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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유예? 트럼프 1기 복기해보니…시장, 다시 긴장


“이게 뭐야? 진짜 재무장관 발언 맞아? 관세 유예라고?”

지난 4월 9일(이하 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 현장엔 갑작스러운 고함과 욕설이 터져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를 긴장시켰던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겠다는 ‘폭탄 발언’이 SNS를 통해 퍼진 직후였다.

현장에 있던 조너선 코피나 머리디언 에퀴티 파트너스 전무는 블룸버그에 이렇게 말했다.

“장내가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우리는 서로 소리를 지르며, 진짜 뉴스인지 가짜인지 분간하려 애썼어요.”
“더 이상 안전자산은 없다”
관세 충격에 패닉셀이 급증한 2025년 4월 3일, 미국 뉴욕에 위치한 뉴욕증권거래소(NYSE) 거래장. 사진=연합뉴스
시장을 뒤흔든 건 트럼프의 한마디였다.

4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새 관세 정책을 발표하며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Make America Wealthy Again)”를 외쳤다. 그는 이날을 ‘해방의 날’이라 선언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그의 발표 직후, 글로벌 증시는 순식간에 패닉셀 국면으로 빠져들었다. S&P500과 나스닥 지수는 일주일 만에 12~13% 급락했고, 히트맵은 하루 종일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애플은 제품 가격 인상 우려에 23% 가까이 급락, 시가총액은 2조5900억 달러로 줄며, 마이크로소프트(MS)에 시총 1위 자리를 내줬다.

미국 증시의 ‘공포지수(VIX)’는 2020년 4월, 코로나19 확산 초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아시아도 무사하지 않았다. 일본 닛케이225, 홍콩 항셍, 대만 가권지수는 4월 들어 9~12% 하락했고, 코스피는 2400선 붕괴 후 사흘 만에 2300선마저 무너졌다.
2025년 4월 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각국의 관세'가 기재된 판을 들고, 관세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이날 이후 세계는 급격한 혼돈에 빠져들었다. 사진=연합뉴스

투자자들은 둘로 갈렸다. 워런 버핏식 전략처럼 현금을 들고 관망에 들어간 이들, 레버리지(차입) 상품에 베팅하는 야수의 심장을 가진 이들이다.

현금 보유 움직임은 ‘안전자산’인 미국채의 매도로 확대됐다. 트럼프의 관세 발표 전후로는 위험 회피 심리가 시장을 지배하며 주식에서 국채로의 자금 이동이 일어났지만 4월 8일엔 국채마저 대규모 매도에 휩싸였다.

10년물 금리는 이날 하루에만 17bp 급등했다. 이날 금리는 약 35bp 범위 안에서 널뛰었는데, 이는 최근 20년 동안 보기 드문 변동성이었다. 시장에선 여러 자산에서 손실을 입은 헤지펀드 등 기관투자가들이 현금 확보를 위해 유동성이 높은 국채를 내던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비안코리서치 대표인 짐 비안코는 “지금 우리는 무질서한 청산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더 이상 안전한 자산은 없다’는 우려스러운 신호였다.

월가에선 이번 상황이 2020년 3월 코로나 팬데믹 초입 ‘현금 확보 투매(dash-for-cash)’ 사태와 유사하다고 진단했다. 당시 시장은 공황 상태에 빠졌고 미국 중앙은행(Fed)은 시장 안정화를 위해 1조6000억 달러 규모의 국채 매입에 나섰다.

반면 한쪽에선 레버리지 투자 상품에 자금이 몰렸다. 하락세가 잠시 주춤했던 4월 7일 하루에만 나스닥100 지수 수익률의 3배를 추종하는 ‘프로셰어스 울트라프로 QQQ’(티커명 TQQQ)에 15억 달러(약 2조2000억원)가 유입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상품 출시 15년 만에 최대 규모다.

이번 주가 하락으로 레버리지 투자자들이 막대한 손실을 봤지만 ‘저점 매수’를 노리는 자금은 오히려 확대 유입되고 있었다.
“지금은 매수할 때”…시장 조작 의혹마저 폭주하던 트럼프발 상호관세에 급브레이크가 걸린 건 4월 9일이었다.

관세 부과 발표 13시간 만에, 트럼프는 중국에 대한 관세는 125%로 유지하되, 중국을 제외한 국가에는 90일간 상호관세를 유예하고, 10%의 기본 관세만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시장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전날까지 패닉셀에 휩싸였던 뉴욕증시는 반등으로 돌아섰고, 나스닥은 12%, S&P500은 9.5% 급등했다. 애플은 하루 만에 주가가 15.33% 폭등, 1998년 이후 27년 만의 최대 상승폭을 기록하며 전날 낙폭을 대부분 만회했다. 시가총액은 2조9879억 달러로 불어나며 3조 달러 회복을 눈앞에 뒀고, 시총 1위 자리도 되찾았다.

AI 대표주 엔비디아는 18.72%,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테슬라는 22.69%, 아마존 11.98%, 구글(알파벳) 9.88%, 메타(페이스북) 14.76% 등 주요 빅테크 주가가 일제히 급등했다.

이날 하루에만 이른바 ‘M7’ 대형 기술주들의 시총이 1조8600억 달러(약 2700원) 늘었다.

그러나 월가의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트럼프의 깜짝 유예 선언에도, 증권가엔 ‘이틀 전의 악몽’이 여전히 생생했기 때문이다.

4월 7일, 상호관세 발효를 이틀 앞둔 시점. 난데없이 등장한 ‘90일 유예설’에 시장은 단 10분 만에 요동쳤다. 나스닥은 장중 저점 대비 10% 급등하며 기록적인 널뛰기 장세를 연출했다.

그러나 백악관이 이를 “가짜뉴스”라고 일축하면서, 장중 불어난 시가총액 2조4000억 달러(약 3500조원)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4월 9일 발표에 대해서도 “시장 조작” 의혹이 월가를 달궜다. NBC는 “트럼프가 의도적으로 증시를 움직였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9일 뉴욕 증시가 개장한 오전 9시30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에 “지금은 매수하기에 아주 좋은 때!! DJT”라는 글을 올렸다. 시장 조작 의혹이 제기된 이유다. 사진=트럼프 트루스소셜

트럼프는 이날 뉴욕 증시가 개장한 오전 9시30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에 연달아 “진정하세요! 모든 게 잘 될 것”이라는 글을 시작으로 “지금은 매수하기에 아주 좋은 때!! DJT”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고는 약 3시간 뒤에 트루스소셜에 또다시 글을 올려 “나는 90일간 유예를 승인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민주당과 일부 전문가들은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미네소타대 법학 교수인 리처드 페인터는 “대통령이 시장 조작에 가담했다는 비난에 노출될 수 있는 시나리오”라고 짚었다. 트럼프가 대주주인 트럼프미디어 주가는 이날 21.67% 폭등했다.

이날 하원 청문회에 출석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는 트럼프 대통령이 고의적으로 증시를 조작하려는 것 아니냐는 민주당 의원들의 질의가 집중됐다. 그리어 대표는 “시장 조작이 아니”라며 “우리는 글로벌 무역 체계를 재편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세 폭탄으로 증시가 급락한 지난 6일과 7일에도 트럼프는 골프를 치며 주말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고, 협상 상대국들이 “미국 기준을 맞춰야 한다”고 말하며 강경 노선을 고수했다. 시장 혼란은 일시적인 것으로 치부하며, 화를 내기도 했다.

관세 전면 유예로 방향을 튼 배경엔, 미국 국채 시장의 ‘경고음’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국채 시장의 반응 때문에 상호관세를 유예했냐는 질문에 “난 국채 시장을 보고 있었다. 국채 시장은 매우 까다롭다”면서 “내가 어젯밤에 보니까 사람들이 좀 불안해하더라”라고 말했다.

백악관에 정통한 한 인사도 분위기를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월가가 다치는 건 감수하더라도, ‘집 전체’가 무너지는 건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즉 트럼프 특유의 강경 기조에도 '채권 시장 붕괴'라는 리스크만큼은 피하려 했다는 해석이다.
2018년에도 90일 유예하고…문제는 미국에 대한 신뢰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언제 다시 롤러코스터 장세가 이어질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떨어진만큼 오를 수 있고, 또 오른 만큼 떨어질 수 있다는 ‘트럼프 리스크’가 거세지고 있다.

불안을 잠재울 카드 역시 관세다. 90일짜리 유예가 붙었지만, 미중 무역갈등은 심화될 위기에 놓여 있고, 트럼프의 변덕도 언제 다시 부활할지 알 수 없다. 포인트 타이밍이 있다면, 트럼프 행정부 내부 균열이나 핵심 인사의 이탈이다. 일각에서는 6월 미·중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미 트럼프는 2018년 12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통해 관세 유예를 발표한 적이 있다. 그때도 유예기간은 ‘90일’이었다. 몇 주 동안 잠잠하다가 시장이 낙관론으로 돌아섰을 때, 트럼프는 유예기간도 끝나기 전에 또 관세를 부과했다.

당시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국가가) 미국에 대한 존경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은택 KB증권 애널리스트는 “흥미로운 것은 트럼프 행보가 1기 때와 같다는 것”이라며 “당시와 같다면 트럼프는 당분간은 조용할 것이다. 하지만 90일을 채우기 전에 ‘미국을 존경하지 않는다’며 관세를 다시 꺼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원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관세 관련 불확실성은 일부 해소됐지만, 자동차·철강 25%, 보편관세 10%, 대중 125% 관세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이후 발표될 미국의 주요 경제지표와 1분기 실적을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강경한 관세정책이 다시 유지되며 높은 관세율이 연말까지, 그 이후로도 지속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단순한 조정이 아니라 더 큰 패닉셀이 올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또 다른 카드는 금리와 AI다. Fed가 적극적인 완화 정책을 취해 금리를 인하한거나, 관세정책 이전에 중국의 생성형 AI ‘딥시크’ 이슈로 증시가 흔들렸던 만큼 AI 분야에서 미국의 압도적 우위가 다시 확인된다면 시장은 반등의 확실한 재료를 찾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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