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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지브리 프사' 열풍, 창작자들에 '실존적 고민' 안겨
"오랜 시간과 노력 기울였는데 AI가 몇초만에 따라 해버려"
'나만의 콘텐츠' 고민…"불안해하기보다 AI 잘 활용해야"


샘 올트먼 오픈AI CEO와 미야자키 하야오를 지브리 화풍으로 만든 사진
[엑스 캡처. DB 및 재판매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승연 기자 = "창작자들은 하나의 그림체와 화풍을 구축하기 위해 오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데, 인공지능(AI)이 몇 초 만에 따라 해버리면 창작자 입장에서는 힘이 쭉 빠지죠."(인스타툰 작가 조민영 씨)

"지브리 프사 유행은 껍데기만 벗겨온 것 같아요. 지브리 화풍은 단지 예쁜 것이 아니라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철학이나 시대정신도 포함한다고 생각하는데, 예쁘고 유행이라서 소비한다면 예술에 대한 모욕처럼 느껴집니다."(웹툰회사 작화가 최모 씨)

최근 챗GPT가 몰고 온 '지프리 프사(프로필 사진)' 열풍이 창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열띤 논쟁을 낳고 있다.

한땀 한땀 공들인 수작업으로 아날로그 감성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이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지브리 애니메이션이다.

그러한 작가주의 지브리 화풍을 빅테크 오픈AI의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가 단 몇초, 몇분 만에 뚝딱 '모방'해버리니 한쪽에서는 열광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절망하고 있다.

머리카락 한 올, 구름 한 점에 몇 시간씩 들이는 인간의 설 자리가 좁아지면서 창작 활동을 하는 일러스트레이터·작가·디자이너에게 '지브리 프사 열풍'은 실존적 고민을 안기고 있다.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도쿄<일본>=연합뉴스) 일본의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지난 2013년 7월 26일 일본 도쿄도 고가네이시 니바리키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한국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2025.4.17. [사진 지브리 스튜디오 제공]


"창작의 가치 점점 낮아져"…"창작자의 해석·시선 중요"
인스타툰을 그리고 있는 조민영(25) 씨는 17일 "동료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우리 이제 만화 못 그린다'는 얘기를 한다"며 "챗GPT 지브리 열풍을 보면서 농담이 현실로 다가왔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창작의 가치가 점점 낮아지고 있어 힘이 빠진다"고 했다.

인스타그램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조씨의 경우 콘텐츠 업로드 속도가 빨라야 더 많은 구독자를 확보할 수 있는데, 챗GPT로 만화를 만드는 계정의 업로드 속도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는 설명이다.

조씨는 "만화 한 편을 만드는 데 하루에서 3일까지 걸린다면, 챗GPT를 활용해 만화를 올리는 계정은 하루에도 여러 개의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있다"며 "그렇게 구독자를 모아서 조회 수를 올리고 돈을 버는 계정이 많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설령 누군가가 챗GPT로 자신의 그림체를 베끼더라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는 점도 창작자들의 열정을 앗아간다.

조씨는 "책임 소재가 점점 불명확해지고 있다"며 "전에는 누군가 내 창작물을 베끼면 직접 연락해서 소명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챗GPT가 내 그림체를 베껴도 오픈AI에 연락할 수는 없지 않나"라고 하소연했다.

웹툰 회사 작화가 최모(25) 씨도 "동기들이나 비슷한 연차 동료를 만나면 '이제 나 같은 신입은 필요 없어질 것 같다'는 말을 농담처럼 한다"며 "기본기를 훈련하는 중이거나 아직 자기만의 스타일이랄 것이 없는 사람들은 더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실무에서 AI를 활용하고 있다는 최씨는 "키워드를 던져 일차적인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데 도움을 얻고 있다"며 "AI를 쓸수록 '왜 그려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AI가 플롯이나 이미지를 대략 생성해주는 만큼 이제 정말 중요한 것은 창작자의 해석, 시선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지브리 AI 이미지 생성을 비판한 애니메이션 감독들
[X 캡처. DB 및 재판매 금지]


"AI 지브리 사진 쓰지 말자" 목소리 나오지만…
지브리풍 프사 열풍에 미야자키 감독은 아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그는 앞서 2016년 일본 NHK 방송 다큐멘터리에서 AI로 만든 애니메이션을 두고 "이 기술은 나와 아무 관련이 없을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컴퓨터그래픽(CG) 기술자들이 인간의 그로테스크한 움직임을 AI로 구현했는데, 이를 두고 미야자키 감독은 "인간의 고통을 고려하지 않았다. 매우 불쾌하다"며 "삶에 대한 모독"이라고 일갈했다.

유명 만화 '원피스'를 애니메이션으로 연출한 이시타니 메구미 감독은 지난 2일 엑스(X·옛 트위터)에 "일본인 중에도 지브리 AI를 쓰는 사람이 있다니 절망스럽다"며 "지브리 브랜드 가치를 떨어트릴 수 있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미국 애니메이션 연출가 헨리 서로우도 지난달 28일 엑스에 "지브리 AI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들이 원작 아티스트를 불쾌하게 만들고 상처 입히는 것 말고는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일부 누리꾼들도 지브리 프사 유행에 편승하지 말자고 한다. AI가 넘어서면 안 될 인간의 창작 영역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엑스 이용자 'ki***'는 "AI 지브리 사진 쓰지 말자. 미야자키 하야오가 바보라서 쉬운 길을 안 택한 것이 아니다"라고 적었고, 또 다른 이용자 'yu***'는 "지브리풍 사진은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정신과 너무 안 맞는다고 생각한다. 합법적으로 새치기하라는 광고를 보는 기분"이라고 썼다.

오픈AI 샘 올트먼 CEO
[연합뉴스 자료사진]


결국은 독창성…"나만의 콘텐츠 위해 노력"
'지브리 프사' 열풍으로 국내에서 챗GPT는 주간 신규 다운로드 앱 1위를 차지했다.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6일까지 일주일간 챗GPT 신규 설치는 272만7천599건으로 전체 모바일앱 중 가장 많았다.

거침없는 생성형 AI의 시대, 창작자들은 결국 독창성에 답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3년 차 일러스트레이터 김세연(25) 씨는 "챗GPT가 생겨난 이후 나만의 그림체를 확립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 그림에서만 찾을 수 있는 인물의 표정, 분위기, 눈동자 같은 것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며 "어떤 그림을 보고도 내가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챗GPT가 학습한 것은 결국 세상에 이미 나와 있는 그림이다. 그래서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익숙한 그림을 그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인데, 사실 이런 고민은 챗GPT가 나오기 전에도 늘 해왔다"고 역설했다.

UI(사용자환경) 디자이너 이지연(31) 씨도 "자신만의 콘셉트가 없는 디자이너라면 위기를 맞이할 것"이라며 "UI 사용성이 국내외 시장에서 무엇이 다른지, 어떤 색상이 어떨 때 사용하는지 등 자신만의 디자인 논리와 콘셉트가 중요해졌다"고 짚었다.

조씨는 "인공지능은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의 감정, 생각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며 "고전문학에서 쓰이는 표현 같은 것을 공부하면서 인공지능이 따라 할 수 없는 저만의 콘텐츠, 스토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씨도 "AI가 따라 하지 못하는 그림에 대한 수요는 항상 있을 것 같다"며 "아날로그 재료에서 나오는 연필의 질감이나 붓질의 흔적같이 옛날 감성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이웃집 토토로'. 재판매 및 DB 금지]


"AI는 이제 창작의 도구…등한시하면 도태"
전문가들도 '지브리 프사 열풍'으로 창작의 본질이 명확해졌다고 했다.

한창완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는 "이번 지브리 열풍으로 챗GPT는 하나의 경계를 넘었다. AI를 어려워하던 사람들도 이번 유행을 계기로 유료 결제를 하며 사용 방법을 학습했다"며 "막연하게 불안해하기보다 잘 활용해서 진짜 오리지널리티를 만들 시기가 왔다"고 짚었다.

한 교수는 "인공지능은 이제 창작의 도구라고 봐야 한다"며 "등한시하면 앞으로 창작 생태계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공장 시스템의 웹툰 스튜디오라 하더라도 이제는 AI를 잘 쓰는 사람을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김영재 한국애니메이션학회장(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도 "결국 '백 투 베이직'(Back to basic)"이라며 "제작 및 기술적인 영역은 점점 AI가 대체해나가는 만큼 창작자 고유의 세계관, 철학을 배양하는 일이 핵심"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교육자로서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AI를 잘 쓸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남는다"며 "'색감을 털어줘, 날려줘'와 같은 명령을 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작품활동을 통해서 감각을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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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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