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유 있는 외면
선거여론조사 항목 대부분 정치·사회 현안
이들 질문은 정부 심의 대상에서 빠져 허점
"윤석열·김건희 중 누가 더 힘이 세나"처럼
정치·사회 질문 얼마든 입맛대로 설계 가능
"의뢰자 원하는 결과 보여주기 위한 도구 악용"
선거여론조사 항목 대부분 정치·사회 현안
이들 질문은 정부 심의 대상에서 빠져 허점
"윤석열·김건희 중 누가 더 힘이 세나"처럼
정치·사회 질문 얼마든 입맛대로 설계 가능
"의뢰자 원하는 결과 보여주기 위한 도구 악용"
편집자주
의심은 가는데 확신은 할 수 없다. 수상한 여론조사 얘기다. 민심의 바로미터라던 여론조사는 불법계엄 사태 이후 미심쩍은 결과물로 신뢰성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과연 여론조사는 조작이 가능한 것일까. 한국일보는 지난 두 달 여론조사 시장의 실태를 파헤치며 정치권과 조사기관의 불법 편법 공생 관계를 확인해봤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지는 21대 대통령 선거가 6월 3일로 확정된 지금, 각종 여론조사의 결과를 다시금 경계하고 조사 이면을 냉철하게 들여다볼 때다.한국일보 다큐멘터리 화면 캡처.
여론조사의 신뢰 정도는 대체로 '질문'이 결정한다. 그래서 질문의 설계에 '단순화'와 '가치 중립'은 중요하다.
하지만 최근 선거여론조사는 이 같은 기본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을 자주 받는다. 미국 등 해외와 달리 선거여론조사 기준을 법으로 규정·관리하고 있음에도 '편향 설문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현실과 동떨어진 법 규정'과 '이런 법적 허점을 악용하는 선거여론조사기관의 불공정 행태'에서 찾는다.
구멍 숭숭 뚫린 법...기획 설문 오히려 부추겨
선거여론조사는 공직선거법이 규정하는 '선거여론조사기준'을 따라야 한다. 명확한 법적 정의는 없지만 대법원 판례 등에 비춰보면, 정당 지지율이나 정당·입후보자의 선거공약에 대한 질문을 포함할 경우 선거여론조사로 간주한다.
법은 '누구든지 피조사의 응답이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에게 편향될 수 있는 내용으로 질문지를 작성하거나 질문해서는 안 된다'고 엄히 규정한다. 또한 '질문 순서를 통해 편향된 응답을 유도해서는 안 된다'고 적시한다. '주관적 판단이나 편견이 개입된 어휘나 표현',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에 대하여 긍정적 또는 부정적 이미지를 유발할 수 있는 내용' 등을 사용해선 안 된다는 세부 규정도 있다. 나름 촘촘한 기준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법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얼마든지 우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먼저 법은 선거여론조사만을 대상으로 한다. 선거여론조사기관은 보통 정당 지지율을 묻는 선거여론조사 항목과 다양한 정치·사회 현안을 묻는 항목을 질문지에 함께 넣는다. 이럴 경우 후자는 선거여론조사 법적 기준을 적용받지 않는다. 정치·사회 질문을 교묘하게, 입맛대로 설계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픽=이지원 기자
"윤석열·김건희 중 누가 더 힘이 세나?"
2023년 7월 23일, 유튜버 김어준씨의 '여론조사 꽃'이 정당 지지도 정기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문항은 11개로, 선거여론조사 문항은 2개다. 9개는 모두 정치·사회 현안에 관한 질문, 그중 5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씨 관련 내용이다.
예를 들어 '부산항에 입항한 미 해군 전략 핵잠수함 시찰에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씨가 참석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윤 대통령과 김건희씨 중 누가 힘이 더 세다고 생각하나'와 같은 질문이다. 김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 답변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였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여론조사 공정'은 지난 2월 전국 정당지지도 여론조사(ARS) 결과를 발표했다. 질문에는 '문형배 헌법재판관의 SNS 게시물 삭제', '이미선 재판관 임용 당시 주식 거래 논란', '민주당과 우리법연구회의 카르텔 주장' 등의 내용이 담겼다. 여당과 윤 전 대통령이 강조해 온 사안을 문항으로 구성한 뒤 마지막에 윤 전 대통령 지지 여부를 묻는 질문을 배치했다. 보수층 응답이 집중되면서 윤 전 대통령 지지 응답은 사상 최고인 51%까지 치솟았다.
그래픽=이지원 기자
공정은 윤 전 대통령 탄핵 선고를 하루 앞둔 이달 3일에도 '전국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 결과를 내놨다. 총 9개 문항 중 '이재명 대표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2심 판결(무죄)에 대한 의견',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등 내각을 향한 야당의 연쇄 탄핵에 대한 의견' 등 야당과 관련된 질문이 4개였다. 여러 정치인을 나열한 뒤 가장 '폭력'적인 것 같은 사람을 꼽으라는 문항도 있었다. 이 문항에서 이재명 대표가 35.5%를 얻어 1위였다.
전문가들은 '폭력'이라는 표현 자체가 응답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것이며, 이 대표를 흠집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치된 문항이라고 분석했다. 대형 여론조사 업체 임원은 "(이처럼) 일부 기관들이 여론조사를 진영 싸움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 "문제 공감하지만 국회가 해결해야"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는 선거여론조사 실시 전 신고 단계에서 설문지를 검토하며 '1차 파수꾼'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정당 지지율을 묻는 질문을 위주로 특정 응답을 유도하기 위한 단어나 문장이 포함돼 있는지 여부만 살핀다. 정치 현안 질문은 보지도 않는다.
여심위 관계자는 "문제 의식엔 공감하지만 국회가 법을 바꿔줘야 하는 부분"이라며 "정작 국회는 자기가 원하는 여론조사 결과엔 침묵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여심위가 오히려 선거여론조사의 부적절한 활용과 확산을 촉진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조사기관의 등록과 여론조사 공표를 하면서, '정부 인증' 같은 공신력만 실어준다는 것이다.
"정치 현안 조사, 공표 여부 고심해봐야"
더욱 심각한 건, 검증이 되지 않은 설문도 걸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특정 주장을 인용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을 던져도,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는 얘기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게다가) 응답자는 2초 내 답변을 해야 하는데 그 결과가 얼마나 의미가 있겠나"라며 "의뢰자가 원하는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여론조사를 악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선거여론조사 결과를 등록할 땐 정치 현안 조사는 등록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한 조사기관 대표는 "선거여론조사에 포함된 정치현안 설문 결과가 함께 공개되면서 혼란을 부추긴다"며 "등록 대상을 선거여론조사만 한정하면 지금의 혼란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또한 "과거 언론이 자극적인 뉴스를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듯, 신뢰성이 떨어지는 기관이 생산한 여론조사 결과를 아예 인용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알아서 정리가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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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1화 검은 커넥션
- • "600만원이면 돌풍 후보로" 선거 여론조사 뒤 '검은 커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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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0만원이면 돌풍 후보로" 선거 여론조사 뒤 '검은 커넥션'
- ② 2화 '꾼'들이 있다
- • 태양광 비리 쫓던 檢, '여론조사 조작' 꼬리를 찾았다...무더기로 발견된 휴대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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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3화 불신의 책임자
- • 여론조사 공천 OECD 중 한국이 유일한데…'어디 맡기고' '어떻게 조사하고' 죄다 깜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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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 4회 이유 있는 외면
- • 의심은 커지는데 제재 건수는 줄었다?...여심위 조사 인력 달랑 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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