.
임인철 부원장은 “요르단에서는 우리가 이겼다가 네덜란드에서는 우리가 졌고, 이번에 다시 우리가 이겼다”며 “인밥과는 2승 1패로 앞으로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6월 안에 연구로 수출 활성화 전략을 발표할 계획이다. 국가별로 원자력 기술 성숙도에 맞춰서 맞춤형 전략을 세우고, 경제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단순 설계, 공사에서 그치지 않고 핵연료 공급까지 이어질 수 있게 한다는 구상이다. 연구로 관련 기업을 육성하고, 인력 양성과 전 세계 연구로 관련 정보를 모으는 방안도 마련한다.
원자력연과 함께 이번 계약을 수주한 현대엔지니어링도 연구로 분야를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이승원 현대엔지니어링 상무는 “40년 동안 원자로 설계 사업을 수행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로 설계에서도 성과를 냈다”며 “이번 사업을 바탕으로 원자력연과 협력을 강화해 연구로 시장을 확대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창윤(오른쪽 세 번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교보빌딩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대회의실에서 열린 '미국 미주리대학교 차세대연구로 설계 수출 관련 기자간담회' 에 참석해 취재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과학기술정보통신부
“현지에선 민감국가 영향 없어”
공고롭게도 이번 연구로 수주 낭보는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 리스트에 등재한 지 하루 만에 전해졌다. 국내에선 한국이 민감국가 리스트에 오르면서 미국과의 과학기술 분야 협력이 제한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번 수주는 이런 우려를 기우로 만들었다.
지난 14일부터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주한규 원장은 “민감국가 지정 하루 만에 이번 계약이 체결됐는데, 미국 현지에서는 민감국가 지정과 관련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라며 “국내에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도 “이번 연구용 원자로 수출은 한국 연구계의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민감국가 지정과 무관하게 한국과 미국이 계속 협력해 나갈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민감국가 지정 해제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창윤 차관은 “미국 측에서는 민감국가 지정이 한미 간 과학기술 동맹 관계를 훼손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는데, 이번 수출 계약은 그런 입장이 구체적인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라며 “민감국가 지정 해제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