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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I 이슈 | 헌재 대통령 탄핵 해석의 기원

2004년 노무현 탄핵 사건에서
‘헌법 수호·국민 신임’ 기준 제시
닉슨 대통령 탄핵 소추장과 비슷
미국 헌법 ‘중대한 범죄’ 탄핵 사유
지난 4월 4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재판관 8명 전원 일치로 윤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정용일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헌법 제65조에는 대통령 탄핵 사유로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라고만 규정돼 있을 뿐, 그 구체적 요건이 없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2017년 박근혜 대통령, 2025년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사건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단순히 위반했다는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고, 대통령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이 있어야 한다고 줄곧 밝혀왔다.

헌재가 헌법 조항을 축소 적용하며 탄핵의 장벽을 높인 이유는, 대통령의 파면 효과가 다른 공직자에 비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파면하면 직무수행 단절로 국가적 손실과 국정 공백이 생기는 것은 물론, 국민 간의 분열과 반목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이 발생한다. 이러한 결과를 감수하고라도 파면 결정하려면 대통령의 ‘중대한’ 법 위반이 존재해야 한다는 게 헌재의 일관된 논리다.

■ 노무현 탄핵 때 ‘중대성’ 제시

헌재 선임헌법연구관을 지낸 김진욱 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쓴 ‘대통령 탄핵 보고서’(2025)를 보면, 독일과 미국도 대통령의 탄핵 사유로 ‘중대한’ 법 위반을 언급한다. 독일의 기본법(헌법)은 연방 대통령이 기본법이나 연방 법률을 고의로 침해했을 때 탄핵한다고 규정한다. 독일 학계에서는 대통령의 법률 침해 행위가 사소한 위반에 그쳐서는 안 되고 중요한 위반이어야 한다고 해석한다.

미국은 대통령 탄핵제도를 규정한 연방헌법(제2조 제4항)에 ‘중대한 범죄’라고 아예 못 박았다. ‘대통령, 부통령 등은 반역죄, 뇌물죄, 그 밖의 중대한 범죄와 비행으로 탄핵소추를 받고,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상원이 유·무죄 결정) 그 직에서 면직된다’고 밝힌다. 연방헌법이 말하는 ‘중대한 범죄와 비행’이란 헌정 질서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대통령의 중대하고 위험한 위반 행위를 의미하며, 권력 남용과 부패, 미국에 대한 배신이 대표적 유형이라고 2019년 미국 ‘의회 사무국 보고서’는 설명한다.

정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철학)는 “미국 헌정사에서 ‘중대한 범죄와 비행’이라는 문구 해석을 놓고 수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대체로 △중대한 범죄 △헌법과 법률 위반을 포함한 헌법상 허용할 수 없는 권력남용 △국민의 신임을 저버리는 직무상 위법 등으로 이해되고 있다”며 “대통령의 법적 책임은 물론 국민적 신임 여부의 정치적 책임도 따진다”고 말했다(논문 ‘한국 헌정사에서 대통령 책임과 대통령 탄핵’ 2025).

1974년 8월8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사임 발표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 닉슨 대통령 탄핵소추장과 비슷

‘중대한 범죄와 비행’의 대표적 사례로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이 꼽힌다. 1972년 6월 새벽 미국 워싱턴 D.C. 워터게이트빌딩 민주당 선거본부에 침입해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던 용의자 5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실을 덮으려고 닉슨 대통령은 연방수사국에 압력을 가하고, 특별검사 해임을 지시했고, 결국 탄핵 위기를 맞았다. 자신이 연루된 사건의 수사를 방해한 것은 대통령의 권력 남용으로 ‘중대한 범죄와 비행’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1974년 하원 법사위원회가 작성한 탄핵소추장을 보면, 닉슨 대통령의 행위는 “헌정을 파괴하고 법과 정의를 중대하게 침해하며,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고 국민에게 분명한 해악을 끼쳤다”고 결론 내렸다. 하원의 탄핵소추 의결을 앞두고 닉슨 대통령은 사임했다.

닉슨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장은 우리나라 헌재가 대통령의 탄핵·파면을 위해 제시한 ‘중대한 법 위반’의 두 가지 기준과 비슷하다. 헌재는 위반 행위의 중대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①‘헌법 수호’와 ②‘국민 신임’으로 나누었다.

①탄핵심판은 행정부와 사법부의 고위공직자가 헌법을 침해할 때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제도이다. 따라서 헌법 질서를 파괴하거나 위협할 정도로 대통령의 위반 행위가 크고 심각하다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②대통령은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되어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따라서 민주적 정당성을 임기 중에 다시 박탈해야 할 정도로 대통령의 위반 행위가 국민을 신임을 저버렸다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결정한 뒤 2017년 3월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시민들이 축포를 터뜨리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 대통령 탄핵 결과가 달라진 이유

2004년 기각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사건은 ①헌법 수호 기준을 넘지 못했다. 헌재는 노무현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반 행위를 3가지로 꼽았다. 첫째, 열린우리당을 지지해 달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 둘째, 청와대 홍보수석이 선거법을 ‘관권 선거 시대의 유물’로 표현해 대통령의 헌법수호 의무를 위반했다. 셋째, 국회에서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해 헌법을 위반했다.

이러한 위반 행위는 노무현 대통령을 파면할 만한 중대한 사유가 아니라고 헌재는 판단했다. “헌법질서를 역행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사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평가할 수 없”기에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위반 행위가 중대하지 않았음은 다른 대통령의 탄핵 사건과 비교해보면 선명하게 드러난다.

2017년 헌재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인정한 위반 행위도 3가지였다. 첫째,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아니라 측근인 최서원(최순실)의 봉사자인 것처럼 정책과 업무를 추진해 공익실현 의무를 위반했다. 둘째, 기업들이 특정 재단법인에 출연하도록 요구해 기업의 재산권과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했다. 셋째, 대통령의 일정·외교·인사·정책 등에 관한 문건을 유출해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과 달리, 헌재는 박근혜 대통령의 위반 행위는 ①헌법 수호와 ②국민 신임 기준을 모두 충족한 것으로 판단했다. 첫째, 공적 지위의 사적 남용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때부터 3년 이상 적극적, 반복적,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대의민주제의 원리와 법치주의의 정신을 훼손했다”고 평가했다.

둘째, 국회와 언론의 지적에도 사실을 은폐했고, 수사기관의 조사에도 응하지 않으며, 진정성 없는 사과를 하는 등 진실규명을 방해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아 헌법수호의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위반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로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고 결론지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4월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를 떠나며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 “윤석열 대통령, 대한국민 신임 배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도 헌재는 ①헌법 수호와 ②국민 신임 기준에서 법 위반이 중대한지를 따졌다. △계엄 선포 △국회 군경 투입 △포고령 발령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압수수색 △법조인 위치 확인 시도 등 탄핵 사유 5가지 모두를 헌법과 법률 위반이라고 인정했다.

①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첫째, 계엄과 포고령을 통해 국회의 활동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군경을 투입해 국회 출입을 통제함으로써 국민주권주의와 민주주의를 중대하게 위반했다.

둘째, 계엄 선포권과 국군통수권을 남용해 국회, 지방의회의 권한, 사법권과 중앙선관위의 독립성을 침해함으로써 법치국가원리의 기본요소인 권력분립원칙을 중대하게 위반했다.

셋째, 포고령은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모든 언론과 출판이 계엄사령부의 통제를 받도록 하며, 집회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등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는데 이를 위반하면 영장 없이 체포·구금·압수·수색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광범위하게 침해했다.

②국민 신임의 관점에서는 첫째, 마지막 계엄이 선포된 때로부터 약 45년이 지나 또다시 정치적 목적으로 계엄을 선포함으로써 국가긴급권을 남용해 사회적·경제적·정치적·외교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로써 더는 국가긴급권이 정치적 목적으로 남용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었던 국민은 큰 충격을 받았다.

둘째, 헌법적 한계를 벗어나 권한을 자의적으로 행사한 대통령이 다시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면, 국민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되고, 그로 인해 불신이 쌓이면 국정운영은 물론 사회 전체에 극심한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은 “군경을 동원해 국회 등 헌법기관의 권한을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함으로써 헌법 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고 결론지었다.

■ 헌재, 미국·독일의 법제 영향 받아

김진욱 전 공수처장은 “대통령 탄핵제도를 두는 많은 나라가 대통령 탄핵의 사유와 다른 고위공직자의 탄핵사유를 구별하면서 대통령 탄핵의 경우 ‘대역죄’를 범했다거나 ‘중대한 헌법 위반’을 요구하는 식으로 엄격하게 규정하는 경우가 많다”며 “미국이나 독일 등 주요 국가의 대통령 탄핵에 관한 이런 법제와 실무가 ‘중대한’ 위반이 필요하다는 헌재의 논증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은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기자 [email protected]

참고문헌: ‘대통령 탄핵 보고서’(김진욱, 2025), ‘나쁜 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이철희, 2024), ‘한국 헌정사에서 대통령 책임과 대통령 탄핵’(정태욱, 2025)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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