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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4월9일 오전, 체포된 지 1년 만에 처음으로 면회를 기대하며 서대문구치소를 찾았던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가족들이 그날 새벽과 아침에 이미 사형이 집행됐다는 소식에 오열하고 있다. 4·9평화통일재단 제공


김동훈 | 전국부장

박근혜와 문재인이 맞붙은 201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대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우연히 만난 중년의 택시 기사는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도 아버지의 독재를 사과했는데, 박근혜는 아버지에 대해 한마디 사과도 없다”며 흥분했다.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앗, 여기 대구인데…’ 대구에서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대구는 본디 진보 도시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의 모스크바’로 불렸다. 1956년 5월 제3대 대통령 선거 당시 대구에서 진보당(무소속으로 출마) 조봉암 후보의 지지율이 72.26%로 자유당 이승만 후보를 세배 가까이 앞섰다.(‘다시, 봄은 왔으나’ 중에서) 박정희의 친형 박상희도 공산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였다. 신간회 간부로 항일운동에 참여했고, 여운형이 결성한 건국동맹에서 활동했다. 박정희도 사회주의자 이재복의 권유로 남로당에 이름을 올렸다가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진보의 성지’ 대구가 보수로 돌아선 것은 1974년 박정희 정권의 인혁당 재건위 조작 사건부터다. 앞서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 때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인혁당이 북한 노동당의 지령으로 결성됐고, 국가 사변을 꾀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18일 동안 밤샘 조사에도 혐의점을 찾지 못하고 되레 고문의 흔적만 드러났다. 부장검사를 포함한 검사 4명이 “양심상 도저히 기소할 수 없다”며 사표를 던졌다.

이렇게 실체도 없는 인혁당은 10년 뒤 인혁당 재건위라는 이름으로 망령이 되살아났다. 1974년 4월, 우홍선(당시 45살)은 회사에서 직원들과 회의하다가, 일어학원 강사였던 이수병(당시 38살)은 수업하다가, 경기여고 교사였던 김용원(당시 39살)도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끌려갔다. 조작에는 고문이 필수였다. 전기 고문이 얼마나 혹독했던지 하재완(당시 43살)은 장이 항문으로 튀어나왔다. 당시 김동조 외무장관은 1975년 5월1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반체제 인사에 대한 ‘승인되지 않은’ 고문은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이것은 미국, 서독, 영국보다는 나쁘지 않다”는 해괴한 망언을 남겼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들은 1975년 4월8일 오전 10시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판결을 받은 뒤 다음날 새벽과 아침에 모두 사형에 처해졌다. 4·9평화통일재단 제공

재판은 각본대로 진행됐다. 심지어 최종심에서는 피고인들도 없이 재판관들만 나와 군법회의 공판조서만 보고 단 10분 만에 항소를 기각하고 사형을 확정했다. 이때가 1975년 4월8일 오전 10시10분. 그리고 18시간45분 만인 다음날 새벽 4시55분 대구매일신문 기자였던 서도원(당시 52살)을 시작으로 오전 8시30분 삼화토건 회장이던 도예종(당시 50살)까지 약 30분 간격으로 8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중정은 고문의 흔적을 감추려 송상진(당시 46살)과 여정남(당시 30살)의 주검을 탈취해 화장해버렸다. 유가족들은 지옥 같은 삶을 살았다. 중정 요원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고, ‘빨갱이 집안’이라는 손가락질을 당했다. 하재완의 네살배기 막내아들은 새끼줄에 목이 감기고 나무에 묶여 ‘총살놀이’까지 당했다.

인혁당 희생자 8명은 모두 영남 출신의 지식인들이다. 이들이 사형을 당하자 진보 진영은 크게 위축됐다. 특히 영남지역 진보 지식인들의 씨가 말랐고, 어느덧 영남은 보수의 공고한 텃밭이 돼버렸다.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은 32년 만인 2007년 재심에서 8명 모두 무죄가 확정됐다. 그러나 희생자들을 향한 패악질은 끝나지 않았다. 도예종, 서도원, 송상진 등 3명의 동문이 희생된 영남대 총학생회는 인혁당 사건 20주기를 맞은 1995년 4월9일 교정에 2m 높이의 추모비를 세웠다. 하지만 경찰은 포클레인을 동원해 추모비를 뽑아냈다. 총학생회장 출신 여정남을 잃은 경북대에서도 20주기를 맞아 추모비와 안내판을 만들었지만 경찰은 중장비를 동원해 철거해버렸다.

지난 8일은 인혁당 재건위 ‘사법 살인’ 50주기였다. 영남대 동문들은 추모비를 교내 통일동산에 다시 세우려 했다. 그러나 학교 쪽은 포클레인을 세워놓고 통일동산을 펼침막으로 꽁꽁 봉쇄했다. 반면 박정희 동상은 지난해 11월과 12월 영남대와 동대구역 광장에 잇따라 세워졌다. 극우 세력은 여전히 희생자와 유족들을 홍어, 종북좌파, 빨갱이라고 조롱한다. 홍준표와 김문수 등 국민의힘 유력 대선 후보들은 대놓고 ‘박정희 정신’ 운운한다. 구천을 떠도는 8인의 원혼이 땅을 칠 노릇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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