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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시설관리공단 화장지 구매가격 문제
구청·구의회 갈등 속에 자체 조사 못하고
감사원에 사건 보내 17개월 만에 결론
전문가 “지방자치 제대로 작동 안된 사례”

작년 12월 제289회 중구의회 정례회 폐회식. /서울 중구 의회 홈페이지

감사원은 ‘서울특별시 중구 시설관리공단 운영비위’ 감사보고서를 지난 8일 공개했다. 공단이 화장지 구매를 수의계약으로 하는 바람에 378만원 비싸게 샀다는 내용이다. 이 사건은 중구 구의회가 감사 청구를 하면서 감사원이 17개월 동안 감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방자치 단체와 의회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사안을 국가 기관인 감사원에 넘기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진 배경에는 중구청과 중구의회가 정치적 갈등을 벌이며 대립한 사정이 있다고 한다.

화장지 378만원 비싸게 산 사건에 감사원 17개월 동원
중구시설관리공단은 서울 중구의 어린이집, 돌봄센터, 구민회관, 스포츠센터, 공영주차장 등 공공 시설물을 관리한다. 연간 예산은 420억원 규모다.

중구의회는 2023년 11월 공단에 대한 공익감사를 감사원에 청구했다. 감사원은 작년 1월 25일부터 17일 간 감사 인력 5명을 투입해 실지 감사를 했다. 이후 지난달 27일 감사위원회 의결로 감사 결과를 최종 확정했다. 총 17개월이 걸린 것이다.

감사원 감사는 공단이 관리하는 시설의 화장실에 비치하는 화장지 구매 문제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경화수 중구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은 2023년 1월 화장지를 연간 단위로 계약하려 한 팀장 A씨에게 특정 업체를 추천한 것으로 조사됐다. 자신의 오랜 친구인 B씨가 영업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부산 소재 중증장애인생산품 생산시설과 계약을 맺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공단 실무자가 먼저 알아본 서울시의 장애인 표준사업장은 화장지를 연간 4996만원에 공급할 수 있다고 했는데, 경 이사장이 소개해 준 업체는 5374만원을 불렀다고 한다. 결국 공단이 수의계약 방식으로 이 업체와 계약하면서 화장지를 378만원 비싸게 샀다는 게 감사원 판단이다.

감사원은 화장지 구매와 관련해 청탁금지법 위반도 지적했다. 화장지를 남품하게 된 B씨는 2023년 1~3월 ‘직원들이 고생하니 밥을 사겠다’면서 경 이사장 등 공단 임직원들에게 3차례 식사 대접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1월과 3월 두 차례 식사 때 1인당 밥값은 당시의 청탁금지법상 공무원에게 일반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식비 한도인 3만원보다 적었다. 같은 해 2월에만 1인당 밥값이 5만6600원으로 한도를 넘겼다.

감사원 공무원 출신인 C씨는 “지자체 산하기관도 감사원 감사 대상이기는 하지만 이 사건은 중대성이 떨어져 감사원이 17개월 간 맡아야 할 일은 아니다”면서 “지방자치 단계에서 스스로 해결했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최근 감사원이 공개한 감사보고서는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 추진 실태 ▲방송통신위원회의 불법적 2인 구조 및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과정 등에 대한 감사 ▲정책자금 운영 실태(한국산업은행의 부실여신 중심) ▲선거관리위원회의 채용 등 인력관리실태 등이다. 국가 중요 정책이나 자금 집행을 조사하는 데 감사원이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감사원이 서울 중구시설관리공단을 대상으로 공익감사를 실시한 후 공개한 감사보고서 일부.

구청장-일부 구의원 반목하다 감사원으로… 예산 처리도 2년 연속 갈등
이런 일이 벌어진 배경에 대해 한 관계자는 “중구 구청장과 일부 구의원 간 갈등이 있었다”고 말했다. 2022년 7월 취임한 김길성 중구청장은 국민의힘 소속이고, 동시에 임기를 시작한 중구 의회 구성도 처음에는 국민의힘이 5명으로 전체 구의원(9명)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구의회 의장 선출을 놓고 국민의힘 소속 구의원 중 길기영 의원과 소재권 의원이 서로 맞서다가, 길 의원이 민주당 구의원 4명과 손을 잡으면서 의장에 당선됐다. 이에 국민의힘 서울시당은 길 의원을 제명했다.

이후 구의회는 무소속인 길 의장과 민주당 구의원이 다수를 차지하며 사실상 여소야대가 됐다. 그러면서 구의회는 구청과 여러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구의회는 중구청이 제출한 2023년도 예산을 대폭 삭감했고, 2024년도 예산안도 삭감했다. 김길성 구청장은 폐기물 처리, 주차장 관리 등 필수 사업 예산이 삭감됐다면서 “부당한 횡포”라고 했다.

공단에 대한 감사원 감사도 이런 상황에서 일어났다. 구의회에서 야당 측이 “공단이 혈세를 씸짓돈처럼 펑펑 써댄다”며 행정사무조사를 실시하려 하자, 김 구청장이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로 대응했다. 그러자 야당 측은 “내부 감사기구 활용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최진혁 충남대 도시·자치융합학과 교수(전 한국지방자치학회장)는 “지방자치는 지방 문제를 스스로의 책임으로 풀어나가자는 것”이라며 “문제가 있으면 지방자치 제도 안에서 여야 간에 알아서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그게 안 돼 많은 비용이 들고 행정력이 낭비됐다. 지방자치 무용론이 제기될 만한 사례”라고 말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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