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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서울 용산 의협회관에서 만난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이 의대 교육, 필수의료 등과 관련된 정부 정책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지난해 2월 시작된 의·정갈등은 해를 넘겨 심화하고 있다. 등록으로 돌아오는 듯했던 의대생들 다수는 유급까지 불사하며 수업거부를 하고 있다. 길어진 의·정 갈등에 지친 의대생들이 현역병 입대를 택하면서 향후 몇년 간 공보의·군의관 수급에 차질도 예상된다. 전공의들은 여전히 대학병원을 떠나있다. 내년도 의대정원을 3058명으로 돌릴 수 있다는 정부의 입장 변화도, 2000명 증원의 핵심인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도 의·정갈등 해결의 마중물이 되진 못했다.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만난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은 “저희(의료계)도 이런 상황을 빨리 해결하고 싶다. 하지만 해결을 위해서 가장 먼저 변해야 하는 주체는 ‘정부’”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 강경하게 정부 정책에 반대해왔으며 젊은 의사들을 대표해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인물이다. 박 위원장과의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정부가 2026년도 의대정원을 증원 이전 수준인 3058명으로 돌리겠다고 했지만, 다수의 의대생을 비롯해 의료계 일각에서는 3058명이 해결의 ‘키’가 아니라고 여기는 듯 하다.

“제가 의대생들 입장을 대표할 수 없기 때문에, 의대생에 대해 말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다만 저는 현재 24·25학번 교육이 불가능한 상황이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더블링’(두 학번이 같이 교육받는 것)이라고 하는데 지방에서는 3~4배수의 학생들이 같이 교육받아야 하는 학교도 있다. 건물을 좀 더 지은 것 외에는 1년 전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교육부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에는 24·25학번 수업을 압축하고 계절학기 등을 활용해 순차적으로 졸업시키는 교육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실제로 의대 교육을 받아본 입장에서는 정상적 교육이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의대는 일반 학부에 비해 공부할 양이 몇배나 많고, 임상 과목으로 들어가게 되면 더 많아진다. 독학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도 어렵고, 여럿이 모여서 공유하고 토론하면서 습득해야 하는 수업들이 많다. 해부학 실습의 경우 제가 나온 학교의 실습 여건이 괜찮은 편이었음에도 9명이 한 조를 이뤄서 한 명당 한 부위를 겨우 실습했다. 제가 작년에 ‘2025학번 모집정지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던 것은 현실적으로 교육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정부나 언론이나 정원만 이야기하지 교육의 질이나 앞으로의 의료 생태계가 어떻게 바뀔지에 대한 논의를 계속 누락하는 것 같다.”

-정부가 3058명으로 정원을 다시 돌렸다는 것을 해결의 ‘시작점’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3058명이느냐 5058명이느냐를 논한 것은 벌어진 상황을 교육 부분에서 어떻게 수습할까에 대한 것이었다. 2024년 2월부터 우리는 ‘몇명으로 늘리느냐’가 아닌, ‘실제 우리 사회가 의사를 더 필요로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했어야 한다. 의사가 부족한 건 맞나, 우리 사회가 의사를 더 고용해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는 것에 어떻게 합의했는가, 의료 이용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우리가 뽑은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로 갈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그런 것들이 제대로 이야기되지 않았고, 변한 것도 없다.”

-정부는 보건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를 만들어서 앞으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증원’을 논의하겠다고 했다. 추계위 과반(8명)은 의료계(공급자)가 추천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의협은 추계위의 독립성, 자율성 등을 믿을 수 없다며 비판하고 있다.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개입될 요지가 많은 법안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정부는 증원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데, 현재 추계위 구조에서는 이를 제동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관련 연구를 하는 추계센터도 정부 공공기관이고, 참여 전문가 조건도 정부 의도를 많이 반영할 수 있게 돼있다. 전문가 선정 요건으로 ‘임상 경험이 있는 사람’을 요구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사용자 측인 병협(대한병원협회)은 과반 추천 몫에서 빼달라고 했는데도 안 됐다. 다만 이전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증원 논의 회의록이 비공개되던 것을 개선한 것이다.”

-정부는 ‘전공의 7대 요구안’ 수용해 의료정책을 개선하고 있다고도 설명한다. 추계위 설치,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등의 요구사항은 진행하고 있다. 다만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폐기 같은 것은 정부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워보인다.

“7대 요구안이 의료 정상화의 최소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정부가 요구안 일부조차도 제대로 수용하지 않고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2023년 의료현안 협의체에서 의료계와 정부가 어느 정도 합의했던 안건이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이었다. 이중에서 저희가 첫 번째로 강조했던 것이 연속근무시간 단축이었고, ‘연속근무 24시간 이내’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의·정갈등 사태 벌어지고 나서 시범사업안이 나왔는데 24시간에서 30시간으로 후퇴했고, 최근에서야 다시 24시간이라는 안이 나왔다.

수련병원의 전문의 인력 채용도 확대하겠다 했지만, 병원에서 일하는 계약직 의사를 정규직으로 바꾸는 식으로 진행돼 실제로 안에 있는 전문의 숫자는 크게 차이가 없다. 필수의료 패키지도 보면 제목만 나열돼 있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의대 증원의 최종 책임자였던 대통령이 파면됐고, 새 정부의 정책 방향도 결정되지 않은 현 상태에서는 의료계와 협상할 해결의 주체가 뚜렷하게 없다는 의견도 있다.

“어쨌든 이전의 평형 상태를 깬 것은 ‘정부’다. 그래서 정부가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의료계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지는 것이라는 프레임에만 갇혀 있어서 책임을 오히려 의료계에 전가하고 있다고 본다. 아무리 대통령이 공석이라고 해도, 실무적으로 일을 추진해오던 장관, 차관은 다 그대로 있다. 그러면 전 대통령이 잘못했던 것, 실패했던 것들에 대해서는 지금이라도 원상복구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정상적인 국가에서 해야할 일이지 않나. 해결할 권한이 없는 것이 아닌데, 자꾸 현재 상황이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정부에 가만히 있게 만들 여지를 주는 것 같다.”

-의·정 갈등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앞으로 어떤 영향이 있을까.

“저는 ‘메이저과’(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와 관련된 과들) 동료들이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책임감을 느낀다. 이전부터도 메이저과 동료들은 결국 이쪽이 서서히 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환자를 살리고 싶은 사명감 때문에 환경이 열악하거나 소송 위험이 더 커도 이 길을 택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태가 엉망진창으로 끝난다고 하면, 이들 입장에서는 힘든 수련까지 받으면서 메이저과로 갈 이유가 없다.

국민의 관점에서 저는 의료계를 대하는 관점이 바뀐 것도 안타깝고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일에 대한 보상이라는 게 돈, 워라밸이 될 수도 있지만 젊은 의사들에겐 그중 하나가 ‘사명감’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나서서 이번 사태를 의사들 밥그릇 싸움처럼 싸잡아서 매도하고 환자, 의사 간 신뢰관계를 깨뜨린 부분이 저는 나중에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올 것 같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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