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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공백기 헌법재판관 지명권 첫 쟁점화
"재량권" 해석 달라진 헌재, 입장 변화 주목
7인 체제 헌재, 위헌 판단 '고난도' 과제
헌법재판소 깃발. 연합뉴스

[서울경제]

박근혜 정부 시절 대통령이 헌법재판관을 지명하지 않자 제기된 헌법소원에서, 헌법재판소는 "지명은 대통령의 재량"이라며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반대로, 대통령이 아닌 권한대행이 재판관을 지명했다는 이유로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지명을 하지 않아도 위헌이 아니라던 헌재가, 이제는 '지명했기 때문에 위헌'인지 판단해야 하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셈이다.

2016년 당시 헌법소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관을 지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제기됐다. 청구인은 지명을 계속 미루는 것이 헌법상 작위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위헌 확인을 구했다. 그러나 헌재는 대통령의 지명권은 재량적 성격을 지닌 권한이기 때문에, 지명하지 않았다고 해서 곧바로 위헌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헌법 제111조 제3항이 "헌법재판소 재판관 9인 중 3인은 대통령이 지명한다"고 규정하고는 있지만, 언제까지 지명해야 한다거나, 지명 지연 시 어떤 제재가 따르는지에 대한 법률적 강제는 없다는 점이 근거였다.

이번에는 정반대 상황이다. 대통령이 아닌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헌법재판관 후보자 2명을 지명한 것에 대해,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헌법소원과 효력정지 가처분이 제기됐다. 쟁점은 '지명 여부'가 아니라 '지명 권한이 누구에게 있느냐'다. 즉, 대통령만 행사할 수 있는 재량권을 대통령 권한대행이 행사할 수 있었는지 여부가 본안 심리의 핵심이다.

헌법에는 이 부분에 대해 명시적 규정이 없다. 헌법 제71조는 대통령이 사고나 궐위 상태일 때 국무총리가 권한을 대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그 범위에 헌법재판소 재판관 지명권이 포함되는지는 규정돼 있지 않다. 헌법재판소법 역시 지명 주체나 방식에 대한 별도의 조항 없이 대통령 지명만을 전제한다. 결국 이번 사건은 헌법상 공백 상태에서 헌법재판소가 처음으로 이 권한의 주체를 해석하는 사건이 되는 셈이다.

현재 헌법재판소는 한덕수 권한대행의 지명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과 헌법소원을 병합 심리 중이다. 마은혁 재판관이 주심을 맡았으며, 가처분 사건은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퇴임 전인 18일까지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가처분은 재판관 과반인 5인 이상만 찬성하면 인용 가능해, 신속한 결론이 가능한 구조다.

반면 본안 판단은 쉽지 않다. 18일 이후 헌재는 7인 체제로 전환되며, 헌법재판소법상 위헌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사실상 단 한 명의 반대만 있어도 위헌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구조다. 여기에 이번 사안은 헌법적으로 전례 없는 쟁점이기 때문에, 헌재가 장기 검토에 들어갈 가능성도 크다.

게다가 대선이라는 정치적 변수도 작용한다. 본안 판단이 길어지는 사이 차기 대통령이 새로운 헌법재판관을 지명하게 되면, 기존 지명은 사실상 소멸된다. 이 경우 헌재는 해당 헌법소원에 대해 "더는 판단의 실익이 없다"며 각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헌법재판소법 제39조는 '심판청구 이후 사정 변경으로 기본권 침해가 해소되었거나, 회복할 실익이 없는 경우' 재판부가 판단 없이 사건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한다.

결국 헌재는 '지명하지 않은 것이 위헌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던 과거와 달리, '지명했기 때문에 위헌인지'를 처음으로 판단하게 되는 상황에 놓였다. 과거의 판례는 그대로 유지될지, 아니면 헌법 해석의 새로운 전환점이 만들어질지 이번 결론에 이목이 쏠린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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