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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11월20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관광객들이 봉황 조형물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부처에서 에이스로 꼽히는 공무원 ㄱ씨는 2017년 5월10일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곧바로 청와대 비서실로 발령이 났다. 그에게 맡겨진 첫 임무는 ‘최저임금 1만원 공약’ 실행안을 짜는 것이었다. ㄱ씨는 “공약을 만드는 건 선거 캠프지만, 공약을 정책화해서 실행 방안을 짜는 건 관료의 몫이다. 둘 사이의 간극을 조율해서 좁히는 작업을 인수위원회에서 한다. 그런데 새 정부는 인수위가 없다 보니까 그런 것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왜 1만원인지, 왜 3년이란 목표를 잡은 건지, 물어볼 데도 없고 명확하게 답변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핵심 공약이니 빨리 로드맵을 만들어 발표해야 한다는 다급함에 쫓겼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정상적인 대선이라면 선거일부터 대통령 취임식까지 두달 남짓 인수위를 거친다. 인수위엔 대선 캠프 인사들과 교수 등 전문가 그룹, 그리고 관료들이 함께 참여해 공약의 현실화 방안을 논의하고 준비한다. 인수위가 있었다면 ‘3년 내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적절한지부터 시작해, 몇년에 걸쳐 세부 실천계획을 세울 건지, 문제점은 뭐고 대응 방안은 뭔지 등을 꼼꼼히 검토해서 ‘국정과제’로 제시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이 생략되거나 압축되고 오로지 ‘3년, 1만원’이란 공약 숫자에만 사로잡히다 보니까 “첫해에 많이 올려야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는 쪽으로 손쉽게 가버렸다. 그 결과 자영업자의 거센 반발에 부닥치면서 초기 정책 운용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최저임금은 2018년에 큰 폭(16.4%)으로 올랐지만, 그 이후 인상률은 뚝 떨어졌다. ‘1만원’은 목표 연도를 훨씬 지난 2025년(1만30원)에야 달성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틀 뒤인 2017년 5월12일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임기 내 공공 부문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곧이어 모든 공공기관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한 로드맵을 작성해 보고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진보 진영의 가치를 담은 정책이었다. 방향은 옳았지만, 반발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터져나왔다. 정규직 노조원들이 반대했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층에서도 강한 불만이 터져나왔다. 2019년 청와대 게시판엔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해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국민 청원이 올라왔고, 한달 만에 35만명이 서명했다. 청원 글은 “누구는 그 어렵다는 시험을 거쳐 입사하는데, 몇년 비정규직 했다고 정규직으로 전환해주는 게 과연 공정한가”라고 반문했다. 평등의 가치가 공정이란 가치에 의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는 순간이었다. 정책이 초래할 다양한 반응과 결과를 미리 충분히 논의하고 준비하지 못한 측면도 컸다.

2017년 대선 때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공약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 이틀 뒤인 5월12일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노조를 방문해 노조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 이 개정안은 미국 사례를 본뜬 것이다. 1963년 처음으로 대통령직 인수법을 제정해 ‘질서 있는 권력 이양’을 제도화했던 미국은 2010년엔 ‘선거 전 대통령직 인수법’을 추가로 만들었다. 대통령 당선자에게만 제공했던 정권 인수 예산과 인력 지원을 민주·공화 양당의 대통령 후보에게도 제공하는 내용이다. 새 정부의 성공적인 출범을 위해선 정권 인수 준비를 충분히 하는 게 긴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미국에선 대공황 시절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이래로 ‘새 정부의 첫 100일이 정권 성패를 가른다’는 게 정치권과 언론, 학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미국은 양당제가 뿌리를 내렸기에 민주·공화 후보에게만 인수준비위 지원을 하면 된다. 우리나라는 어느 후보까지 지원을 할 건지가 논란이 될 수 있다. 원혜영 전 의원은 “국회 의석 보유나 지지율을 기준으로 정하면 이런 논란은 넘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몇가지 법적 보완만 이뤄지면 대통령 후보가 인수준비위를 구성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봤다. 입법조사처는 ‘대통령직 인수 관련 개선과제’란 보고서에서 “보궐선거에 대비한 ‘대통령직 인수준비위’ 설치를 제도화한다면, 인사 자료의 열람·활용과 취임식 관련 업무 등 인수준비위에서 취급할 수 있는 자료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윤건영 의원은 “법을 고치지 않더라도 정치적 합의로 새 대통령이 인수위 같은 국정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공직선거법(14조 1항)상 궐위에 따른 선거가 이뤄지면 새 대통령은 당선 확정 순간부터 임기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임기 시작 후 한달 정도는 전 정부 각료들과 함께 일을 하고 한달 뒤에 정식으로 새 정부를 출범시키는 것으로 여야가 정치적 양해와 합의를 하자는 것이다. 집권 기간을 한달 줄이더라도 국정 운영 준비를 철저히 하고 출범하는 게 초기 혼선과 정책 오류를 줄여 ‘성공하는 대통령’에 다가설 수 있다는 지적은 충분히 귀 기울일 만하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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