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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옵티칼 고공농성 464일째 ]
일본계 회사, 각종 혜택 받아 놓고
구미공장 화재 후 고용승계 거부
물량 넘겨 받은 자회사는 신규채용
여름이면 얼린 생수통 껴안고 버텨
외투기업 '알맹이 빼먹기' 대책 필요
10일 경북 구미시 한국옵티컬하이테크 고공농성장에서 박정혜, 소현숙 노동자가 손피켓을 들고 있다. 비닐로 세운 농성 텐트는 바람이 불면 여러 차례 날아가 다시 지어야 했다. 10m 높이의 건물 옥상이며, 드론 촬영한 장면이다. 구미=홍인기 기자


"여름이 오면 얼린 생수통 껴안고 무더위를 버텨야 하는데 막막하죠. 그래도요, 제가 이 회사를 위해 15년을 일했는데 쓸모없는 헌신짝처럼 버려질 수는 없습니다."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 박정혜씨

길가에 벚꽃 향기가 가득했던 지난 10일 오후. 경북 구미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구미공장에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박정혜(40), 소현숙(43)씨를 만났다.

엄밀히 말해서 만났다기보단, 이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건물 밑에서 기자는 이들을 올려다보며 전화로 인터뷰를 해야 했다.

두 사람이 약 10m 높이 공장 옥상에서 농성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1월 8일.
벌써 464일(15일 기준)
이 지났다. 구미공장에는 두 사람을 지원하는 해고노동자 5명까지 총 7명이 고용승계 투쟁을 진행 중이다. 정혜씨는 "처음 옥상에 올라올 때는 이토록 농성이 길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기존 한국 여성노동자 최장기 고공농성 기록(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씨의 309일)도 갈아치웠다. 두 사람에게는 상처와 고통뿐인 기록이다.

한국옵티칼 정리해고 사건이 이렇게 오랜 기간 해결되지 않는 덴, 한국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국내 여론의 눈치를 별로 보지 않은 외국투자기업의 '알맹이 빼먹기' 전략이 도사리고 있다.
'노조' 활동을 한 7명 노동자의 고용승계는 합리적 이유 없이 거부하면서, 구미공장 물량을 넘겨받은 자회사는 새롭게 150명을 신규채용
했다.

두 번의 겨울이 지나도록 땅을 밟지 못한 여성 노동자들이 지난 10일 지상의 한국일보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지상 10m 위에 서있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아득해 밑에서 올려준 전화기를 이용해 대화를 나눴다. 구미=홍인기 기자


올해 여름도 얼린 생수통 안고 버텨야 하나



두 사람에게 한국옵티칼은 단순한 직장의 의미가 아니었다.
정혜씨는 2011년부터, 현숙씨는 2006년부터 공장에서 일한 베테랑이다.


업무시간 외에도 시간을 쪼개 회사일을 했고 회사와 함께 성장하는 '내 회사'로 여겼다. 현숙씨는 "통근버스를 타고 아침 7시 15분쯤 회사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 한 번 다녀오면 업무가 시작됐다"며 "퇴근 시간은 오후 5시지만 일이 정말 많아서 대부분 저녁 8시를 넘어서 퇴근했다"고 전했다. 그런 회사로부터 부당한 해고를 당하자 배신감이 무척 컸다고 했다.

옥상 모서리 한편에 지어 놓은 비닐 천막 아래에서 보낸 1년 3개월. 고용승계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땅을 밟지 않겠다며 옥상과 연결된 철제 사다리를 스스로 걷어 올렸다. 변변한 화장실이 없어 배변 패드 위에서 볼 일을 보고, 비바람이 불면 천막이 날아가 다시 짓기도 여러 차례. 식사는 하루에 두 번 밑에서 밧줄에 매달아 올려주는 음식으로 해결한다. 처음에는 하루 세 끼를 먹었지만 고공투쟁으로 활동량이 떨어지자 소화기능에 문제가 생겨 하루 두 끼로 줄였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추위와 더위다. 지독히도 더웠던 지난해 여름 두 사람은 얼린 생수통 몇 개를 품 안에 껴안고 끙끙 앓으며 폭염을 견뎠다.

정혜씨는 "지난해 여름을 보내면서 도저히 여름을 두 번 지낼 자신이 없을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겨울에는 난방 장치가 없다 보니 이불을 둘둘 싸매고 추위에 떨어야 했다. 온수가 없어 샤워는 꿈도 꾸지 못했다.

고공농성이 길어지면서 가족들의 걱정도 이만저만 아니다. 정혜씨는 "부모님이 정말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이제 그만 내려오라'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며
"통화를 하면 슬픔이 너무 깊어 자주 전화를 드리진 못한다"
고 전했다. 현숙씨도 "시간이 흐를수록 몸이 늘어지고 우울감도 생기는 것 같다"며 "주변에서는 '이제 할 만큼 했으니 그만 내려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말끝을 흐렸다.

"생산물량은 이전하고 노동자는 정리해고"

10일 경북 구미시 한국옵티컬하이테크 고공농성장에서 박정혜, 소현숙 노동자가 건물 아래 한국일보 기자와 전화 인터뷰를 하고 있다. 구미=홍인기 기자


두 여성노동자는 왜 건물 옥상에 오르게 됐을까. 사건의 발단은
한국옵티칼 구미공장 생산동에 화재가 발생한 2022년 10월 4일 시작
됐다. '외국인 투자기업'인
한국옵티칼은 일본 니토덴토의 자회사
다. 이 회사에 속한 구미공장은 액정표시장치(LCD)에 들어가는 편광 필름을 제조했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필름은 주로 LG디스플레이에 공급됐고, LG디스플레이에서 생산한 LCD 완제품은 글로벌 기업 애플에 납품됐다.

회사는 화재로 구미공장이 불타자 생산물량을 경기 평택시에 위치한 평택공장으로 옮겼다. 평택공장은 니토덴토의 또 다른 자회사 한국니토옵티칼 소유다. 구미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은 평택까지 올라가 생산물량 이전 작업을 도왔다.

정혜씨는 "노동자들은 생산물량 이전 작업이 끝나면 구미공장 노동자들도 모두 평택공장으로 올라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고 말했다.
평택공장에서 생산물량을 이어받은 만큼 일터가 불탄 노동자들의 고용도 당연히 승계될 것으로 기대
했다.

하지만 공장에 화재가 발생한 지 한 달째 되던 2022년 11월 4일, 사측은 구미공장 폐쇄와 희망퇴직을 통보했다. 이를 거부한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대상이 됐다.

본사가 구미공장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거부한 직접적 이유는 두 공장이 서로 다른 자회사 소속이라는 것. 하지만 정혜씨는 "자회사 공장으로 생산물량은 이전하면서 노동자 고용을 승계하지 않는다는 것은 부당하다"며 "회사가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혜·현숙씨의 고공농성을 돕고 있는 최현환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지회장은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거부한 것은 노조 활동으로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
이라고 주장했다.

최현환 금속노조 한국옵티컬하이테크 지회장이 부당 해고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도 정리해고된 상태이다. 구미=홍인기 기자


최 지회장은 "2016년 11월 25일 노조가 생긴 뒤로 회사 차원에서 논의됐던 구미공장과 평택공장 인수합병이 백지화됐고, 2019년과 2020년엔 두 차례 구조조정을 진행해 700명이던 직원을 80명으로 줄였다"고 말했다.

또 "구미공장 화재 이후
노동자 고용승계는 거부하면서 평택공장 노동자는 150명 이상 새롭게 채용
했다"며 "숙련된 노동자 7명은 외면하면서 새로운 인력을 채용한 것은 노조 활동에 대한 보복으로 보인다"라고 주장했다.

"외투기업, 알맹이는 빼먹고 의무는 등한시"

10일 경북 구미시 한국옵티컬하이테크 고공농성장에서 박정혜, 소현숙 노동자가 고용 승계를 요구하는 문구를 들어 보이고 있다. 구미=홍인기 기자


한국옵티칼 해고 노동자들은 사건 이면에 더 근본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옵티칼과 같은 외투기업의 '알맹이 빼먹기'다. 외국인투자촉진법은
외투기업
이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법인세·소득세·취득세·등록세·재산세·종합토지세 등의
각종 조세를 감면해준다.
국가산업단지 우선 배정 기회
와 설비·인력 고용·연구개발(R&D) 등을 위한
현금 지원까지
받을 수 있다.

노조에 따르면 한국옵티칼도 2003년 처음 설립될 당시
구미 국가산업단지 부지를 50년간 무상임대받았고 각종 세제 혜택도 받았다.
최 지회장은 "한국옵티칼은 자본금 220억 원으로 누적 매출액 7조7,000억 원을 넘겼다.
일본 본사로 가져간 수익이 6조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며 "국가와 지자체로부터 각종 혜택을 받아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도 노동자 고용 의무는 다하지 않는 것은 한국옵티칼과 외투기업들의 고질적 병폐"라고 비판했다.

실제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받은 '외투기업 지원금 환수조치 현황'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정부로부터 현금 지원을 받은 외투기업 중 9곳이 '고용계획 미달성'
을 이유로 현금지원금을 토해냈다. 환수된 현금지원금은 총 57억 원 규모다. 외투기업이 각종 혜택은 챙기고 고용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은 전형적인 '먹튀' 행각이라는 것이 노동계의 지적이다.

경북 구미시 한국옵티컬하이테크 고공농성장에 '이겨서 땅을 딛고 싶다'는 현수막이 보인다. 구미=홍인기 기자


한국옵티칼 해고 노동자들은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을 촉구
했다. 외투기업의 '먹튀'를 막을 수 있는 근본적 제도 개선과 함께 구미공장 해고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위한 중재에 나서달라는 입장이다.

두 노동자는 "회사를 위해 노력한 노동자가 이토록 가차 없이 버려져선 안 된다", "최선을 다해 일했던 직장에서 다시 일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최 지회장은 "노동자들이 고공농성 500일이 되기 전에는 땅에 내려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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