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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관세 낸 적 있습니까? 난 있습니다. 그것은 외국 기업에 부과되지 않습니다. 수입업자와 소비자에게 부과됩니다.” (기자)
“트럼프와 나의 지식을 시험하지 마십시오. 자본 유출은 없을 것이고, 임금은 오를 것이며, 미국은 다시 부유해질 것입니다.”(트럼프 대변인)

최근 화제가 된 백악관 대변인과 기자의 설전은 관세를 바라보는 트럼프 행정부와 시장의 인식 차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관세는 수입업자에게 부과되고 그 비용은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것이 일반적인 경제학적 상식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뒤바꿔버렸다.
베트남에 매겼는데 피해는 미국인?지난 4월 2일(이하 현지 시간) 나이키 주가가 하루 만에 14% 급락했다. 트럼프의 ‘관세 폭격’이 미국인이 가장 많이 신는 운동화 브랜드의 글로벌 공급망을 직격한 탓이다.

트럼프 1기와 달리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건 베트남. 트럼프는 전날 베트남산 수입품에 최대 46%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나이키 생산량의 절반이 베트남에 집중돼 있는 만큼 충격은 즉각적으로 주가에 반영됐다. 베트남은 미·중 무역전쟁 이후 나이키·아디다스·H&M·룰루레몬 등 미국의 다국적 제조업체들이 앞다퉈 이전한 ‘제2의 공장’이었다. 그러나 차선책조차 트럼프의 관세 앞에선 보호받지 못했다.

UBS는 관세가 현실화되면 나이키 제품 가격이 10~12% 인상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BBC는 이를 토대로 추산한 결과 나이키의 이익률이 40%에서 약 11%로 줄어든다고 집계했다.
의류회사 아메리칸이글도, 미국 가구업체 웨이페어도 신저가를 기록했다. 트럼프의 관세 폭격은 외국을 겨냥한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미국 소비자와 기업을 가장 먼저 겨누고 있었다.

경제학 교과서에서 관세의 ‘전가 효과’가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된 장면이었다. ‘조세 전가(Tax Incidence)’. 세금은 기업이 내는 것 같지만 결국 그 부담은 소비자에게 넘어간다는 원리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세금은 거래 과정에 포함된 비용으로 결국 상품 가격에 포함되어 소비자가 부담한다”고 명시했다. 맨큐의 경제학 원론에도 “세금이 부과되면 최종 가격은 오르고 그 부담은 공급자와 수요자 간의 탄력성에 따라 분배된다”고 밝혔다.

관세는 쉽게 말해 다른 나라에서 구입한 상품에 부과되는 세금이다. 일반적으로 관세는 제품 가격의 일정 비율로 부과된다. 1만원짜리 제품에 25% 관세가 부과되면 2500원이 추가로 부과되는 식이다. 중국 상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가 4월 9일 기준 125%이므로 10달러짜리 상품에 12.50달러의 세금이 추가로 부과되어 기타 세금을 제외한 총 비용은 22.50달러가 된다.

외국 상품을 국내로 들여오는 회사는 정부에 세금을 내야 한다. 수입품이 미국 세관을 통과할 때 돈을 징수한다. 기업은 증가된 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고객에게 전가할 수 있다.
캄보디아가 미국에 94% 관세를?“오, 캄보디아 좀 보세요. 97%입니다.(Oh, Look at Cambodia, 97%!)”

트럼프가 4월 2일 각국 상호관세 판을 들고나와 하나하나 읊으며 한 발언이다. 경제학자들은 관세율 자체보다 더 놀라운 건 그 계산 방식이라고 입을 모았다.

미국 뉴욕시립대의 폴 크루그먼(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교수는 “트럼프의 관세 공식은 마치 챗GPT에 정책을 짜보라고 한 결과 같다”며 “그는 완전히 미쳤다”고 직격했다.

그는 유럽연합(EU) 사례를 예로 들며 “미국에 부과된다는 39%의 관세는 어디서 나왔는지조차 알 수 없다. 실제 EU의 대미 관세는 평균 3%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부가가치세를 관세로 오인해도 20% 수준인데 어떻게 39%가 나올 수 있느냐는 반박이다.

실제로 미국 테크 매체 더 버지는 주요 AI 챗봇(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그록)에 “미국의 무역적자를 제로로 만들기 위한 관세율 계산법”을 묻는 테스트를 진행했다. 놀랍게도 이들 모두 트럼프 행정부가 실제 사용한 방식과 유사한 공식을 제안했다.

즉 미국의 각국 상대국과의 무역적자 규모÷수입액=상대국의 ‘가상의 대미 관세’, 이 수치의 절반을 미국이 그 나라에 보복관세로 부과하겠다는 방식이다.

예컨대 미국이 한국과의 상품교역에서 기록한 660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1320억 달러의 수입액으로 나누면 50%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근거로 “한국은 미국에 50%의 관세를 부과 중”이라고 주장했고 상응하는 미국의 상호관세를 25%로 정했다. 캄보디아는 이 논리로 94%가 나왔다.

논란이 거듭되자 미무역대표부(USTR)는 상호관세율 산정법을 공개했다.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사전 브리핑에서 각국의 대미 관세 산정법에 대해 “경제자문위원회가 국제 무역, 경제 문헌과 정책 관행에서 매우 잘 확립된 방법론을 이용해 숫자들을 계산했다”고 주장했다.

경제학자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주장하는 이 공식이 실재하는 ‘관세율’이 아니라 외교적 압박을 위한 자의적 계산이라고 지적한다. 크루그먼 교수는 “트럼프의 진짜 목적은 경제적 합리성이 아니라 상대국을 압도하고 복종시키려는 ‘힘의 과시’에 있다”고 말했다. 즉 이 수치가 경제학 이론이나 국제무역 질서와 무관한 ‘정치적 연출’이라는 주장이다.
트럼프는 왜 관세에 빠졌나트럼프가 관세를 정조준한 것은 그의 관세 인식에 힌트가 있다. USTR은 3월 31일 제출한 연례 보고서인 국가무역추정보고서(NTE)에서 트럼프의 이런 인식을 공식 문서로 확인시켰다.

보고서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현대사에서 미국 수출업체들이 직면한 광범위하고 해로운 외국 무역장벽을 트럼프 대통령만큼 명확히 인식한 대통령은 없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이번 행정부는 불공정하고 상호주의에 어긋나는 무역 관행에 정면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미국 기업과 노동자를 최우선에 두고 공정한 무역 질서를 회복하고자 전력을 다하고 있다.”

트럼프가 1980년대부터 일관되게 믿어온 한 가지, 바로 “관세야말로 미국 경제를 되살릴 해법”이라는 생각이다.

BBC에 따르면 그가 백악관에 처음 입성하기 전부터 관세를 ‘경제의 마법 지렛대’로 여겨온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1기 행정부 때는 주변 반대에 부딪히며 제동이 걸렸지만 이제는 다르다. 두 번째 임기에 접어든 트럼프는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공화당 내 주도 세력이자 자신과 같은 인식을 공유하는 경제 자문진으로 무장한 대통령이다.

트럼프는 그간 관세를 통해 미국 소비자들이 미국산 제품을 더 많이 구매하게 되고 세금이 늘어나 국가에 대한 투자가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사기꾼들’에게 이용당하고 외국인들에게 ‘약탈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난 30년간 우리의 반대자들이 무역에 대해 내린 모든 예측은 완전히 틀렸다는 걸 절대 잊지 말라”며 자신을 믿으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고관세 정책이 100여 년 전 미국을 부유한 국가로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의 행동을 통해 우리는 마침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그 어느 때보다 더 위대한 나라로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트럼프가 줄기차게 주장한 ‘MAGA’다.
100년 전 MAGA 소환?그가 말하는 “100년 전 부유했던 미국”은 ‘미국의 황금시대’로 불린 광란의 1920년대다. 경제가 매년 9% 이상씩 성장하고 주식 투자의 광풍이 전국을 강타했던 시기. 트럼프는 고율의 관세정책을 유지했더라면 미국의 황금시대가 끝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진위를 따지려면 1789년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서명한 관세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 관세가 처음 생긴 날이다. 이 법은 정부 수입을 확보하고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품에 5%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었다. 이후 남북전쟁 등 국가적 위기 속에서 관세는 정부 재정의 핵심 수단이자 산업 보호 정책의 도구로 활용됐다.

1890년엔 1500여 개 품목에 평균 49.5%의 세율을 적용하며 고율 관세 시대를 열었다. 이 법을 주도한 공화당 하원의원 윌리엄 매킨리는 ‘보호주의의 나폴레옹’이라 불렸고 1896년 대통령에 당선된다. 트럼프 역시 그를 자신이 존경하는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꼽는다.

하지만 매킨리의 결과는 물가상승과 경기침체, 뒤이은 1893년 공황이었다. 당시 실업률은 25%까지 치솟았고 대공황 이전까지는 이 시기가 ‘최악의 경기침체’로 기록됐다. 1893 공황의 원인 중 하나로 관세를 지목하는 학자들이 많다.

1920년대 들어 공화당 정부는 관세를 연달아 인상했다. 트럼프가 다시 돌아가자고 하는 광란의 20년대다. 1921년 긴급관세법, 1922년 포드니-매커머법, 1930년 스무트-홀리법은 모두 공화당 주도로 추진된 고율 관세 법안이다. 제1차 세계대전 복귀자들의 일자리 창출, 국내 제조업 보호, 농민 지원이 명분이었다.

이 시기 대통령이었던 허버트 후버는 국제 광산 기술자 출신의 기업가형 대통령이었다. 그는 1929년 취임 당시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부자가 되어야 한다”며 관세를 통한 국가 성장전략을 꺼내 들었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이 조치가 다른 국가들의 보복관세를 촉발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듣지 않았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1930년 스무트-홀리법이 수천 개 품목에 평균 20%의 관세를 부과하자 주요 교역국들은 보복관세로 맞섰다. ‘대공황’은 그 직후 시작됐다. 1929년 10월 29일 ‘검은 화요일’ 주식시장 붕괴를 신호로 수년간 수천 개의 은행과 기업이 파산하고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내몰렸다.

대부분의 경제사학자들은 ‘스무트-홀리법’을 불황을 심화시킨 정책적 재앙’으로 봤다. 어바인 캘리포니아대의 경제학 교수인 게리 리처드슨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익을 낸 일부 산업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미국과 전 세계 사람들이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그는 국방 문제를 포함한 비무역 문제에 대한 국제협력도 감소해 히틀러가 부상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2025년 4월 다시 ‘스무트-홀리법’이 나왔다. 이 관세정책의 새로운 옹호자는 100년 전보다 더 강력한 고율의 관세를 꺼내들었다.

트럼프는 미국이 대공황에 빠진 건 1913년 연방 소득세가 도입되면서 고관세를 버리기 시작한 게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때(1929년) 모든 것이 갑자기 끝장났다. 관세정책을 유지했더라면 대공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트럼프는 스무트-홀리법을 언급하며 “사람들은 관세를 되살려 나라를 구하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되돌릴 수 없었다. 그 공황에서 벗어나기까지는 수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언급한 국가 소득세는 미국 재정의 중심이 ‘관세에서 소득세’로 이동하게 된 사건이다. 1909년 도입됐고 1913년 이를 정식으로 비준했다. 그러나 리처드슨 교수는 미국이 오랫동안 높은 관세를 유지한 것이 “미국의 산업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최첨단 기술을 보유한 국가로서 관세가 유용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관세를 없앴다”고 지적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기술 발전과 소비 확대에 힘입어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갔다.

전화, 전기, 자동차 등 신기술 기반의 소비재가 빠르게 확산됐고 포드의 ‘T모델’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대중차로 자리 잡았다. 세탁기와 냉장고도 이 시기에 상용화됐다. 이른바 ‘2차 산업혁명’의 성과가 일상으로 확산된 시기였다. 건설 붐과 함께 특히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제조업 생산의 급증은 1920년대를 ‘광란의 20년대’로 이끄는 기폭제가 됐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1921년 63포인트에서 1929년 400포인트 가까이로 6배 뛰었다. 지금의 ‘M7 시대’처럼 당시 미국은 기술이 성장을 이끄는 세계 최강의 혁신국가였다. 즉, 기술이 산업을 주도하는 시대가 되면서 더이상 관세로 우위를 갖는 협상 전략이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트럼프가 생각하는 고율 관세가 미국 소비자에게 전가되어 가격을 인상하고 세계경제 침체를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전 수석 경제학자인 켄 로고프는 이번 발표로 인해 세계 최대 경제인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질 확률이 50%로 높아졌다고 예측했다. 그는 4월 2일 발표 당시 “트럼프가 방금 세계 무역 시스템에 핵폭탄을 투하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를 ‘해방의 날’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유예된 90일짜리 관세 폭탄의 스위치가 다시 눌리면 그 결과는 세계경제 질서를 뒤흔드는 역사적 분기점이 될 수 있다.

그가 성공한다면 ‘미국 우선 질서’의 부활로 기억될 것이고, 실패한다면 다시금 대공황의 그림자를 불러올 것이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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