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부총리가 15일 국회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에 참석해 질의에 답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정부가 12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기로 했다. 산불 피해 복구 예산과 함께 통상 문제 대응과 인공지능(AI) 분야에도 4조원 이상을 투입한다. 이르면 다음 주 초 국회에 추경안을 제출할 예정인데, 규모를 더 늘려야 한다는 더불어민주당의 반대가 만만치 않아 난항이 예상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5일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국회와 언론 등의 다양한 의견을 고려해 당초 말씀드렸던 10조원보다 2조원 증액한 필수 추경안을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총 12조원 규모의 이번 추경안은 크게 재해·재난 대응(3조원 이상), 통상·AI 경쟁력 강화(4조원 이상), 민생 지원(4조원 이상)으로 나뉜다.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해 재해대책비를 기존 5000억원에서 배 이상으로 증액한다. 임대주택 1000호를 새로 짓고, 주택복구용 저리자금을 지원해 이재민의 주거 안정을 돕는다. 재해·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산림 헬기(6대), AI 감시카메라(30대), 드론(45대), 다목적 산불 진화차(48대) 등 도입에도 2조원을 쓴다.
최 부총리는 “추경은 무엇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국회의 초당적 협조와 처리를 간곡히 부탁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추경을 포함해 반도체 분야 재정 투자 규모를 기존 26조원에서 33조원으로 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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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에 연 50만원씩
15일 서울 종로구 한 전통시장. 이날 정부는 12조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계획을 발표했다. 소상공인 등 민생 분야에 4조원 이상을 쓴다. [뉴스1]
정부는 추경을 통해 통상전쟁 대응도 강화한다. 관세 피해 기업 등 지원에 정책자금 25조원을 새로 공급하고, 수출 바우처 규모를 2배로 늘린다. AI와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프라 투자 방안도 담았다. 우선 AI 분야에만 1조8000억원을 투입한다. AI 인프라 확충을 위해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 장을 확보하고, 한국형 AI 모델 개발을 위해 최정예팀에 3년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프로젝트도 가동하기로 했다. 최 부총리는 “최고 인재가 겨루는 글로벌 AI 챌린지 우승팀에는 후속 연구비를 파격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며 “AI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AI 혁신펀드’의 규모도 기존 90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민생 지원 부문에선 ‘부담 경감 크레딧’이 눈에 띈다. 경영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이 공공요금과 보험료 납부에 쓸 수 있게 연 50만원씩 지원하는 내용이다. 전년보다 카드 소비액이 늘어난 경우 증가분의 일부를 온누리상품권으로 환급해 주는 ‘상생 페이백 사업’도 신설한다.
예비타당성 조사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는 카드도 꺼냈다. 재정 집행 효과를 극대화할 목적이다. 통상 경제성이 있는지 점검한 뒤 사업에 착수하지만 시급하게 추진해야 할 경우엔 타당성 조사를 동시에 진행해 속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도 “어차피 당장 추경 규모를 확 늘리기는 어려운 여건이고, 경기 상황을 고려하면 대선 이후 추가 추경이 불가피한 시점”이라며 “지금은 신속히 집행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했다.
차준홍 기자
정부의 추경 편성은 2022년 이후 3년 만이다. 추경안의 국회 제출 시점에 대해 최 부총리는 “아무리 늦어도 다음 주 초까지 제출하겠다”며 “4월 말, 5월 초까지 (국회를) 통과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국회 설득이 변수다. 정부안에 대해 민주당은 ‘최소 15조원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허영 의원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 민주당의 입장”이라며 “조금이라도 더 증액될 수 있도록 논의해 보겠다”고 밝혔다. 반면에 신동욱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조속한 처리에 야당이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경 규모에 대한 공방은 이날 열린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도 이어졌다. 안도걸 민주당 의원이 “12조원으로 (시장의)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느냐”고 지적하자 최 부총리는 “국채 발행 규모도 고려하고, 그다음 ‘당장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가’ 생각해야 한다”며 ‘재정 만능론’에 선을 그었다. 최 부총리는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면서 재정의 역할을 하는 것이 어렵다는 걸 너무 잘 아시지 않느냐”고도 했다. 안 의원은 기재부 예산실장과 2차관을 지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담판할 필요성이 있느냐는 지적에 최 부총리는 “그런 가능성을 배제할 필요는 없는데, 당장은 장관급 회의부터 시작해 실무자끼리 관심 사항을 확인하고 협상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답했다. ‘민주당이 왜 기재부 해체 주장을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최 부총리는 “(기재부가) 신뢰받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사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