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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이 밥을 지어 먹는 인천 서구 왕길동의 공장 내 식당 모습. 이준희 기자

“여기에서 두 명이 살고 있어요. 믿어지시나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9일 저녁 인천시 서구 왕길동의 한 공단.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지노이(가명·32)가 녹슨 컨테이너 문을 열고 멋쩍게 말했다. 3평이 채 되지 않는 컨테이너에는 냉장고·정수기 등 세간살이가 들어차 있었다. 발 디딜 틈 없는 컨테이너에는 두 사람이 앉아서 이야기할 자리도 마땅치 않았다. 지노이가 말했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워요. 정말 힘들어요.”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지노이가 사는 인천시 서구 왕길동의 컨테이너 기숙사. 이준희 기자

지노이의 일터는 인천에 있는 한 주물공장이다. 방글라데시 출신 노동자는 모두 7명. 이들은 공장 근처 컨테이너, 공장 한편에 남은 공간을 방처럼 꾸미고 살았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따로 없어 공장까지 가야 한다. 식탁조차 없는 식당에선 의자에 의지해 밥을 먹는다. 곳곳이 그을음과 기름때였고 먼지가 날려 목이 아팠다. 지노이는 “우리는 여기서 밥을 먹고 한국 사람들은 사무실에서 밥을 먹는다”고 했다.

이주노동자들이 밥을 지어 먹는 인천 서구 왕길동의 공장 내 식당의 모습. 지노이는 식당에 식탁조차 마련돼 있지 않아 플라스틱 의자에 의지해 밥을 먹는다고 했다. 이준희 기자

이주노동자들이 밥을 지어 먹는 인천 서구 왕길동의 공장 내 식당 모습. 이준희 기자

이주노동자들이 샤워를 하는 인천 서구 왕길동의 공장 내 샤워실 모습. 지노이는 샤워실에 샤워기 등이 따로 없어 바가지로 물을 퍼서 씻는다고 했다.

지난해 5월 한국에 온 지노이는 “이런 곳에서 살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지노이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정식 비자(E-9)를 받아 한국에 왔다. 방글라데시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경영대학원(MBA)을 다녔고 은행원으로 일한 그는 “한국에서 일도 하면서 공부하고 모은 돈으로 딸(2살)에게 좋은 교육을 해주고 싶어” 한국행을 택했다. 하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은 불법 기숙사와 고된 노동으로 망가진 허리였다.

이주노동자 주거권은 2020년 12월 캄보디아 출신 속헹(당시 31살)이 비닐하우스 가건물에서 자다가 한파에 숨지면서 본격적으로 관심을 받았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이듬해 1월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는 사업주의 이주노동자 고용을 불허하기로 했지만, 현장에서는 편법이 만연한다. 기숙사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하고 고용허가를 받은 뒤 실제로는 불법 건축물에 살게 하는 식이다. 지노이의 근로계약서에도 기숙사는 ‘미제공’으로 돼 있다.

지노이가 9일 인천 서구 왕길동에 있는 컨테이너 기숙사 문을 열고 있다. 이준희 기자

지노이와 그 동료가 사는 인천 서구 왕길동 컨테이너 기숙사의 모습. 지노이는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 필수적인 가전도 제공되지 않아 세간살이를 대부분 길에 버려진 것을 주워 와서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준희 기자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관리·감독은커녕 실태 파악도 못 하고 있다. 앞서 지난 3월 고용노동부가 농업 이주노동자 주거환경 실태 조사 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는 아예 없다. 농업 이주노동자 실태 조사는 4265곳 가운데 3980곳(93.3%)이 규정 위반 사항이 없다고 했지만, 이 역시 현장에서는 “믿기 어렵다”(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는 반응이 나온다.

이주노동단체는 노동자의 사업장을 옮길 자유가 없는 고용허가제 문제를 지적했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 김달성 목사는 “사용자 승인 없이는 사업장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열악한 환경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살게 되는 것”이라며 “불법 기숙사 관련 꼼수가 공장·농장에 즐비한 만큼 고용허가제에 사업주가 제대로 된 기숙사를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을 필요도 있다”고 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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