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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무성하게 자라나는 여름의 복판이었다.
37명의 아이들이 스러지기엔, 잔인한 계절이었다.

1995년 8월 21일, 새벽 2시 6분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경기여자기술학원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그곳은 말이 기술학원이지 감옥보다 못한 곳이었다.
80년대 삼청교육대나 형제복지원처럼,
머릿수를 채워 국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가난한 아이들을 거짓으로 회유해
감금시키는 시설이었다.

10대 중반의 여학생들은 밥을 굶는 것은 물론,
잦은 구타와 엄격한 통제로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기술도 알려주지 않았고, 외부와의 연락이나
면회도 제한해 사실상 감금 상태나 다름없었다.

“불이 나면 문을 열어 줄거야, 그때 빠져나가자.”

너무 힘들었던 아이들은 마지막 희망을 품고
기숙사 커튼에 불을 질렀고, 탈출을 계획했다.
불은 삽시간에 건물을 집어삼켰다.
아이들은 “살려 달라”“밖으로 내보내달라”며 문을 두드렸다.

문제는 기술학원의 그 많던 직원 누구도,
아이들을 구하러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사감 선생도 탈출했는데,
아이들은 나오지 못했다.

37명의 목숨을 앗아간뒤 불길에 검게 그을려 흉물스러운 모습이 된 경기여자기술학원 건물. 중앙포토
당시 이호 교수(전북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는 레지던트 2년 차였다.
법의학자를 꿈꾸며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파견 근무 중이었다.
그는 이 계절의 고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를 수습한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은 때였다.
37명의 아까운 목숨을 마주한 어린 법의학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죽음은 숫자로 따질 수 없는 것이지만,
수백명이 사망한 현장에 서있노라면
거대한 슬픔과 분노가
살아있는 인간을 압도합니다.”

이 교수는 지난 30여년간 5000구 이상을 부검했다.
경기여자기술학원 화재 사건을 비롯해
삼풍백화점, 대구 지하철 참사, 세월호 참사 등
대형 참사 현장에도 늘 그가 있었다.

이호 교수(전북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는 30년 넘게 억울한 망자들의 마지막 대변인이 되어주었다. 이 교수처럼 부검을 수행하는 법의학자는 전국에 60여 명에 불과하다. 장진영 기자


“이 사람이 숨지기 하루 전으로 돌아간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늘 생각합니다.”

이 교수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부검한다. 시신에서 스치는 냄새 속에 사인의 단서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떠나는 길에 억울함이 남지 않을까, 고인이 미처 전하지 못한 이야기는 없을까, 주말도 없이 묵묵히 부검실로 향한다.

(계속)
그의 뇌리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사건 현장은 무엇일까? 파묘(破墓) 후 시신을 꺼내 살인 범죄의 증거를 찾고, 비 내리는 날 과일 상자 위에서도 부검하며 깨달은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일까? 이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엔 다음 내용이 담겼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더중앙플러스에서 확인하세요.
-경기여자기술학원, 사과 궤짝 위에서 눈물의 부검
-훼손된 시신보다 더 참혹했던 ‘가장 온전한 주검’
-1년 새 가족 부검 두 번이나…다시 만난 유족의 사연
-미라처럼 변하고 뼈만 남아도 부검은 이뤄진다
-수 천 번 부검이 남긴 교훈…법의학자가 꿈꾸는 죽음은
-“한국 법의학은 멸종 위기” 무엇이 문제인가
☞10대 소녀 37명 불타죽었다…사과궤짝 위 부검, 악몽의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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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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