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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사는 73세 할아버지
주변 도움으로 암 수술 회복 중
“산불 피해 이재민 돕고 싶다”며
봉사자에 건넨 봉투와 자필 편지
박지훈(가명) 할아버지가 지난 3일 자원봉사자 김수진씨에게 전달한 영남 산불 기부금 20만원. 오른쪽은 그와 함께 전달된 손편지다. 이랜드복지재단 재공


사업으로 큰 부를 축적한 사람의 20만원과 기초생활 수급자의 20만원의 가치는 분명 다를 겁니다. 그 돈은 누군가에게 없어도 되지만, 다른 이에겐 한 달 식비같이 큰돈이기도 하거든요. 오늘의 주인공 할아버지가 이번 영남 산불 피해자를 위해 전 재산과도 같은 20만원을 내놓았습니다. 연예인과 인플루언서 등 거액의 기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 큰 마음을 오늘 독자분들에게 전하려고 합니다.

경남 함양에 홀로 사는 72세 박지훈(가명) 할아버지는 최근 집에 찾아온 자원봉사자 김수진씨에게 “산불 성금을 하고 싶은데 혹시 받아줄 수 있느냐”며 20만원을 건넸습니다. 수진씨는 이랜드복지재단 SOS위고봉사단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박 할아버지를 알게 됐는데요. 최근 전립선암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인 할아버지의 안부를 묻기 위해 지난 4일 할아버지 댁을 찾았다가 따뜻한 마음을 건네받았다고 했습니다.

박지훈(가명) 할아버지가 지난 3일 자원봉사자 김수진씨에게 전달한 영남 산불 기부금 20만원. 이랜드복지재단 재공


박 할아버지가 자랑할 일이 아니라며 언론 인터뷰를 거절해 그 날의 상황을 수진씨에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딸기와 포도를 씻어서 작은 상에 먹으라고 내주셨어요. 저희가 어르신 댁에 갈 때 보통 간식을 들고 가서 뭘 내주시거나 하는 경우가 잘 없는데 할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사는 곳은 이번에 산불이 난 경남 산청과도 멀지 않은 곳이라서 하늘도 뿌옇고 연기가 나고 그랬거든요. 할아버지도 뉴스로 산불 피해를 보시고 많이 안타까워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산불 피해자를 위해서 기부를 하고 싶은데 혹시 받아 줄 수 있냐면서 봉투에 담긴 20만원을 건네주셨어요. 마침 제가 속한 봉사단에서도 산불 모금을 하는 중이라서 제가 대신 받아 은행에 가서 할아버지 성함으로 입금해 드렸습니다. ”

박지훈(가명) 할아버지가 지난 3일 자원봉사자 김수진씨에게 전달한 영남 산불 기부금 20만원과 관련한 기부금 영수증. 이랜드복지재단 재공


박 할아버지는 수진씨에게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전달하기도 했는데요. 할아버지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박지훈(가명) 할아버지가 지난 3일 자원봉사자 김수진씨에게 전달한 기부금 20만원과 함께 전달한 손편지. 이랜드복지재단 재공


“처음 진단을 받고 수술 비용을 듣던 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통장에 남아있던 돈으로 수술을 마음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몇백의 돈으로 목숨을 포기해야 된다는 생각이 드니 서글픈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중략)
현재는 감사하게 건강을 회복하여 잘 지내고 있습니다. TV를 보니 얼마 전 큰 산불로 피해를 보신 분들이 눈물을 흘리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꼭 얼마 전에 삶에 끝에 선 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있는 사람은 압니다. 그 끝에서 만나 주변에 관심과 응원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를요. 작은 돈이지만 제가 받았던 희망을 그분들께 다시 전하는 데 보태고자 합니다.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는 35년 전 이혼을 하시고, 일용직으로 생활비를 버시다가 허리디스크 등 문제로 더 이상 몸을 쓰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되셨습니다. 그러면서 20가구가 전부인 작은 시골 마을에 보증금이 없고 월세가 저렴한 집을 찾아 정착하셨고요. 그러다 지난해 여름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수술비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할아버지는 이랜드복지재단과 지자체, 병원의 도움으로 수술을 무사히 받았습니다.

할아버지와 수진씨는 모두 기독교인입니다. 그래서인지 수진씨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성경 속 이야기가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많은 헌금을 드렸지만, 예수님께서는 과부가 자신의 전 재산인 두 렙돈(돈의 단위)을 내놓은 것을 칭찬하셨어요. 돈보다는 그걸 내는 사람의 형편과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죠. 할아버지는 기초생활수급자이시고 별다른 수입원이 없으시거든요. 월세 내고, 밥값을 쓰시고, 병원비도 필요하신데도 전 재산을 내놓으신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주변의 도움으로 암 수술을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표현을 많이 하셨는데, 말뿐 아니라 그 마음을 진짜로 표현하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감사하는 삶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돈이 더 많이 벌게 되면 기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들 한다고 합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 남을 도울 수 없다는 마음이겠죠. 그러나 박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취재하면서 남을 돕는 마음엔 크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작은 돈이지만 제가 받았던 희망을 그분들께 다시 전하는 데 보태고 싶습니다.” 할아버지의 이 말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거 같습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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