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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정신과 의사의 코멘터리]
<4>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양관식

편집자주

정신건강의학과 김지용, 오동훈, 허규형 전문의가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심리를 분석하며 우리의 마음도 진단합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딸 금명의 결혼식에서 울고 있는 양관식(박해준).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를 잘 안 보는 편이다. 타인의 이야기는 진료실에서 듣는 것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일까. 선뜻 눈길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크게 유행한 드라마는 진료실에서 꼭 듣게 되기 마련이다. 단순히 재밌었다는 후기만 듣는 건 아니다. 상담에서 드라마를 통해 건드려진 마음에 대해 들을 때가 많다. 여럿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 드라마가 인기를 얻은 이유가 느껴진다. 유행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사회와 영향을 주고받는다. 애초에 많은 이를 끌어당긴 것 자체가 그들 마음속 무언가를 건드렸기 때문이며, 그 무언가는 역으로 사회에 메시지를 전달하며 영향을 미친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대해 연달아 들었다. 극중 애순(아이유, 문소리 분)과 관식(박보검, 박해준 분) 커플의 열정적 연애 시절부터 자녀를 위해 헌신하는 노년까지, 말 그대로 부모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가 왜 많은 이의 마음을 울린 걸까. 내담자들이 한결같이 ‘아버지 관식의 헌신적 모습’에 대해 말했다는 점에서 그 단서를 찾았다.

관식의 무조건적 사랑에 왜 열광할까

늘 오애순(아이유)의 곁을 지키는 젊은 날의 관식(박보검). 넷플릭스 제공


주인공 관식은 앞으로 오래도록 ‘무조건적인 사랑’의 대명사로 불리게 될 듯하다. 청춘의 그는 애순과의 교제를 반대하는 부모에 맞서 바다 위 배에서 뛰어내린다. 결혼 후에는 "애순이는 나랑 살러 왔지, 엄마나 할머니랑 살러 온 거 아니다"라며 적극적으로 아내를 지킨다. 이 무조건적인 사랑은 자녀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응원하고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이렇게 일생에 걸친 관식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이런 연인을, 배우자를, 부모를 꿈꾸는 이들의 마음을 모두 다 건드렸다. 무조건적인 사랑의 종합선물세트. 이 드라마가 다양한 세대로부터 큰 인기를 끈 이유일 테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무조건적인 사랑을 꿈꿀까. 이는 생애 가장 달콤한 기억이며, 이제는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아련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생애 초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경험은 아이의 건강한 발달을 위해 필수적이다. 그 따뜻한 안정감을 통해 아이는 세상을 신뢰하고, 대인관계의 기본 틀을 형성한다. 또한 ‘나는 존재만으로도 소중하다’는 감각을 내면화한다. 이는 자존감의 핵심이 되어 삶에서 만나는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는 힘이 된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무조건적인 사랑은 영원할 수 없다. 성장하면서 우리는 사랑이 조건적일 수 있다는 현실을 배운다. 성취를 요구받고 남들과 비교당한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차가운 현실에서 그래도 온전한 내 편이 있기를 바라는 기대는 주로 가족에게 향한다. 혹독한 세상에서 상처받고 돌아온 마음이 쉬며 회복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기지가 바로 가정이다.

2021년 미국의 퓨리서치센터에서 17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무려 14개국에서 '가족'이 1순위로 꼽혔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가정의 가치가 점차 퇴색되고 있다. 가정을 첫 번째로 뽑은 사람의 비율이 해당 국가들 중 두 번째로 낮았다. 한국은 '물질적 풍요'라고 답한 이들이 가장 많았다. 국내에서 시행한 다른 연구들에서도 이런 경향성이 공통적으로 관찰된다.

하지만 '폭싹 속았수다'의 흥행은 물질적 풍요를 삶의 의미로 꼽으면서도 여전히 무의식에서는 심리적 안전기지로서의 가정의 중요성이 크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결핍은 소망을 낳으니까. 극중 애순의 할머니는 삶의 끝자락에서 인생을 소풍이었다고 돌이킨다. 내 자식들 다 만나고 가는, 기가 막힌 소풍이었다고. 삶의 의미를 가정에서 찾을 때 우리는 삶을 고행이 아닌 소풍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관식의 무조건적 사랑 가능할까

딸 금명의 대학 입학식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관식(박해준). 넷플릭스 제공


하지만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기 마련이다. 이 드라마가 끼칠 영향 중에 걱정되는 면도 있다. 지나친 환상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진료실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꿈꾸는 이야기를 유독 많이 듣는다. 응당 사랑받아야 할 어린 시절에 큰 결핍과 상처가 있었던 경우 특히 더 그렇다.

앞서 말했듯 결핍이 소망을 낳기 때문이다. 이 소망은 주로 연애에 무의식적으로 투사되는데, 처음 사랑에 빠질 때는 드디어 꿈꾸던 운명적 상대방을 만났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 오래 지나지 않아 그 환상은 깨지고 폭삭 속았다고 느끼게 된다. 안타깝지만 당연한 결과이다. 상대방은 어린아이를 돌보는 부모가 아니기에, 연애의 목적이 과거 결핍을 채우는 것에만 있다면 반드시 실패로 이어진다.

그래서 상담을 할 때 완곡하게 말하곤 한다. 당신의 소망은 드라마에서만 가능한 환상이고, 그 환상을 현실에서 이루려는 시도는 꼭 무너진다고. 성인이 된 이후 무조건적인 사랑의 경험은 내가 부모가 되어 아이로부터 받는 것 외에는 없다고.

그래서 많은 이가 아이를 키우며 자신이 치유받는 느낌을 받는다. 그만큼 육아란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행복을 줄 수 있지만, 이 관계에서 지나치게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다. 가장 흔한 이유는 ‘좋은 부모의 기준’이 너무 높아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이 아쉬웠던 만큼 완벽한 육아를 위해 지나치게 노력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자녀를 자신과 지나치게 동일시하며 스스로의 결핍과 불안을 자녀에게 투사한다. 이대로 놔두면 자신처럼 삶이 힘들어질 것 같아 아이를 가만히 놔두지 못한다.

드라마 속 관식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부모로부터 받지 못했던 무조건적인 응원과 수용을 자녀에게는 주고 싶었을 테다. 그런데 현실의 우리는 드라마 속 완벽한 인물이 아니기에 이 조바심을 견디지 못한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 주고 뜻대로 통제되지 않는 자녀에게 화를 낸다. 너를 위하는 것이라 윽박지르지만 실은 내 불안이 해결되지 않아 괴롭다. 아이는 상처받고 부모는 자책한다. 이상적인 관식과 비교되며 자녀들이 더 상처받고 부모들이 더 자책할까 염려되기도 한다.

'완벽한 부모' 아닌 '충분히 좋은 부모'면 된다

평생 가족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관식(박해준). 넷플릭스 제공


그래서 꼭 짚어봐야 할 것이 있다. 좋은 부모란 무엇일까? 모든 순간에 무조건적인 사랑만을 주는 완벽한 부모가 좋은 부모일까? 발달심리학의 거장인 도널드 위니컷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엄마가 아닌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라 말했다. 아이에게 충족만큼 중요한 것이 건강한 좌절의 경험이다. 세상이 항상 내 뜻대로만 되지는 않는다는 것, 심지어 부모여도 그렇다는 것, 한 대상에게 좋은 면과 나쁜 면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충분히 좋은 사람이기에 괜찮다는 것을 체득해야 한다. 이 경험과 깨달음 없이 자라난 사람은 세상을 완벽과 나쁨으로만 나누어 바라보게 된다. 너무 높은 기준 때문에 모든 대인 관계에 실망하고 상처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

부모의 지나친 희생은 아이에게 심리적 빚을 지운다. 부모의 큰 희생에 보답할 유일한 방법은 내 인생도 희생하는 것뿐이라 느끼며 부모가 바라는 삶만 살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찾지 못해 우울하고 공허한 마음으로 산다. 저명한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은 부모는 자녀의 분리를 바라고 후원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분리를 견뎌낼 수 있는지가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는 부모인지 가려지는 지점이라 말했다. 나도 자녀들을 둔 입장에서 계속해서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말이다.

자녀를 사랑하는 만큼 걱정되기도 하고 모든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고 싶기도 하지만, 그건 내 불안을 투사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관식이 자녀 문제로 에리히 프롬에게 상담을 받았다면 혼나지 않았을까 싶다. 찹쌀떡을 파는 아들을 돕고자 아들 몰래 주민들에게 돈을 풀어 대리 구매하는 그 행동은 현실과 부딪히며 성장할 아들의 기회를 박탈한 것이기도 하다. 어떤 애절한 마음이었을지 공감하지만 옳은 행동이라 동의할 수는 없다.

관식(박해준)과 아들 은명(강유석). 넷플릭스 제공


이 드라마를 통해 환상을 키우기보단, 내 가족의 삶을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부모나 자녀의 입장에서 가정의 지난 과거를 돌아보며 완벽하진 않아도 충분히 좋은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길 바란다. 안타깝게 도저히 그런 부분이 없다 해도 너무 좌절하지 않길 바란다. 과거가 어떻든 우리 모두는 충분히 좋은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바로 지금부터, 충분히 좋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김지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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