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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재일교포 간첩조작 사건'
1심 "고병천, 지휘권 행사 가능 지위"
2심 "국가 배상에 고병천 책임 없어"
피해자 측 "납득 불가... 정의 실현 못 해"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정다빈 기자


1980년대 '고문 기술자'로 악명 높았던 전직 국군보안사령부 수사관 고병천(86)씨를 상대로 국가가 구상금을 청구했지만
항소심에서 패소
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가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에게 거액을 배상하게 된 것은 소송 구조 때문이지, 고씨 탓이 아니란 취지다. 고씨가 불법 수사를 주도한 것으로 봤던 1심과 달리, 2심은 그가 구상금을 물 정도의 잘못은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19-2부(부장 문주형)는 국가가 고씨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9일 원고 패소 판결했다. 앞서 1심은 국가가 청구한 3억7,700여만 원 가운데 1억8,800만 원을 인용했다.

재판부는 "고씨에 대한 국가의 구상권 행사가 허용될 정도로 고씨가 불법 수사를 적극적으로 주도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고씨에게 구상금을 청구한 배경엔
'재일교포 간첩조작 사건'
이 있다. 1984년 유학생 신분으로 고려대 의대에 다니던 윤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보안사에 연행돼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았다. 25년이 지나서야 고문에 의해 사건이 조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나 2011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2년 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12억3,000여만 원을 받았다.

이어진
구상권 소송에서 쟁점은 보안사 수사2계 계원에 불과했던 고씨에게 사건 조작을 주도할 만한 영향력이 있었는지
여부였다. 1심은 △고씨가 윤씨 사건에 적극 가담했다는 내용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보고서 △윤씨 진술 △고씨가 윤씨 재심에서 "가혹 행위를 한 일이 없다"고 했다가 위증죄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사실 등을 종합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2심은 그러나 구상금 소송의 계기가 된
국가배상소송 경위부터 다시 따졌다.
소송 제기 시점에 윤씨 청구권은 이미 소멸시효(5년)가 지난 상태였으나, 당시 법원은 "청구권 행사를 기대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는 경우엔 소멸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청구를 받아들였다.
재심에서 무죄가 나오기 전까진 윤씨가 피해배상을 요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본 것
이다.

재판부는 이 지점에 주목해 "국가는 고씨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국가 잘못으로 소멸시효 원칙을 적용할 수 없는 사건에서 국가가 개인에게 구상금을 요구하려면 해당 공무원이 그 '잘못'에 깊숙이 관여한 사실이 증명돼야 한다.
윤씨의 재심 결과가 늦게 나온 건 소송 구조와 절차 때문이지 고씨 탓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

항소심은 설령 이 기준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고씨에 대한 정부의 구상금 청구는 부당하다고 봤다. 상명하복 관계로 이어지는 보안사 조직에서 일개 계원에 불과했던 그가 불법 수사를 적극적으로 지시·지휘했을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정부가 고씨의 상급자나 검찰을 상대로는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그 차이를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점도 어색하다고 꼬집었다.

피해 당사자인 윤씨 측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 당초 이 소송은 윤씨가 국가에 직접 구상권 행사를 촉구하면서 시작됐다. 고문 행위에 대한 공소시효가 지난 현시점에선
구상권 행사가 사건 주동자들을 단죄할 사실상 유일한 방법
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1983년 '서성수 간첩 조작 사건'으로도 고씨에게 구상금 소송을 제기했으나, 1·2심에서 패소하고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윤씨 재심 사건을 맡았던 장경욱 변호사는 "여러 피해자가 공통적으로 고씨한테 고문을 당했다고 증언하고 고씨도 법정에서 이를 시인했는데, 고씨가 불법 수사를 주도하지 않았다는 법원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며 "정의 실현 관점에서, 공무원을 보호하는 취지의 대법원 판례를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에게 적용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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