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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11일 서울 한남동 관저를 떠나 서초동 사저로 이동하는 중 차량 밖으로 지지자들을 향해 불끈 주먹을 쥐고 있다. 민주당은 "개선장군 행세"라고 비판했다. 전민규 기자
" "다 이기고 돌아온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서울 서초동 사저로 돌아간 지난 11일 이웃 주민에게 한 말이다. 자멸적인 계엄 발동에 따른 필연적인 탄핵 인용으로 그를 대통령으로 세우고 뽑은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전체가 궤멸적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참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이 아닐 수 없다. 탄핵당해 정권 내줄 위기에 처했는데 대체 누구를 상대로 뭘 이겼다는 걸까.

무엇보다 그는 특정 정파 수장이 아니라 국민 통합과 안녕, 국가 번영을 최우선으로 둬야 할 대통령이었다. 당초 의도가 무엇이었든 계엄이란 무모한 결정의 후폭풍 탓에 무고한 국민이 극심한 사회 갈등과 민생 위기 속에서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일단 고개부터 숙이는 게 범부라도 알 법한 최소한의 도리다. 그런데 일말의 미안함을 표시하기는커녕 마치 영역 싸움 나선 골목 대장마냥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걸 보면서, 어쩌다 국민이 이 정도 그릇을 대통령으로 뽑았나 다시금 복기해봤다.

국민·비전·반성 없는 국힘 경선
'이재명 포비아'만으로는 부족
대통령을 경력 종착역 삼지 않고
국민 위한 출발점 삼을 인물 필요
사실 답은 뻔하다. 일등 공신은 지난 대선 때부터 줄곧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해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다. 비단 보수층뿐만 아니라 적잖은 친노·친문 세력 사이에서도 '이재명 포비아'가 워낙 심하다 보니 "이재명만 아니면 된다"며 서로 손 잡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지난 10일 대선 출마 영상을 공개했다. 이 전 대표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고통 없는 삶을 추구하는 '먹사니즘'을 강조했다. [사진 이재명 캠프]
가까스로 당선된 그가 잘해주길 바랐지만, 불운하게도 그에겐 국가 지도자로서 꼭 필요한 역량도 비전도 없었다. 그가 "다 이기고 왔다"며 덧붙인 "어차피 (임기 채워) 5년 하나 (탄핵당해) 3년 하나"라는 발언이 이를 잘 보여준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작금의 위기 극복을 넘어 미래 세대 번영까지 챙기려는 진정한 리더였다면 감히 그런 말을 내뱉지 못했을 거다. 오히려 남은 임기를 잃어버린 게 정말 아프고 안타까워 조바심냈을 거다. 하지만 그는 아니었다. 이미 최고 권력인 대통령직은 누려봤으니 계엄이라도 해서 국회든 언론이든, 심지어 의사든, 자기 맘대로 나라를 좌지우지하며 호령하지 못할 바에야 5년이든 3년이든 큰 차이가 없다고 여긴 모양이다.

한마디로 그에게 대통령 자리는 검사 윤석열 경력의 화려한 종착지였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려는 정권의 출발점은 아니었다. 그의 이런 인식은 앞서 지난 1월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체포되기 직전 관저에서 나경원·윤상현 의원 등 지지자들과 만나 "나는 대통령까지 했기 때문에 더 목표가 없다"고 말한 대목에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지난 14일 출마 선언한 홍준표 전 대구시장 말마따나 윤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정리된 마당에 다시 장황하게 그의 철학·비전 부재를 얘기하는 건 속속 출마 선언 중인 국힘 대선 주자들에게서 윤 전 대통령 모습이 그대로 겹쳐 보여서다. 여전히 비호감이 큰 이재명 후보 때리기로 대통령 돼서 본인의 정치 경력에 화려한 종지부를 찍겠다는 사람만 가득해 보인다는 얘기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 출마한 김문수 후보(왼쪽부터), 한동훈 후보, 홍준표 후보. 중앙포토
"12가지 죄목으로 재판받는 피고인 이재명 상대엔 가진 것 없고 깨끗한 김문수가 제격", "위험한 이재명 꺾고 대한민국 구할 유일한 필승 후보는 나경원", "피고인이자 화려한 전과자 이재명과 홍준표의 대결"…. 자기 당 출신 대통령의 과오로 막대한 세금 들여 치러지는 대선의 예비 후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모두들 국민은 안중에 없고, 미래 비전 제시 없이, 반성조차 없는 3무(無) 출마 선언을 했다. 탄핵에 찬성한 한동훈 후보 역시 사과는 있지만 '이재명'을 8번이나 언급한 판박이 선언을 했다.

지난 대선 국힘의 승리는 "뭘 해도 이재명보단 낫겠지"라며 최악 대신 차악 고르는 심정으로 투표한 국민이 많아 가능했다. 윤 전 대통령이 그런 기대마저 꺾어놓은 터라 이젠 "누군 절대 안 된다"로는 안 통한다. 그런데도 국힘은 이 전략만 답습하고 있으니 참 딱하다. 이대로라면 누가 국힘 대선 후보가 되든 결국 이재명 당선 도우미가 될 수밖에 없으니 하는 말이다.
안혜리 논설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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