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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8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사진 국무총리실 제공

‘계몽령’이라는 ‘평화로운 계엄’을 역사 이래 처음으로 시현한 ‘계몽주의 폭군’ 윤석열에게 고마운 게 하나 있다. 그렇게 자폭해서, 지금 국정이 대행체제로 운영되는 상황을 만들어준 것이다. 권력 공백 상태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로 시작한 전례 없는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우리에게는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아직도 권좌를 지키고 있었다면, 트럼프는 한국을 시범 케이스로 하여 자신의 힘을 과시했을 것이다. 한국은 그야말로 적당한 대상이다. 한국의 대미국 무역흑자도 큰데다, 트럼프의 미국이 탐내는 조선업, 반도체, 자동차 등의 알짜 산업들이 있다.

게다가, 미국이라면 간이라도 내줄 자세를 더 보여주지 못해 안달이 난 윤석열이 아니었던가. 윤석열은 조 바이든 전 행정부의 우크라이나 전쟁 정책과 관련해서는 동맹 중에서도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논란의 현장인 부차 학살지를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 방문한 윤석열은 포탄 등을 우회 지원하고, 공격적인 살상 무기 지원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불거진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 논란은 아마 트럼프의 대선 승리가 아니었다면, 한국의 우크라이나 전쟁 관여 수준을 제고했을 것이다.

미국과의 가치연대를 최고 외교 치적으로 자화자찬하는 윤석열은 올인했던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에 회의적인 트럼프와는 무엇으로 합을 맞출지는 뻔하다. 상호관세를 발표하면서 백악관이 내놓은 자료에는 “교역 상대국이 불균형 무역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중대한 조처를 하거나 경제·국가안보 사안과 관련해서 미국과 나란히 하면 관세를 내릴 수 있다”고 적시했다. 트럼프는 차제에 무역적자 개선뿐만 아니라 외교안보 사안까지도 상대국으로부터 양보를 받으려 하는 것이다. 한국에는 주한미군 주둔비의 천문학적 인상은 물론이고,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 한국의 적극적 역할을 압박할 것이다.

나서기 좋아하는 윤석열은 트럼프를 제 발로 찾아가 ‘트럼프로부터 가장 환대를 받은 외국 정상’ 등의 자화자찬을 하며 트럼프와의 가치연대에 올인했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중국 우선론자의 이론적 좌장인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은 주한미군을 대북한 억제가 아니라 대중국용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과 트럼프가 주한미군을 대중국 견제와 봉쇄에 복무시킨다는 합의를 내놓는 것은 결코 허황된 가정이 아니다. 윤과 트럼프의 스타일과 성정을 고려하면, 불가능은 없다. 윤은 계엄 이후 중국 간첩과 중국의 선거 개입을 떠들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윤이 사라진 다행스러운 공백을 권한대행이라는 국무총리 한덕수가 다시 메꿔버리고 말았다. 한덕수는 8일 트럼프와 통화했고, 한국은 일본과 함께 제일 먼저 쪼르르 트럼프 앞으로 조아리게 된 나라가 됐다. 트럼프도 통화 뒤 “원스톱 쇼핑”이라며 한국과 안보 사안을 포함해 모든 것을 일괄 타결할 것임을 시사했다. 한국을 시범 케이스로 만들겠다는 거다.

지금 시간에 쫓기는 쪽은 트럼프이다. 공화당과 트럼프의 동맹자들인 억만장자 사이에서도 커지는 반대 의견, 그리고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반관세·트럼프 시위 등이 비등한다. 역대 네번째의 증시 폭락이 지속된다. 트럼프는 이 상호관세를 이대로 오래 끌고 갈 수 없다.

중국이 먼저 나서 본격적으로 미국과 일합을 겨룰 태세이다. 중국을 위시해, 유럽과 일본 등이 트럼프와 실랑이 끝에 큰 틀의 타협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런데 한덕수가 한국을 트럼프의 희생양이 될 길로 몰아넣고 있다. 권한대행 주제에 헌법재판관을 윤의 측근으로 지명하는 것을 보니, 윤의 유훈 통치를 하려는 움직임이다. 그의 대선 출마설도 나돈다.

한덕수는 트럼프가 통화에서 자신의 영어가 아름답다고 평가했다고 총리실을 통해 밝혔다. 영어 실력 자랑하려고 통화했나? 한심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와 제이디 밴스 부통령에게 말려들어서 개망신당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통역 없이 영어로 떠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권력이 공백인 대행체제를 이유로 가능한 한 트럼프의 미국과 협상을 늦추거나, 핵심 사안 결정을 미뤄야 한다. 새 정부의 몫이라고 넘겨야 한다. 새 정부가 맡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한덕수는 트럼프에게 영어 실력 자랑 말고, 당장 협상에서 손을 떼야 한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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