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부 '러 외교관 초청 말라' 권고했다가 역풍
헌화하는 세르게이 네차예프 주독 러시아 대사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년을 맞아 독일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러시아 외교관이 논란 끝에 참석했다.
독일 외무부는 주정부와 각종 단체에 공문을 보내 행사를 허위 선전에 악용할 수 있다며 러시아 외교관을 초청하지 말라고 권고한 바 있다.
베를리너차이퉁과 rbb방송 등에 따르면 16일 오전(현지시간) 브란덴부르크주 젤로에서 열린 전사자 추모식에 세르게이 네차예프 주독 러시아 대사가 참석해 헌화했다.
주독 러시아 대사관은 이날 텔레그램에 "나치즘에 대한 승리 80주년은 러시아뿐 아니라 함께 고난을 겪은 모든 옛 소련 국민에게 신성한 날"이라며 "외무부 지침에 대한 보도가 사실이라면 몹시 실망스럽다"고 적었다.
베를린에서 동쪽으로 60㎞ 거리에 있는 폴란드 국경 근처 마을 젤로는 1945년 4월16일부터 소련군과 나치 독일군이 고지전을 벌인 곳이다. 소련군은 젤로 방어선을 뚫고 같은 해 5월 아돌프 히틀러가 은신한 베를린을 함락했다. 젤로 고지전은 소련군 약 3만명, 독일군 약 1만2천명이 목숨을 잃어 2차 세계대전 기간 최대 인명피해를 낸 전투로 꼽힌다.
젤로의 러시아 전사자 추모비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독일 외무부가 올해 1월 배포했다는 공문은 최근 독일 곳곳에서 종전 기념행사가 본격 열리기 시작하면서 언론에 알려졌다. 외무부는 러시아와 벨라루스 외교관이 행사에 참석할 경우 대규모 선전과 허위사실 유포, 역사수정주의적 왜곡에 악용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서방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민관 모두 러시아와 관계를 사실상 끊었다. 그러나 나치를 무찌르고 유럽을 해방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승전국 러시아를 전범국 독일이 일방적으로 배제하는 게 옳은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직업군인 출신인 로베르트 니츠(무소속) 젤로 시장은 행사에 앞서 "소련이 우리 지역을 히틀러 파시즘에서 해방했다. 우리는 그걸 잊지 않는다"며 "러시아 측은 그들 전사자 묘역에 들어갈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예년보다 10배 가까이 많은 약 500명이 참석했다고 베를리너차이퉁은 전했다. 또 네차예프 대사가 인파에 둘러싸여 사진 촬영 요청까지 받았다며 "독일 정부가 원하지 않았던 그림"이라고 논평했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