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만드는 아이폰, 일시 면세
스마트폰 포함 반도체 관세 한 달 뒤 발표
트럼프 한 마디에 등락 오가는 증시
오락가락 정책에 기업 전략 '올스톱'
스마트폰 포함 반도체 관세 한 달 뒤 발표
트럼프 한 마디에 등락 오가는 증시
오락가락 정책에 기업 전략 '올스톱'
[커버스토리]
3일(현지 시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LIV 골프 대회를 찾은 트럼프 대통령. /연합뉴스
“지금은 정말 매수하기 좋은 시기!!!!(THIS IS A GREAT TIME TO BUY!!!) DJT”
도널드 트럼프가 관세를 무기로 세계경제를 뒤흔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9일(현지시간) 아침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주식 매수를 권장하는 글을 올렸다. DJT는 자신의 이니셜이자 상장사인 트럼프 미디어앤테크놀로지의 종목명이다.
그로부터 약 3시간 뒤 트럼프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트럼프는 중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 관세 부과를 90일 유예한다는 깜짝 발표를 했다. 그러자 증시는 바로 치솟았다. 주가는 고공 행진하며 S&P500 지수가 9.52%, 나스닥 지수가 12.16% 폭등 마감했다.
이는 미무역대표부(USTR)도 모르는 내용이었다. 백악관에서 관세 유예 발표가 나온 것은 현지 시간으로 오후 1시 18분이었다. 그 시각 미국 관세·무역 정책을 담당하는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유예 발표 당시 한창 청문회 중이었다.
그는 3시간 동안 트럼프의 관세정책 필요성과 정당성을 어필했다. 그러나 정작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유예할 거란 사실은 대중들과 같은 시각에 알았다.
청문회 도중 관세 유예 발표가 나오자 야당 의원들은 “현재 관세가 일시 유예된 걸 알고 있었냐”고 집요하게 캐물었다. 그러자 그리어 대표는 “몇 분 전에 결정된 걸로 알지만 대통령과는 아직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오락가락 관세정책이 최고위급 참모진도 모르는 새 즉흥적으로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자 민주당 의원들은 혼란의 책임을 물으며 시장 조작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틀 만에 ‘가짜뉴스’에서 ‘마음에서 우러나온 글’로
트럼프는 9일 뉴욕 증시가 개장한 오전 9시30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에 “지금은 매수하기에 아주 좋은 때!! DJT”라는 글을 올렸다. 시장 조작 의혹이 제기된 이유다. 사진=트럼프 트루스소셜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유예를 발표한 트루스소셜 게시물을 두고 “마음에서 우러나온 글이었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이는 트럼프 ‘거래의 기술’이라고 자화자찬했다. 강력한 카드를 꺼내 상대방에게 두려움을 일으키고 협상에서 우위를 점해왔던 트럼프식 전략이 이번에도 작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세 유예 발표 불과 이틀 전 백악관은 “관세 90일 일시 중단”이라는 CNBC의 보도가 가짜뉴스라고 못 박았다. 당시 뉴욕증시에서는 3500조원의 돈이 순식간에 불어났다 사라지면서 ‘광란의 10분’이란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관세 유예를 발표하며 “지난 며칠간 생각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중국에 대한 관세는 125%로 높이고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향후 90일간 10%의 ‘기본 관세’만을 적용하겠다고 했다.
한국에 25%를 적용하는 등 57개 무역파트너(56개국+27개 회원국을 가진 유럽연합)에 적용키로 한 ‘상호관세’가 발효된 지 13시간 만에 손바닥 뒤집듯 유예한 것이다.
단, 5일 이전에 결정된 철강·알루미늄·자동차 등에 대한 품목별 관세(25%)는 그대로 유지된다.
트럼프의 관세 유예 발표가 나온 이후 아시아 주요 증시가 일제히 급등했다./연합뉴스
트럼프의 변덕은 중국의 저항과 증시, 채권 등 시장 상황을 고려한 전술적 후퇴처럼 보인다.
중국도 맞대응을 거듭해 11일 미국산 제품에 125%의 보복 관세를 물렸다.
결국 미국 증시가 요동쳤고 월가 거물들은 일제히 경기침체 우려를 드러냈다. 공화당 의원들조차 돌아섰다. 대표적인 강경 보수 성향의 공화당 상원의원인 테드 크루즈(텍사스)는 최근 자신의 팟캐스트에서 “만약 경기침체, 특히 심각한 침체로 이어진다면 2026년 선거는 정치적으로 대참사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척 그래슬리(아이오와) 상원의원은 트럼프의 관세 발표 직후 민주당 의원과 함께 대통령에게 집중된 관세 부과 권한을 의회로 돌리는 법안을 제출했다.
안팎에서 긴장감이 흐르고 시장이 흔들리자 트럼프는 관세전쟁 타깃을 중국으로 좁히고 다른 나라에는 이에 상응하는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증시 하락에는 골프…국채금리 오르자 마음 돌려
증시 하락에도 굳건하던 트럼프가 마음을 바꾼 데는 국채 시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장기국채 금리가 급등(가격은 하락)했기 때문이다. 상호관세가 본격 발효된 9일 오후 1시 10년물 국채금리는 4.5%까지 뛰어올랐다. 트럼프가 관세율을 공개한 4월 3일 새벽보다 0.35%포인트 뛰었다. 국채 30년물 금리도 5% 선을 뚫었다.
정책 불안으로 미국 국채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흔들렸다. 월가에서는 미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일본과 2위 보유국인 중국이 미 국채를 팔아치우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 국채 금리 폭등 시점이 미국의 관세 부과 시기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도이체방크의 헨리 앨런 부사장은 “미국 국채 시장이 전통적인 안전자산으로서의 위상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증거가 쌓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국채 금리를 낮추는 것이 목표라고 말해왔다. 국채 금리가 오르면 막대한 채무를 가지고 있는 미국의 이자 부담이 늘어 재정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경기가 둔화하면 적자 확대가 불가피한데 이때 해외 투자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자금조달 비용은 더 높아진다. 또 미국 가계부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기지 금리 등이 국채 10년물 금리에 연동돼 있어 트럼프는 금리 움직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9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채권시장은 까다로워서 그걸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젯밤에 사람들이 약간 불안해하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2기 행정부 출범 후 증시가 아닌 채권시장을 성과지표로 삼아왔다. 뉴욕증시에서 이틀 만에 9600조원이 증발했을 때에도 골프를 치며 “때때로 무언가를 고치기 위해서는 약이 필요하다”며 강경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채권시장에 경고등이 켜지자 바로 “유연한 태도”로 전략을 바꿨다. 동맹 파괴, 무너진 신뢰
미국의 일방적 관세 부과는 일시 중단됐지만 세계경제에 두 가지 위협은 오히려 커졌다. 불확실성과 불신이다.
불확실성은 기업과 투자자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트럼프의 무역정책에 맞춰 방향을 전환하다 보면 기업들은 피해를 볼 수 있다.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생산기지를 옮기거나 추가 투자를 결정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국내 대기업 관계자는 “일단 25% 관세가 당장 부과되는 것보다는 90일간 협상의 기간이 주어졌다는 데 안도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여전히 언제든 약속한 정책이 바뀌거나 관세 세부안에 따라 산업 경쟁력 자체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 불확실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건 여전하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 기업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행정부는 스마트폰, 노트북 컴퓨터 등은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서 '일시적으로' 제외했다. 애플의 아이폰 등 전자기기 가격 폭등 우려 속에 나온 조치다.
미국에서 팔리는 아이폰은 모두 해외에서 최종 조립된 수입품이며 중국산 의존도가 크다. 아이폰에 관세가 부과될 경우 가격이 두 배 이상 올라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애플 주가는 이 같은 우려에 트럼프가 상호 관세를 발표한 지난 2일 이후 한때 23% 폭락하기도 했다.
경제학 교과서에서 관세의 ‘전가 효과’가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된 장면이었다. 세금은 기업이 내는 것 같지만 결국 그 부담은 소비자에게 넘어간다는 원리다.
트럼프는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매겨 무역 적자를 축소하고 강달러로 위축됐던 자국 내 제조업을 부활시킨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고관세 전략이 물가 상승과 미국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장의 불안이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해온 동맹에도 금이 갔다. 한국, 일본, 유럽, 캐나다 등 미국의 동맹국은 ‘공동의 이익과 가치’라는 목적 속에 체제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미국이 시작한 관세전쟁은 동맹에 대한 신뢰를 뿌리째 흔들었다.
여기에 트럼프의 적대적인 언사는 동맹국에 충격을 더했다. 트럼프는 대만 TSMC를 “미국 반도체 산업을 앗아간 도둑”으로, 캐나다는 “미국의 51번째 주”로, EU는 “미국을 이용하려고 만들어진 조직”으로 규정했다. 나토 동맹국인 덴마크의 영토인 그린란드에도 야욕을 드러냈다.
동맹국의 경제뿐만 아니라 방위 협력, 주권까지 위협한 것이다. 트럼프는 6세대 전투기인 F-47을 소개하면서 동맹국에 판매될 버전은 “의도적으로 성능을 낮출 것”이라고 밝혔다. 이유는 “그들이 언젠가는 우리의 동맹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애플·테슬라·월마트 인질로 잡힌 미국, 결국 협상하나
중국은 미국에서 수입하는 제품에 1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연합뉴스./연합뉴스
한국 역시 안보와 경제 모두를 인질로 잡혔다. 미국은 한국과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무역 협상과 ‘패키지’로 논의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국은 오는 6월 3일 대선을 거쳐 새 정부가 출범한다는 점에서 일단 새 대통령하에서 전열을 정비한 채 대미 관세 협상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세계는 숨죽이고 제2차 미·중 무역전쟁을 바라보고 있다. 중국을 집중포격하기로 한 트럼프 대통령과 작심하고 대응에 나선 듯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모두 쉽게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세계 1, 2위국의 공급망 분리는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도 치명적이다.
시 주석은 4월 9일 연설에서 “주변국과 운명 공동체를 구축하겠다”며 관세를 때려 맞은 다른 나라와 손을 잡는 전략을 세웠다. 트럼프는 중국에 우군이 붙는 것을 용납할 리 없다.
그러나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물밑에서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기 위한 모색이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
애플은 제품의 95%를, 테슬라는 40%를 중국에서 만들고 있다. 월마트는 판매 제품의 60%가 중국산이다.
전병서 중국경제연구소 소장은 “중국은 애플, 테슬라, 월마트를 인질로 잡고 있는데, 이들 3개 회사의 중국 생산이나 수입을 막으면 단순하게 계산해도 미국 GDP 11%에 해당하는 3조2000억 달러가 날아간다”며 “결국 명분과 실리를 적절하게 맞추는 균형맞추는 작업이 끝나면 막판 대타협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 트럼프는 지난 10일 “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매우 존중한다. 그는 오랜 기간 진정한 의미에서 내 친구였다”며 “나는 양국 모두에게 매우 좋은 결과로 끝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