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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을 사전에 예고하고 팔라니”
사전공시제도 시행 후 9개월간
장내매도 나선 경우 18건 그쳐
'블록딜' 장외 매매는 난도높아
"재산권 행사 지나치게 제약"
서울 여의도 증권가의 모습. 뉴스1

[서울경제]

국내 상장사 주요 주주의 장내 매도(발행 주식 1% 이상)가 급격히 줄었다. 지난해 7월 정부가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최소 한 달 전 사전 공시하도록 한 제도의 부작용으로 풀이된다. 주요 주주 입장에서는 사전에 지분 매각 계획을 알리면 주가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하락 폭을 예측하기 힘들다 보니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대주주의 재산권이 침해되고 지분 매각을 통한 자금 조달과 원활한 주주 교체 등 경영 안정을 위협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13일 서울경제신문이 전자공시시스템 통계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7월 24일 ‘상장회사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가 시행된 이후 이날까지 약 9개월 동안 사전 공시를 통해 주식 1% 이상을 장내 매도한 경우는 18건에 그쳤다. 한 달에 2건인 셈이다.

사전공시제도 시행으로 상장사 지분 10% 이상을 보유한 주요 주주나 임원은 전체 발행 주식의 1% 이상 또는 50억 원 이상의 주식을 처분할 때 이를 사전 공시해야 한다. 사전 공시 시기는 거래일 90일 이전부터 최소 30일 전이어야 하는데, 당사자가 파산·사망하거나 사전 공시일로부터 주가가 30% 이상 변동하지 않는 한 계획을 무를 수 없다.



제도 시행 후 나온 18건의 사전 공시는 대부분 당사자가 다른 주주와 갈등을 겪거나 직위에서 해제돼 주식을 처분하는 ‘특수 케이스’였다. 주요 주주의 지분 매도가 통상 주가에 악재로 받아 들여지는 상황에서 최소 한 달 전 매도 계획을 알리면 번복할 수 없다 보니 대주주가 지분 처분을 꺼리고 있다. 지난해 말 사전 공시를 통해 올 2월 지분을 매도한 김동래 전 아티스트스튜디오 대표는 공시 후 직위에서 물러났는데 거래 과정에서도 주가 하락으로 18.2% 손해를 봤다. 이외 박영옥 조광피혁 주주 등도 지분 정리 과정에서 손실을 입었다.

이 때문에 주요 주주들은 지분을 대량으로 매입해줄 수 있는 전략적 투자자(SI)를 찾아 장외에서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을 시도하는 경향을 보였다. 코스닥 상장사 퓨런티어를 창업한 배상신 전 대표는 올 들어 대출 상환 등을 목적으로 보유 주식 50만 주(5.84%)를 두 번에 걸쳐 장외에서 매도했다. 배 창업자는 지난해 2월 대표직에서 사임했다. K팝 팬 플랫폼 디어유를 이끄는 안종오 대표는 보통주 50만 주를 SM엔터테인먼트에 매각했다. SM엔터는 JYP엔터테인먼트 등 이외 주주 지분까지 블록딜로 끌어안으며 디어유를 자회사로 편입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자회사로 편입하거나 전략적 협업을 강화하려는 대형 기업 또는 투자자가 있으면 블록딜로 주식 처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블록딜 매수자를 찾기 어렵고 상속세 재원 등을 마련하기 위해 주식을 꼭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손해를 보더라도 장내 매수를 택하는 방법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상장회사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는 상장 한 달 만에 주요 경영진이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해 논란을 불러온 ‘카카오페이 사태’ 등이 발단이 됐다. 하지만 주식 매수·매도를 포함해 증여 등 주식 거래 전반을 보고 대상으로 포함하고 있고 사전 공시 후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계획을 무를 수 없어 대주주의 재산권 행사가 지나치게 제약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내부자 거래를 처벌하는 현행법 조항이 이미 있는 상황에서 사전 공시까지 강제하는 ‘이중 규제’라는 의견도 있다. 한 코스닥 상장사 대표는 “기업을 경영하는 과정에서 세금 재원 마련 등을 위해 주식을 처분해야 할 일이 생기는데 사전공시제도로 손실을 감수하지 않으면 지분 정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차라리 미공개 정보 이용 등을 처벌하는 규정을 강화하고 주식 거래는 자유롭게 풀어줘 경영진이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에 매진하도록 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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