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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범죄로 얽힌 검사·브로커·경찰…영화 ‘야당’
영화 <야당> 포스터.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대한민국 검사는 대통령을 만들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어!”

이제는 당연하게 들리는 이 이야기를 만년 평검사 딱지를 떼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려던 부장검사 구관희(유해진 분)가 내지른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 출신 대선 후보의 ‘약쟁이’ 아들 앞에서.

16일 개봉한 영화 <야당>은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여기서 야당은 여당, 야당할 때 나오는 그 야당이 아니다. 영어 제목 <YADANG: THE SNITCH>에 나오는 대로 ‘밀고자’를 의미한다. 마약범죄 정보를 수사기관에 제공한 대가로 본인은 처벌을 피하고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이들을 일컫는 이 바닥의 은어라고 한다. 수사기관의 끄나풀이자 프락치 정도의 개념으로 이해되지만 영화에서는 서로 충돌하는 이해관계자 각자의 욕망을 실현시켜주는 중개인 역할을 한다. 영화에서는 주로 ‘야당질’ ‘야당짓’ 등의 용례로 쓰이는데 배우 강하늘이 야당 이강수 역을 맡아 종횡무진 활약한다. 검사와 야당의 협잡에 번번이 허탕을 치다 신세까지 망치게 된 마약수사대 형사 오상재 역은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로 ‘국민 아빠’가 된 박해준이 연기했다.

영화 <야당>에서 강하늘 배우가 ‘야당’ 이강수 역을 연기하고 있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그 ‘야당’이 아니라는데···마약업계 용어 ‘야당’

하필이면 대선 시즌이다. ‘수원지검 검사실에 아침마다 약쟁이가 모여 정보를 교환한다’는 2021년 경향신문 기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황병국 감독은 2023년 촬영된 영화가 2025년 대선을 앞두고 개봉하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을 것 같다. 황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은 “그 야당이 아니다”라며 ‘정치 영화’라는 오해를 하지 말아달라고 하는데, 오히려 본격 정치영화로 분류해도 될 것 같은 영화다. 마약범죄 안팎이 이야기의 주된 소재이지만 검사와 경찰, 야당과 마약사범들의 ‘정치질’ 뒤에 숨어있는 욕망이 핵심 주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화의 스토리라인에 대통령 선거가 배경으로도 등장한다.

영화는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장면 전환도 빠르다. 줄거리나 대사 내용을 더듬어 보기 위해 잠시 멈추려고 하면 어느덧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 버린다. 그만큼 리듬감이 느껴진다. 이모개 촬영감독이 “그간 작업한 영화 중에서도 카메라 움직임이 많은 편”이라고 했는데, 관조적인 시선을 배제함으로써 배우의 흔들리는 감정이 잘 전달되도록 의도한 것이라고 한다. <범죄도시4>의 허명행 감독이 무술감독으로 참여해 여러 장면에서 완성도 높은 액션을 선보인다.

한국 영화가 ‘검사’를 소비하는 법

영화 <야당>에서 유해진 배우가 구관희 검사 역을 연기하고 있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한때 우리 영화에는 “검사가 안 나오면 영화가 안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단골 역할이자 소재로 쓰였던 게 검사다. 이 영화는 그 문법을 그대로 따르면서 마약과 범죄조직까지 등장하다 보니 ‘어디서 본 듯한 영화’라는 지적을 피하기가 어렵다.

영화의 큰 줄기는 <내부자들>(2015)과 유사한 흐름을 따른다. <내부자들>에서 배우 이병헌의 팔이 잘려나가듯 <야당>에서 강하늘은 두 다리가 불태워진다. 권력자를 향한 복수 서사도 빼다박은 듯하다. 마약사범들이 파티장 한켠에서 약물에 취해 노는 장면은 <내부자들> 속 너저분한 유흥 장면과 겹쳐 보인다.

영화 초반 재벌 회장 아들이 마약에 취해 있는 대목에서는 <베테랑>(2015)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유아인이 연기한 재벌 2세 조태오 역은 <야당>의 대선 후보 아들 조훈(류경수 분)으로 승계된다. “검찰이면 가로채도 돼?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니냐”는 마약수사대 경찰의 외침은 <부당거래>(2010) 속 광역수사대 경찰 황정민이 검사 류승범을 향해 소리치는 듯한 기시감이 든다.

공교롭게도 황병국 감독은 이 세 영화에 모두 연기자로 출연했다. 새로운 영화에 목마른 관객에게는 10~15년 묵은 영화처럼 느껴질 우려가 있다.

황병국 감독. 영화 <부당거래>에 국선변호인으로 출연한 모습.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이 만든 기시감

‘이미 본 듯한 영화’라는 느낌이 지배하는 것은 영화 때문만은 아니다. 현실이 영화보다 더 시궁창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피의자로 검찰에 출석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팔짱을 끼고 있고 그 앞에 수사 검사가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있던 장면을 기억한다. 이 장면이 영화에는 ‘오마주 아닌 오마주’로 쓰인다. 영화 내내 검사실 벽에 걸려있는 액자 속 소훼난파(巢毁卵破)도 거슬린다. 새 둥지가 부서지면 그 속에 있는 알도 함께 깨진다는 뜻이다. 검사장 취임사나 행사 축사 등에서 ‘소훼난파’를 가장 즐겨 쓴 검사가 별장 성접대·성폭행 동영상의 주인공인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다. 구글에 ‘소훼난파 김학의’를 검색하면 여러 건의 기사가 검색된다.

영화 속 검사 구관희는 출세욕이 그득하지만 대체로 꾹꾹 눌러담는다. 스테퍼 운동기구를 한 걸음 한 걸음 눌러 밟듯이. 그러다 폭발적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가 바로 “대한민국 검사는 대통령을 만들 수도 있고” 운운할 때다. 배우 유해진은 그 대사에 ‘××꺼’란 욕설을 한 마디 더 붙였다. 유해진은 “감독에게 그 욕을 제발 자르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만큼 꼭 필요한 욕이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검사가 대통령을 만드는 걸 넘어 직접 그 자리에 올랐다가 쫓겨나는 것까지 목격했다. 자칫 뻔해질 뻔한 대사를 살려낸 유해진의 시원한 욕설은 그래서 더 와닿는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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