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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부부 따라 입국했지만···‘값싼 노동력’ 취급
비자 문제 방치로 ‘불법 체류’ 위기·정신적 착취도
“가사 노동은 감독 불가능 영역···법적 규정 시급”
수미타(40)가 지난 8일 경기 수원시 지속가능경영재단에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수미타는 2021년 한국인 부부 자택에서 쫓겨난 뒤 줄곧 재단의 도움을 받으며 국내에 머물고 있다. 김나연 기자


미얀마인 수미타(40)는 2013년 태국에 사는 한국인 부부에게 가사노동자로 고용됐다. 수미타는 부부를 ‘보스’ ‘마담’이라고 부르며 하루도 빠짐없이 일했다. 부부의 둘째 아이는 수미타를 “엄마”라고 부르기도 했다. 2018년 부부는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수미타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수미타는 미얀마에서 멀어지는 게 부담이었지만 “한국에 가면 누구보다 돈을 많이 주겠다”는 제안을 뿌리치지 못했다. 수미타는 1개월짜리 단기방문(C-3) 비자로 한국에 입국하면서 “다 알아서 해줄 거야”라는 부부의 말을 믿었다. 그렇게 수미타는 한국에서 약 2년9개월을 보냈다.

한국에서 맞은 세 번째 여름, 수미타는 하루아침에 ‘절도범’으로 몰려 쫓겨났다. 부부가 버리는 옷들을 미얀마에 보내기 위해 모아둔 게 화근이었다. 조사 과정에서 수미타의 체류 기간이 만료된 사실이 확인됐고, 수미타는 절도 및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순식간에 직장과 주거지를 모두 잃은 수미타는 비닐봉지 하나만 들고 외국인노동자 쉼터에 갔다. 부부가 매월 주기로 한 4만바트(당시 기준 한화 약 138만원) 입금을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떨고 있고 밥도 못 먹고···. 그대로만 있었어요.” 지난 8일 기자와 만난 수미타는 몸을 살짝 웅크리며 당시를 떠올렸다.

약 2년간 이어진 법정 다툼 끝에 수미타는 절도 혐의를 벗었다. 수미타는 공익법재단의 도움을 받아 그간 받지 못한 임금을 돌려달라는 소송도 제기했다. 지난 2월 수원지법 성남지원 민사5단독은 “부부가 수미타에게 한화 약 4800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 과정에서 한국인 부부는 수미타를 고용한 적이 없고, 수미타가 부부의 자녀들을 돌보고 싶어해 자발적으로 한국에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재판을 맡은 정은영 부장판사는 “(자신의) 가족을 부양해 온 수미타가 아무런 대가 없이 가사와 육아를 도운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부부는 ‘월 4만바트’는 태국 현지 급여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현실적으로 제안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고도 주장했다. 정 판사는 “국내 최저임금이나 중국 국적 입주 도우미 월 평균 임금보다도 낮다”며 이 같은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다.

수미타는 한국인 부부 집에서 쫓겨난 이후 여러 차례 출국명령을 받았고, 매번 이를 연장해가며 재판에 임했다. 김나연 기자


수미타의 재판은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법적 구제를 받은 희귀한 사례다. 수미타는“운이 좋았다”고 했다. 개인이 고용하는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정해진 최저임금도 없다. 가사노동을 하는 ‘가정’은 사적 공간이기 때문에 관리·감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근 서울시가 추진 중인 ‘최저임금 규제 없는 외국인 가사사용인’ 사업이 ‘노동권 없는 노동자’를 양산한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수미타를 대리한 권영실 변호사(재단법인 동천)는 “수미타는 임금과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가사노동자 제도가 정착해가는 과정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각종 피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우려됐다”고 말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바라보는 인식은 ‘정신적 착취’로도 이어진다. 수미타는 일하는 내내 부부의 고성과 압박으로 두통에 시달렸고, 지금도 큰 소리가 나면 몸을 떤다. 부부는 수미타가 그들의 가정에서 일한다고 말하지 못하도록 통제했다. 3년 가까운 기간 동안 수미타가 보낸 개인 시간은 단 하루뿐이었다.

이한숙 이주와 인권연구소 소장은 13일 기자와 통화하며 “가정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면 외부에 (노동 환경이) 보이지 않으니 인권 침해와 인신매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현재는 법제상으로 보호할 방법이 없는데, 이를 선제적으로 마련하지 않으면 파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 인증 기관을 거친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 사업에서도 인권 침해 사례가 여러 차례 제기됐는데, 개인이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면 이 같은 문제는 더 심화할 수밖에 없다는 게 노동계 다수 의견이다.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안정적인 체류 자격을 부여하고, 이들이 신분상 피해를 봤을 때 사용가정에 그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지우는 방안이 보완책으로 거론된다. 국제노동기구(ILO) 가사노동자 관련 규정을 적용하는 등 최소한의 환경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수미타는 지난해 인신매매 등 피해자로 인정받고, 임시(G-1) 비자를 발급받아 국내에서 생활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 2급에 합격했다. “쉼터에 있는 동생들은 회사에 다니면서도 한국어를 하나도 못 해요. 그걸 보면 내 생각이 나서, 어려운 서류 읽는 것도 도와주고 싶어서 공부해요.” 수미타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쉼터 동료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학대와 차별, 고민해 본 적 없는 ‘외국인 가사노동자제도’의 민낯[플랫]매주 일요일이면 홍콩 센트럴 인근 광장과 상가는 신문이나 깔개를 깔고 삼삼오오 모여 앉은 여성들로 가득 찬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거나 텐트를 치고 쉬는 모습도 흔하다. 이들은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에서 온 가사노동자로, 유일한 휴일인 일요일을 맞아 고용주의 집에서 나와 시간을 보낸다. 1970년대부터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받기 시작해 현재 약 33만80...https://www.khan.co.kr/article/202310101015001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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