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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우왕·공양왕, 도참 믿고 개성에서 한양 천도 후 참수형
풍수 신봉 이성계, 아들 골육상쟁에 개경 환도 후 한양 재천도
윤석열, 천공 개입 논란 속 용산 대통령실 이전…탄핵 말로
'대통령의 무덤' 청와대로 이전?…"공간과 제도 모두 바꿔야"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서울의 옛 지명인 한양으로 수도를 처음 정한 건 고려 말 우왕이었다. 우왕은 1382년 천도를 단행하면서 지금의 북악산(백악) 남쪽 청와대 자리에 있던 연흥전을 관저로 삼았다. 우왕은 이후 5개월 만에 개경으로 환도했다가 이성계 일파에 의해 쫓겨난 뒤 아들 창왕과 함께 참수형을 당했다.

8년 뒤 공양왕도 한양 천도와 환도를 반복했다가 목이 잘렸다. 우왕과 공양왕은 통일 신라 말기 승려 도선이 쓴 예언서인 도선비기(道詵秘記)의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 땅의 기운이 쇠하면 왕성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을 천도의 명분으로 삼았지만, 결국 자충수가 된 것이다.

'윤석열, 2025년 용산서 통일 대통령 된다' 예언한 천공
[연합뉴스 자료사진]


1392년 조선을 창업한 이성계도 즉위 직후 한양 천도를 명했으나 "길하지 못한 때"라며 신하들이 반대하자 계룡산으로 천도를 결심했다. 왕손의 탯줄을 묻을 명당이라는 풍수지리를 믿고 궁궐 공사에까지 들어갔지만, "물이 없어 망할 땅"이라는 책사 하륜의 반대로 천도 계획을 백지화했다. 하륜은 계룡산의 대체지로 지금의 신촌인 무악을 추천했으나 "땅이 좁다"는 반론에 부딪혔다. 결국 이성계는 백악의 남쪽 땅을 도읍으로 정하고 경복궁을 창건했다.

경복궁 시대도 오래가지 못했다. 천도 4년 후 이성계는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훗날 태종)이 이복동생인 왕세자 이방석과 정도전 일파를 죽이는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궁궐이 피로 물들자 둘째 아들 이방과(정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개경으로 환도했다. 개경에 돌아가서도 피바람은 계속 불었다. 이방원은 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동복 형제들을 숙청한 뒤 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고, 이에 태조는 태종에게 한양 재천도를 요구했다. 태종은 풍수지리는 믿을 게 못 된다며 반대했으나 개경은 기운이 쇠한 땅이라는 아버지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고려 우왕부터 문재인까지 관저로 사용한 청와대 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계기로 용산 대통령실과 관저를 청와대나 세종시로 이전하자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불거지고 있다. '궁궐' 이전이 불가피한 사유로 국가 안보와 행정 편의, 지역균형 등 이런저런 말을 하지만, 사실상 핑곗거리라는 시선이 나온다. 윤 전 대통령이 무속인들의 말을 듣고 용산으로 간 것이 명을 재촉한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이전론에 상당 부분 작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청와대와 세종시가 용산보다 좋은 길지이어야 하는데, 과거를 되돌아보면 그런 근거가 희박하다.

우왕과 이성계를 굳이 거론할 필요 없이 청와대는 '대통령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얻은 데서 보듯 궁궐 터로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세종시 또한 명당의 지형인 배산임수(背山臨水:산을 등지고 물을 내려다본다)라 하지만, 기대했던 수도 이전과 국운 상승은 고사하고 행정비효율의 전형이라는 비판만 뜨겁다.

청와대 대통령실 이전 관장한 김용현 전 국방장관
(서울=연합뉴스)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김용현 대통령 경호처장(오른쪽)과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이 용산 대통령실 후보지를 둘러보기 위해 국방부를 방문한 모습. 2022.3.15


윤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나와야 하는 이유로 "공간이 사람의 의식을 지배한다"는 격언을 입에 올렸지만, 그 역시 구속과 탄핵, 검찰조사 등 불명예를 입은 전임자들의 전철을 밟고 있다. 대통령의 의식을 지배하는 건 공간보다 제도임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사례다. 그래도 청와대로 다시 들어가겠다면 대통령을 제왕으로 만드는 환경을 미리 차단해야 한다. 청와대로 출퇴근하며 언론의 물음에 답하고, 그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기자회견을 통해 민심을 들어야 한다.

지역 갈등 속에서 양극화와 저출산, 저성장이 온갖 악순환을 빚어내면서 민생이 도탄에 빠져들고 있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은 궁궐 이전 논의보다 국가 대개조와 성장 동력 확보다. 대선의 출발선에 선 대선후보들은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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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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