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내란 사건 첫 형사 재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8일 오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돼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며 걸어가고 있다. 김영원 기자 [email protected]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 14일 내란 사건 첫 형사 재판에서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까지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데 몰두했다. 93분간의 진술에서 그는 사실관계를 교묘하게 비틀거나 노골적인 거짓말로 자신의 무고함을 강조하는 모습이었다.
비상계엄 선포 사법심사 대상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계엄 실시에 대한 판단은 대통령이 전권을 갖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어느 장관이나 국민보다 수백배 수천배 외교안보 국정에 관한 정보를 갖고 있어서 그에 대한 판단은 사법심사 대상이 되지 않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계엄 자체를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전시·사변 아닐 때 계엄 선포하면 전부 내란이란 말이냐”고 되물었다. 12·3 비상계엄이 무위로 끝난 뒤 내란죄 처벌 여론이 커지자 대국민담화 등을 통해 방어했던 논리와 변함이 없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내란죄 수사와 기소,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도 모두 초법적인 일이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의 이러한 주장을 일축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4일 탄핵 결정문에서 “국가긴급권은 평상시의 헌법질서에 따른 권력행사방법만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중대한 위기상황에 대비하여 헌법이 중대한 예외로서 인정한 비상수단이므로, 헌법이 정한 국가긴급권의 발동요건․사후통제 및 국가긴급권에 내재하는 본질적 한계는 엄격히 준수되어야 한다”며 “계엄의 선포에 관해서는 헌법 제77조 및 계엄법에서 그 요건과 절차, 사후통제 등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고, 탄핵심판절차는 고위공직자가 권한을 남용하여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하는 경우 그 권한을 박탈함으로써 헌법질서를 지키는 헌법재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비록 이 사건 계엄 선포가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행위라 하더라도 탄핵심판절차에서 그 헌법 및 법률 위반 여부를 심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국가기관이라 영장 없이 들어갈 수 있다?
윤 전 대통령은 군을 동원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압수수색에 대해 “사법 행정 자격으로 계엄당국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민간시설은 영장 받아 가택 수사 해야되지만 국가 기관에 대해선 영장 없이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계엄 상황에서 국가기관인 중앙선관위 압수수색은 영장 없이 가능하다는 주장이었다. 헌법에선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영장제도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계엄법에서도 ‘계엄사령관이 군사상 필요할 때 압수수색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고 그 내용을 미리 공고해야 한다’고 돼있다. 윤 전 대통령의 주장을 헌법과 계엄법이 규정하는 영장주의의 예외를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을 심리한 헌재는 이런 경우에 모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계엄 선포 당시의 상황이 특별한 조치가 군사상 필요한 경우였다고 볼 수 없고, 계엄사령관 박안수가 관련된 조치내용을 미리 공고한 바도 없다. 따라서 헌법 제77조 제3항에 규정된 (영장주의) 예외의 요건은 충족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피청구인(윤 전 대통령)이 선관위에 대하여 영장 없는 압수수색을 하도록 한 행위는 영장주의에 위반된다”는 게 헌재의 결론이었다.
헌재에서 주요 증언 탄핵당했다?
윤 전 대통령은 검찰의 공소장이 사건 관련자들의 진술을 ‘모자이크식’으로 갖다붙인 것에 불과하다며 “헌재의 탄핵 심판 과정에서도 (공소장에) 인용된 많은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수사기관 조사를 받으면서 진술한 게 많이 탄핵당하고 실체가 밝혀졌다”며 “그건 전혀 반영 안 되고 초기에 겁 먹은 사람들이 수사 기관의 유도에 따라 진술한 부분들이 검증 없이 반영이 많이 됐다”고 주장했다. 또 “홍장원(전 국정원 1차장)에게 누구 체포하라 또는 방첩사령관 통해서 누구 체포하라 했다는 것은 전부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전부 헌재에서 드러난 얘기”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홍 전 차장 진술을 둘러싼 논란을 교묘하게 비튼 것이다. 홍 전 차장은 지난 2월4일 윤 전 대통령 탄핵 재판 5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비상계엄 당일 작성한 메모를 근거로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으로부터 주요 정치인 검거 요청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국정원에는 수사권이 없어 체포 권한이 없다’는 반론이 나왔고 당시 정형식 재판관이 이런 점을 지적하자 홍 전 차장은 “생각나는 대로 그냥 (메모에) 갈겨 쓴 부분이기 때문에 약간 다소 합리적이지 않게 적어놨던 부분을 인정한다”고 했다. ‘검거·체포 요청’은 홍 전 차장의 해석이 포함된 표현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이 점을 파고들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헌재는 그러나 홍 전 차장의 증언을 정리해 애초 탄핵소추 사유로 명시된 정치인·법조인 ‘체포 시도’를 ‘위치 확인 시도’로 수정했다. 그리고 윤 전 대통령이 “정당의 대표 등에 대한 위치 확인 시도에 관여함으로써 정당활동의 자유를 침해”했고 “현직 법관들로 하여금 언제든지 행정부에 의한 체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압력을 받게 하므로,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설령 검거·체포 지시가 아닌 ‘위치 확인 시도’만 확인됐어도 파면 사유가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