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란다 홈페이지 화면 캡처
“충분히 빠르다니까요.”
고등학생 박동주(18·가명) 군은 태어나서 타자 연습을 해본 적이 없다. 양손의 검지와 중지, 열 손가락 중 네 손가락만 사용하는 '독수리 타자'다. 그는 불편함이 없어 타자 치는 법을 배울 필요를 못 느낀다고 했다. 코딩까지도 독수리 타법으로 짠다. 그는 “많은 친구들이 독수리 타법을 쓴다”고 했다.
한국의 10대들은 ‘디지털 세상에서 태어난 원주민’이라는 뜻의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별명도 붙은 세대다. 다른 세대보다 디지털 기기에 훨씬 익숙한 이들이 독수리 타법으로 타자를 친다.
그 이유가 뭘까. 단서는 그들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에서 얻을 수 있다. ‘터치 세대’다. 터치 세대는 유년기부터 터치스크린을 접한 이들을 부르는 말이다. 키보드를 두드리고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보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의 화면을 만지는 것이 더 익숙하다. 손가락으로 화면은 부드럽게 움직이지만, 키보드 위에서 그들의 손가락은 얼어붙는다.
독수리 타자를 치는 Z세대는 해외에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빌리 아일리시도 독수리 타자’라며 타자 교육의 공백을 지적했다. 미국 교육부는 2000년 44%에 달하던 고등학생의 타자 수업 이수율이 2019년 2.5%까지 줄었다고 밝혔다. IT 기기의 발전과 교육과정의 변화가 타자 능력의 후퇴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상황이다. 제5차 교육과정부터 컴퓨터 교육이 시작됐다. 2007년 개정 교육과정은 ‘정보를 수집한 후 컴퓨터로 작성하여 활용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문서 작성, 인터넷 검색 등 기초 조작법을 익히는 수업이 이뤄졌다. 타자 연습은 수업에 자연스럽게 포함됐다.
하지만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 코딩이 추가되면서 컴퓨터 기초 교육은 비중이 줄어들었다. 올해 3월부터 시행된 2022년 개정 교육과정은 ‘컴퓨터에 명령하는 방법을 체험하고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한다”는 성취 기준을 내세웠다. 알고리즘과 코딩, 인공지능 등의 심화 내용이 정보 교육의 중심이다. 키보드 입력이나 문서 작성 능력은 성취 기준에 없다.
현장에선 디지털 교육의 공백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경기 안양시의 초등학교 교사 임희연(26·가명) 씨는 “실과 시간에 코딩 수업을 해요. 5학년인데도 독수리 타자인 아이들이 많아요. 솔직히 좀 답답하죠.”라고 말했다.
시장은 공교육의 빈틈을 놓치지 않는다. 온라인 과외 플랫폼 ‘자란다’에는 과학 실험, 수학 경시대회와 함께 ‘타자 연습’ 배너가 있다. 가격은 시간당 2만원대다. 홈페이지에는 타자 과외 후기 72개가 있다. 코딩 학원 홈페이지에서는 타자법을 배우고 있는 초등학생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프로그래밍에만 집중하고 있는 한국 교육의 실태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2023 국제 컴퓨터·정보 소양 연구’에 따르면 한국 중학생들의 코딩 능력을 보여주는 컴퓨팅 사고력 점수(537점)는 세계 2위 수준이다. 하지만 파워포인트, 엑셀 등 기초 문서 사용 빈도 점수(45.5점)는 국제 평균(50점)보다 낮았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관련 보고서에서 학습 수행에 필요한 기초 문서 작성 경험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디지털 소양 신장을 위해 정보과 교육의 내실 있는 운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