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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뒤흔든 위헌, 위법적 비상계엄 선포로 임기의 절반을 채우지 못한 전직 대통령의 모습이라 보기 어려웠다. 상처받은 국민들에 대한 사과 없이 지지자들을 향해서만 주먹을 불끈 쥐며 손을 내밀었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일주일만인 11일 한남동 관저를 떠나던 윤석열 전 대통령의 모습이다.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이날 오후 5시 9분경 한남동 관저를 떠나 21분만인 5시 30분경 서초동 사저인 아크로비스타로 이동했다. 반려동물 11마리도 함께 데려갔다. 지난 2022년 11월 7일 한남동 관저 입주를 완료한 지 886일 만이다. 대통령 경호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최대 10년간 경호처의 경호를 받는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감사 인사’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이제 저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나라와 국민을 위한 새로운 길을 찾겠다”며 “국민 여러분과 제가 함께 꿈꾸었던 자유와 번영의 대한민국을 위해, 미력하나마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파면 결정 후 일주일 만인 11일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떠나며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윤 전 대통령은 “지난겨울 많은 국민들, 그리고 청년들께서 자유와 주권을 수호하겠다는 일념으로 밤낮없이 한남동 관저 앞을 지켜주셨다. 그 뜨거운 열의를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며 “추운 날씨까지 녹였던 그 뜨거운 열의를 지금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 2년 반 임기를 거론하며 “한남동 관저에서 세계 각국의 여러 정상을 만나 우리 국익과 안보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말했다. 비상계엄에 대한 사과나 헌재 결정에 대한 승복 언급은 없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날 윤 전 대통령의 관저엔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수석과 비서관 및 행정관 등 200여명의 대통령실 직원이 방문했다. 윤 전 대통령은 먼저 관저 안에서 수석급 이상 참모진과 20여분간 별도로 인사를 나누며 “임기를 끝내지 못해 아쉽다. 모두 고생이 많았다. 많이 미안하고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를 전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떠나기 앞서 정문 앞에서 자유대학 소속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전민규 기자
그 뒤 김 여사와 함께 관저 대문 밖에서 도열하고 있던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했다. 우는 직원들의 어깨를 다독이면서는 “이런 상황에서 5년 임기를 채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나는 할 만큼 한 것 같다”며 “비상조치 이후 미래 세대가 엄중한 상황을 깨닫고 자유와 주권의 소중함을 인식하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비상계엄이 정당하다는 전제를 깐 말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관저를 떠나 대로변 정문 앞까지 경호처 차량으로 이동한 뒤 차량에서 내려 기다리던 지지자들과 약 4분간 인사를 나눴다. 감색 양복에 하늘색 셔츠, 노타이 차림의 윤 전 대통령 모습이 이날 처음 드러난 순간이다. 입장문에서 ‘청년들의 지지’를 강조했던 윤 전 대통령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대학교 점퍼를 입고 온 대학생들과 가장 먼저 포옹했다.

태극기를 흔들며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거나 양손을 번쩍 들며 화답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 뒤 다시 차량에 탑승해 교통이 통제된 한남대로 5차선을 저속으로 이동하며 도보에 있던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었고, 아크로비스타에 도착해서도 지지자들과 악수했다.

김건희 여사가 1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택 앞에서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정치권에선 이날 윤 전 대통령의 모습을 두고 “조기 대선에서 적극적 역할을 할 것을 시사한 것”이란 말이 나왔다. 사저 정치를 넘어 거리 정치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지난 9일 한남동 관저에서 윤 전 대통령을 만났던 이철우 경북지사는 10일 페이스북에 “윤 전 대통령이 이번 선거에서 우리 당이 승리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전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반발했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국민과 국회, 헌법에 의해 파면된 윤석열은 마지막까지 단 한마디의 사과나 반성도 없었다”며 “누가 보면 명예롭게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대통령인 줄 알겠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금 윤석열이 해야 할 일은 자숙하고 참회하며 겸허히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촉구했다.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지금 윤 전 대통령이 아름다운 이별을 할 때는 아니지 않으냐”며 “어떤 대선 후보라도 윤 전 대통령과의 거리를 두지 않고는 중도층에게 표를 달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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