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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디올렉스, 뇌전증 2가지만 보험 적용
환자 기준 높아 보험 혜택 받기 어려워
日은 임상시험, 韓 규제로 환자 참여 못 해

대마의 칸나비디올(CBD) 성분은 뇌전증에 이어 파킨슨병, 우울증 등 다양한 질환에 효과를 보여 치료제로 개발될 가능성이 커졌다./미국 질병통제청(CDC) 홈페이지 캡처


#. 13세 최군은 두 살 때 난치성 뇌전증인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이후 영국 GW파마슈티컬스의 의료용 대마 성분 치료제인 ‘에피디올렉스(Epidiolex)’가 국내에 도입됐다. 건강보험(건보) 지원도 가능했지만, 최군 어머니는 포기했다. 급여 처방을 받으려면 기존 뇌전증약 5종 이상이 효과가 없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약을 쓸수록 아이가 심하게 무기력해지고, 간 독성 같은 부작용이 생겼다. 최군 어머니는 에피디올렉스 복용 후 발작이 확연히 줄어든 아이를 위해 다른 약 효과를 검증하는 절차를 생략하고 돈이 많이 들더라도 비급여로 계속 쓰고 있다.

#. 38세 권씨는 5년 전 유전성 질환으로 뇌전증 증상이 나타나는 ‘결절성 경화증’을 진단받았다. 발작 증세로 일상생활이 어려워져 4대 보험이 적용되는 정규직 취업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최소한의 수입으로 생활을 버티고 있다. 에피디올렉스의 국내 수입이 가능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희망을 가졌지만, 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라 처방을 받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권씨는 신약 임상시험에라도 참여하고 싶어 매일 인터넷 사이트를 들여다보지만, 환자 모집은 찾아보기조차 힘들다고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에피디올렉스를 2019년 허가했다. 드라벳 증후군,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결절성 경화증 등 희소·난치성 뇌전증 환자 치료에 한해 수입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현재 이 약의 혜택을 받는 환자가 그리 많지 않다. 건보 혜택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건보와 임상시험 관련 규제를 풀어 더 많은 환자가 혜택을 보게 하고 신약 개발도 촉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급여 문턱에 한 달 약값 3000만원
에피디올렉스는 1회 1병당 약값이 120만원 이상으로 한 달에만 3000만원에 달한다. 환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2021년부터는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면서 1병당 약 20만원으로 부담이 크게 줄었다.

하지만 보험 혜택을 받는 환자는 극히 일부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에피디올렉스가 허가받은 세 가지 질환 중 ‘드라벳 증후군’과 ‘레녹스-가스토 증후군’만 급여 대상으로 지정했다. 두 질환은 전체 뇌전증 환자의 10% 미만에 불과하다. 그보다 훨씬 많은 결절성 경화증 환자들은 여전히 비급여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급여 처방을 받는 절차도 간단하지 않다. 환자는 식약처에 환자 취급 승인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투약량과 용법이 상세히 적힌 진단서, 진료기록, 대체 치료 수단이 없다는 의사의 의학적 소견서까지 마련해야 한다. 승인 이후에야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약을 받을 수 있다. 승인까지 몇 달이 걸리는 일도 부지기수다.

특히 급여 대상이 되기 위해선 기존 뇌전증 치료제 11종 가운데 5종 이상을 사용했음에도 발작 빈도가 50% 이상 감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환자와 보호자들은 “독한 약을 5개나 써보는 데만 수년이 걸리고, 그 과정에서 부작용으로 아이가 견디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한다.

GW파마슈티컬스의 CBD 뇌전증 치료제 '에피디올렉스'

임상연구 ‘0′…대마 치료제 개발 사각지대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 국내에서는 에피디올렉스나 이와 유사한 치료제에 대한 임상시험이 사실상 전무하다. 경북 규제자유특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일부 대학병원 등에서 관련 연구들이 진행 중이지만, 국내 마약류관리법으로 실제 환자가 참여할 수 있는 임상시험은 모두 막혀 있다. 국제 공동 임상시험은커녕 동물실험조차 찾기 힘들다.

반면 일본에서는 에피디올렉스가 미국 FDA 승인을 받은 다음 해인 2019년에 일본인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 3상 시험이 진행됐다. 앞서 FDA 승인을 위해 진행된 임상시험은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호주, 이스라엘 등에 국한됐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처음으로 참여한 것이다.

일본도 한국처럼 일부 뇌전증 환자에 한해 이 약의 수입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임상시험을 거쳐 정식 승인을 받으면 약값의 대부분을 건강보험이 부담해 비용이 크게 낮아지고, 사용 가능한 질환 범위도 확대된다. 지금보다 유통 절차도 간소화돼 일반 병원에서도 비교적 쉽게 처방받을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 환자와 가족들은 “고통을 견디며 약을 기다리느니, 차라리 해외로 나가고 싶다”고 말한다.

김광기 동국대일산병원 신경과 교수(대한뇌전증학회 기획이사)는 “국내 약 5만명의 뇌전증 환자들이 언제 어디든 갑작스럽게 발작으로 쓰러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며 “현행 급여 기준은 지나치게 협소하다.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적응증 확대와 실질적 접근성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은백린 우리아이들병원 소아신경발달클리닉 교수(전 고대구로병원장)도 “에피디올렉스는 일부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현재 국내 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에게 상당히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국가 건보 재정 상황을 고려해 치료제 처방이 시급한 환자들을 중심으로 혜택을 확대하는 절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의료용 대마는 다른 뇌 질환에 대해서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왔다. 이를 확인하는 임상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KCL)은 2020년부터 파킨슨병 환자들의 환각·망상 증상을 줄이는 데 대마의 칸나비디올(CBD) 성분이 효과가 있는지, 안전한지 알아보는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태국에서도 파킨슨병 환자를 대상으로 CBD 약물의 효과를 평가하는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UBC)는 양극성 장애의 우울 증상 치료에 CBD 효과를 평가하는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국내 연구자들은 외국과 공동 임상시험이라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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