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 말 찾은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라이광잉에 있는 비야디(BYD) 판매장. 급속 충전 전기차 출시 소식에 선주문을 문의하는 중국 고객들의 문의 전화와 방문이 잇따르고 있다. 사진=김은정 한국경제신문 기자
중국 자동차 시장이 ‘BYD(비야디) 쇼크’에 들썩이고 있다. 5분만 충전해도 400
km
를 주행할 수 있는 전기차를 개발해서다. 긴 충전 시간이라는 전기차 보급의 최대 한계를 극복한 것이라 중국뿐 아니라 해외 기업과 투자자들의 관심도 높다. 선주문 문의 급증…관심 증폭지난 3월 말 찾은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라이광잉에 있는 BYD 판매장. 평일 오후에 찾았는데도 상담을 받으려는 방문 고객들로 북적거렸다. 안내데스크에는 연신 전화벨이 울렸다.
3년째 BYD 딜러로 일하고 있는 추오정 씨는 “출시 예정인 전기차에 대한 방문 고객들의 문의가 너무 많다”며 “아직 정확한 출시일과 선주문 관련해선 지침이 내려온 게 없는데 선주문을 원하는 고객들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 4월 출고를 목표로 하고 있는 세단 한L 브로셔가 나오고 예약 판매가 본격화하면 연락을 주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L의 경우 기존엔 40여 분을 충전해야 갈 수 있는 거리를 5분만 충전하면 갈 수 있다니 기술력이 굉장히 빨리 향상된 것”이라며 “한L을 문의하러 왔다가 다른 차량을 구매하려는 신규 고객도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BYD는 지난 3월 중순 중국 선전 본사에서 5분만 충전하면 400
km
를 주행할 수 있는 ‘슈퍼 e-플랫폼’을 전격 공개했다. 현재 상용화된 기술로 최소 30분 걸리던 완충 시간을 5분으로 대폭 단축한 게 가장 큰 특징이다. BYD는 이 플랫폼을 양산 승용차에 적용해 4월 한L을 출고할 계획이다. 최저 가격은 27만 위안(약 5400만원)이다.4년간 BYD로 개인 택시를 운행하고 있는 장레이 씨는 “택시기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가 BYD”라며 “보통 하루에 한번 40분가량 충전하면 그날 영업을 다 할 수 있는데 더 좋은 모델이 나오면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성능도 가격도 내연기관차에 비해 뒤처지는 게 없는데 성능 향상이 너무 빨라지고 있어 어느 시점에 교체해야 할지가 오히려 고민”이라고 부연했다. 테슬라·벤츠는 거뜬히 뛰어넘어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BYD의 ‘슈퍼 e-플랫폼’은 테슬라의 ‘슈퍼차저’, 메르세데스-벤츠의 CLA 전기차 세단보다 기술력이 앞선다. 왕촨푸 BYD 회장은 이 시스템을 공개하면서 “이렇게 되면 전기차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
km
까지 가속하는 데 2초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BYD의 목표는 전기차의 충전 시간을 내연기관 자동차의 주유 시간만큼 짧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 시스템을 적용한 한L 등의 시장 확대를 위해 초급속 충전소를 중국 전역에 4000곳 이상 설치한다는 방침도 밝혔다.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충전 시간 10분’은 ‘마의 숫자’로 여겨졌다. 배터리 과열 이슈 탓에 상용화된 기술로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많았다. 전기차 보급의 최대 장애물 중 하나는 내연기관차보다 긴 충전 시간이다. BYD의 이번 시스템이 ‘게임체인저’로 평가되는 이유다.
BYD는 충전 시간 단축을 위해 초고전압과 고전류 기술을 꺼내들었다. 모터, 배터리, 공조 기기, 전력 공급 관련 부품이 순간적으로 유입되는 전류를 버틸 수 있게 kV(킬로볼트)급 전압을 지원하도록 설계한다는 것이다. 초고속 충전을 지원하기 위해 자체 개발한 실리콘 카바이드 기반 전력 반도체 칩도 양산하기로 했다. 롄위보 BYD 부사장은 “최첨단 충전 기술은 초고속 충전 시대를 여는 핵심 인프라”라고 자평했다.
이 시스템 공개로 BYD는 속도 충전 경쟁에서 미국과 다른 중국 업체들은 제치게 됐다. 테슬라의 경우 15분 충전에 275
km
를, 메르세데스-벤츠는 10분 충전에 325km
를, 리오토는 12분 충전에 500km
를 주행하는 게 최고 성적이다. 전해질 원샷한 왕촨푸의 집요함중국 안팎에선 BYD가 내수 장악에 이어 기술 우위까지 차지하면서 ‘나 홀로 독주’ 체제를 당분간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BYD는 지난 3월 자체 개발한 자율주행시스템인 ‘신의 눈(天神之眼)’을 모든 차종에 무료로 장착하기로 했다. 테슬라는 3만2000달러 이상돼야 자율주행 기능을 넣는데 BYD는 10만 위안의 저가 차에도 장착하겠다는 전략이다. 중국의 국가대표급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의 소프트웨어도 도입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BYD의 기술혁신이 왕 회장의 집요함에서 나왔다고 분석했다. BYD의 창업자인 왕 회장은 1966년 안후이성 농촌에서 태어났다. 13세 때 아버지를 잃고 학교 진학조차 포기했지만 “공부만이 살길”이라는 형의 지원으로 중난대에 들어갔다. 졸업 후 베이징비철금속연구원에서 경력을 쌓은 뒤 비거라는 배터리 기업 사장직을 맡았다. 배터리 시장의 잠재력을 깨닫고 지인에게 250만 위안을 빌려 휴대폰 충전용 배터리 기업인 BYD를 세운 게 현재 BYD의 시작이다.
‘당신의 꿈을 이뤄라(Build Your Dreams)’라는 뜻을 사명에 담고 2003년엔 경영난에 빠진 시안친촨자동차를 인수했다. 배터리 기술을 전기차에 접목하면 승산이 있다고 봤다. 워커홀릭으로 유명한 그가 업무에 매몰돼 딸이 태어나고서도 며칠 후에 처음 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공장을 방문한 중국 공무원이 배터리의 환경오염 가능성을 지적하자 그 자리에서 전해질 용액 한 컵을 마셔버렸다는 에피소드도 한때 중국 온라인상에서 널리 퍼졌다.
“BYD의 최대 자산은 인재”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왕 회장은 인력 양성과 기술 투자를 최우선에 두고 있다. 현재 약 90만 명의 임직원이 있는데 이 중 10만 명 이상이 연구개발(R&D) 인력인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수직 계열화로 안정적인 부품 공급 체계를 갖춘 것도 BYD의 경쟁력이다.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 모터, 전자제어장치(ECU)를 모조리 자체 조달하는 곳은 BYD가 유일하다. 자체 조달이 가능해야 외부 환경에 따른 타격을 덜 받는다는 게 왕 회장의 신념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BYD는 지난해 세계 시장에서 413만7000대의 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 차량 포함)를 팔았다. 178만9000대를 판매한 테슬라를 가뿐히 이겼다. BYD의 판매량은 전년보다 43.4% 늘었지만 테슬라는 1.1% 줄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의 테슬라가 글로벌 시장에 우뚝 섰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BYD가 넘어서야 하는 관문은 ‘내수형 기업’이라는 꼬리표다. 최근엔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내면서 인도, 태국,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중국 현지의 전기차업계 관계자는 “안정성과 해외 진출 실적 등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하다”면서도 “아무래도 연구소 기반의 기업이다 보니 전기차에 AI와 로봇 기술을 적극 결합해 미래 제조업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