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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이창훈 '다시, 봄은 왔으나'
인혁당 재건위 사건 8인의 약전
박정희 정권이 조작한 대표적 공안 사건인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재판 장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박정희 정권은 1975년 4월 9일 30분 간격으로 8명의 생목숨을 끊었다. 당일 오전 4시 55분 서도원, 5시 30분 김용원, 6시 5분 이수병, 6시 35분 우홍선, 7시 5분 송상진, 7시 35분 여정남, 8시 5분 하재완, 8시 30분 도예종. 대법원이 전날 이들에 대한 사형을 확정한 지 18시간 만에 옛 서대문형무소에서 집행된 '사법살인'. 북한의 지령을 받아 인민혁명당(인혁당)을 재건하고 정부 전복을 기도했다는 이들에게 씌워진 죄목은 전부 조작된 것이었다.

대한민국 사법 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이날로부터 50년, 국가폭력 피해자 8명의 생을 조명한 책 '다시, 봄은 왔으나'가 우리 앞에 당도했다. 이창훈 4·9통일평화재단 사료실장이 쓴 '인혁당 재건위 사건 사형수 8인의 약전'이다.

다시, 봄은 왔으나·이창훈 지음·삼인 발행·520쪽·2만5,000원


실체도 없던 인혁당 재건 나선 건 정권이었다



저자는 2011년부터 6년간 4·9통일평화재단의 구술사업으로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45명과 400여 시간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책을 썼다.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유가족과 관련자들로부터 채록한 증언, 재판기록, 신문 기사 등 여러 자료도 샅샅이 훑었다. 국가폭력에 의해 자행된 기록들이 은폐·소각된 탓에 8명 각각의 평전을 쓰고자 했던 당초 계획은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대표적 공안 조작 사건이다. 실체는 물론 창당된 적도 없던 인혁당의 재건을 도모한 이는 박정희 독재 정권이었다.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이 먼저 있었다. 한일회담 반대 시위가 격화하자 '북한 지령을 받은 간첩이 관여한 조직'(인혁당)이 배후에서 '학생들을 조종해 정부를 전복'하려 한다고 중정이 날조한 사건. 증거가 없다며 검찰이 기소를 거부하자, 해당 사건 수사와 관련 없는 당직검사로 하여금 기소를 강행했다. 훗날 '사법살인'을 당한 도예종이 이 사건으로 징역 3년을, 우홍선 등 13명이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인혁당 재건위 조작 사건으로 '사법살인' 당한 도예종(왼쪽)과 우홍선의 가족 사진. 4·9통일평화재단 제공


용두사미로 끝난 이 공안 사건은 10년 뒤 다시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소환된다. 1974년 유신 반대 투쟁을 벌인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을 수사하던 중정이 인혁당 재건위를 그 배후로 지목하면서다. 중정의 발표 직전 발령된 '반유신 데모를 할 경우 최고 사형까지 집행할 수 있다'는 내용의 긴급조치 4호에 따라 이 사건 관련 1,024명이 끌려가 조사받았고 253명이 비상보통군법회의에 기소됐다. 그해 6월 시작된 재판은 이듬해 4월 8일 대법원의 확정 판결까지 10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들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은 사후 32년이 지난 2007년의 일이다.

서도원(왼쪽)과 이수병의 생전 모습. 4·9통일평화재단 제공


'정권 찬탈' 쿠데타, 44년 만에 불의 재현됐으나



성장기부터 생각의 단편까지 엮어 구성한 8명의 생애는 애끓는 마음을 자아낸다. 8명 중 가장 젊은 31세의 나이로 절멸한 여정남의 고교 생활기록부에 따르면 1학년 때 그는 공대 진학을 희망했다. "아마도 4·19혁명과 5·16 쿠데타가 없었다면 여정남은 지금쯤 과학자가 돼 후학을 키워내고 은퇴한 노교수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여정남(왼쪽)과 송상진의 생전 모습. 4·9통일평화재단 제공


이들 삶을 통해 한국 진보운동가 형성 계보와도 만나게 된다. 1950~70년대 활동하던 혁신계 인물 500여 명이 등장한다. 8명과 직간접으로 얽힌 이들이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단행한 1972년 10월 유신 체제 아래 거사론과 준비론이라는 투쟁 노선을 둘러싼 논쟁에서 어떤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이들의 생사는 크게 엇갈렸다. 영구집권을 꿈꿨던 쿠데타 세력이 야기한 비극이다. 저자는 "쿠데타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구악일소'는 국민들의 눈가림 수단에 불과했다"며 실상은 "총칼을 들이밀며 민중을 겁박해 '정권 찬탈'이라는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려 했다"고 꼬집었다.

하재완(왼쪽)과 김용원의 생전 모습. 4·9통일평화재단 제공


책의 제목처럼 다시, 봄은 왔으나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저자는 12·3 비상계엄을 두고 "이제는 사라졌다고 본 '불의의 역사'가 44년 만에 재현된 것"이라며 "다만 그 불의에 대한 사회적 기억이 그나마 존재했기에 내란은 성공하지 못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여전히 반세기가 지나도록 "국가는 아무일도 하지 않았다"고 일갈한다. 이를 테면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에 인혁당 사형수들처럼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이들의 사회적 명예회복을 시킬 법안을 만들어 놓고도 손놓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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