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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지난 11일 서울 서대문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열린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6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기 위해 연단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용현 | 논설위원

‘노상원 수첩’은 12·3 내란의 비밀 지도다. 쿠데타가 어디를 향했는지 가리킨다. 수많은 생명을 영구 집권의 제물로 바치려는 내란의 잔인한 본질을 담고 있다. 정상인이라면 꿈에서조차 떠올리지 못할 지옥도가 거기 펼쳐져 있다. 도착적 정신 상태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발상들이다.

노상원 수첩이 도착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군을 지휘할 아무런 권한이 없는 민간인 노상원이 계엄의 중추 역할을 맡았다는 점이다. 적법 절차를 거쳐 임명된 공무원이 아니면 국민이 위임한 공적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이게 헌법의 원리다. 공무원은 권한과 함께 “국민에 대한 봉사자”라는 헌법상 의무를 지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진다”(헌법 제7조). 계엄의 밤, 부당한 명령에 주저하고 시민의 안위를 걱정하던 군인들은 이러한 헌법상 의무를 본능적으로 행동에 옮겼다. 그러나 노상원은 공직자 의식은커녕 최소한의 인간적 도덕감정도 없었다. 국민을 ‘수거·처리’할 짐승으로 여겼다.

이런 자에게 군을 지휘할 권력을 부여한 것은 민주공화국 기본원리의 부정이었다. 내란이라는 위헌 속에서 벌어진 또 하나의 위헌이다. 민간인 최순실에게 국정 개입을 허용한 것은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 사유였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노상원 수첩과 거기에 얽힌 기상천외한 헌법 파괴는 유사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게서 노상원의 거울상을 본다.

한덕수는 진통 끝에 대통령 윤석열 파면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에 그 측근인 이완규 법제처장을 집어넣으려 한다. 이완규는 계엄 다음날 ‘안가 모임’의 참석자다. 법무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 법제처장, 민정수석 등 판검사 출신 핵심 법기술자들이 대통령 전용 공간인 안가에서 모였다. 내란 책임 회피와 반전의 계략을 논의하는 자리였으리란 의심은 당연하다. 이완규 등은 ‘연말 모임’이었다는 해명으로 국민을 바보 취급했다. 그리고 일제히 휴대전화를 바꿨다. 이들은 내란 방조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 이런 이완규를 헌법 수호의 신성한 사명을 띤 헌재에 앉히겠다는 한덕수의 발상은 도착적이라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괴하다.

한덕수의 헌법재판관 지명이 더 도착적인 이유는 그럴 권한 자체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헌법이 대통령에게 헌법재판관 3명을 지명할 권한을 준 것은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민주적 정당성을 결여한 한덕수가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한 것은 50여일 뒤 국민이 선출할 차기 대통령의 권한을 훔치는 행위와 다름없다. 민주공화국 원리의 부정이다.

더구나 한덕수는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 정부의 2인자였다. 국무총리는 임명된 공무원 중 가장 높은 자리다. 헌법이 규정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와 국민에 대한 봉사자의 책임을 실천하는 모범이어야 할 위치다. 그러나 내란을 저지하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소극적 임무 수행으로 저항했던 군인들보다 한참 모자란 처신이었다. 결국 국민의 힘으로 내란을 막고 대통령이 탄핵됐으면 총리는 국정 2인자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사퇴하거나 남은 두달 오로지 국정 안정에 최선을 다하는 게 공직자 된 도리다. 헌재는 한덕수 탄핵심판 선고에서 “헌법 및 법률 위반의 정도가 가볍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국정 공백과 정치적 혼란 등 중대한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가능성”을 고려해 기각 결정했다. 국정 안정을 위해 한번 용서해준 것인데, 되레 국정에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과도기의 공정한 선거관리 책무마저 팽개치고 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의 한계를 살펴 신중하게 행동하는 공직자 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총리는커녕 초급 공무원 자격조차 없다.

내란 세력을 등에 업고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권한을 휘두르며 잔인하게 헌법을 파괴하려 날 뛴 노상원과 무엇이 다른가.

휴대용 수첩에 알아보기 힘들게 휘갈겨 쓴 노상원 수첩은 혼자 생각을 정리했다기보다는 누군가의 말을 받아 적거나 대화 내용을 급히 메모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 배후를 밝혀야 내란은 비로소 종식될 수 있다. “권한대행은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 권한 행사는 자제해야 한다”던 지난해 12월 자신의 대국민 담화조차 뒤집은 한덕수의 행태도 단독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 배후는 이들보다 훨씬 더 도착적인 인물임에 틀림없다.

탄핵된 패잔병 윤석열은 지난 11일 집으로 돌아가면서 “다 이기고 돌아왔다”고 했다. 대통령직을 가리켜 “어차피 뭐 5년 하나 3년 하나”라고 했다. 도착적 헌법파괴 수괴의 넋두리답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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