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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전주 만경강 벚꽃길

편집자주

일상이 된 여행. 이한호 한국일보 여행 담당 기자가 일상에 영감을 주는 요즘 여행을 소개합니다.
전북 완주군 만경강 제방길에 화사하게 핀 벚꽃 아래로 자전거를 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만경강 제방길에 핀 벚꽃 뒤로 강과 습지가 보인다.


전북 군산·익산·김제·전주·완주 등 5개 지역을 관통하는 만경강 벚꽃길이 되살아났다. 한때 전국 최고의 벚꽃 명소로 꼽혔지만 2000년대 들어 최초 식재된 벚나무의 수명이 다하면서 일대를 찾는 상춘객의 발길도 뜸해졌다. 하지만 벚나무들이 다시 자리를 잡고, 전 구간 자전거 전용도로가 설치되면서 '벚꽃 라이딩' 명소로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

만경강 벚꽃길은 일제 수탈의 아픈 역사에서 시작됐다. 만경강을 따라 군산과 전주를 잇는 구간인 26번 국도는 일제강점기 시절 '전군가도'라 불렸다. 일제가 호남 평야에서 수탈한 작물을 수송하기 위해 1908년 닦은 한반도 최초의 포장도로였다.

전군가도가 벚꽃길로 재탄생한 건 1975년. 전북 출신 재일교포들이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성금을 모아 국도변에 벚나무 6,435그루를 심었다. 눈부시게 흰 벚꽃이 만경강을 따라 100리(39.27㎞)나 이어져 '100리 벚꽃길'로 불렸다. 전국에 벚꽃이 만개하는 4월, 자전거를 타고 만경강을 따라 흐드러지는 흰 벚꽃길을 달렸다.

벚꽃과 물억새 보며 라이딩

한 시민이 만경강 북측 제방 벚꽃길을 달리고 있다.


자전거를 탄 시민이 전북 익산시 만경강 자전거도로를 달리고 있다.


만경강 벚꽃길은 26번 국도가 만경강을 건너는 만경교(익산·김제시)에서부터 강 제방을 따라 완주군 고산면 양화교 인근까지 약 30㎞ 이어진다. 대부분 번영로가 쇠락한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된 새만금 유역 생태 숲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심은 나무들이다.

이 중에서 벚꽃 자전거길로 이름난 구간은 익산-전주를 잇는 만경교-삼례교 구간. 만경강을 기준으로 서쪽 구간이 구(久) 벚꽃길. 현재는 벚나무 밀도가 더 높은 동쪽 구간이 뜨고 있다. 강의 북쪽 제방길은 익산시와 완주군, 남쪽 제방길은 김제시와 전주시 관내다.

개인 자전거를 타고 간다면 어디서 출발하든 상관없지만, 현지에서 자전거를 빌려야 한다면 전주시내에서 출발하는 것을 추천한다. 만경강의 지류인 전주천이 전주 시내를 관통해 흐르는데, 이 천변에 전주시 공공자전거 ‘꽃싱이’ 대여소가 여러 곳 있다. 단돈 1,000원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종일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다. 관외로 자전거를 타고 나가는 것은 상관없지만 반드시 관내에 있는 대여소로 돌아와 자전거를 반납해야 한다.

만경강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송천대여소가 만경강-전주천 합류지점에서 5km 거리에 있는데, 전주천변에도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어 가는 길이 결코 심심하지 않다. 만경강 본류보다 위도가 낮아 개화시기도 빨라 이른 봄에는 만경강보다 더 아름답다. 벚꽃 한가득 만개한 전주천을 따라 달리다 삼례교를 건너면 본격적으로 만경강 벚꽃길이 시작된다.

익산에서 전주로 넘어가는 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만경강 습지.


만경강 남쪽 습지 위로 새가 날고 있다. 강 건너편에 벚꽃길이 보인다.


만경강 벚꽃길의 특징은 아름다운 벚나무와 맞닿아 펼쳐진 습지다. 전주에서 익산 방면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면, 제방길 오른편에는 벚나무가, 왼편에는 물억새와 철새가 여행객을 반긴다. 이 광경이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다. 자전거도로의 경사도 완만해 자전거 초보도 다니기에 어려움이 없다. 여유롭게 페달을 밟다 보면 때때로 억새를 헤집고 불어온 봄바람이 벚나무를 흔들어 꽃비를 내린다. 다른 벚나무 군락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절경이다.

북쪽 길이 벚나무 밀도가 더 좋다면 물억새와 습지는 남쪽 길의 풍경이 나으니 취향껏 선택하면 된다. 전주시 공공자전거를 빌렸다면 어차피 길을 돌아와야 하니 갈 때는 북쪽, 올 때는 남쪽 길을 타는 것도 좋다. 전주가 아닌 익산에서 출발하는 여행객은 만경교에서 1km만 가면 익산시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이용시간이 2시간으로 제한되는 대신 이용요금이 무료다. 자전거를 편도 1시간 이내로 짧게 탈 생각이라면 좋은 선택지다.

일본 수탈 역사 남은 춘포

전북 익산시 춘포역 앞에서 과거에 같은 장소에서 촬영한 즉석 사진을 비교하는 모습.


전북 익산시 춘포면 춘포리의 구 일본인 농장가옥과 정원.


만경강 자전거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춘포리라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춘포역사(驛舍)가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호남 평야 지역에 일본인 농업이민으로 마을이 형성되면서 춘포역(구 대장역)이 설립됐다. 역사는 단층의 작은 건물 네 채로 구성돼 있다. 당시 호남에서 생산된 쌀 등을 수탈해 일본으로 수송하기 위해 들어선 역이다.

춘포리에는 일본인 소유 대농장 중 한 곳인 호소카와 대농장의 일부가 과거의 모습을 온전히 간직한 채 남아 있다. 79대 총리대신을 배출하기도 한 유력가인 호소카와 후작가는 호남 평야에 농장을 세우기 위해 한일병합 전부터 만경강 일대 농토를 매입했다. 농토를 매입하는 것을 넘어 농장에서 근무할 일본인도 대거 이주시키고 치안, 교육, 종교 등 기반 시설도 세웠다. 오로지 농장 관리를 위한 도시를 세웠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15년 조선총독부 표창을 받았다.

일제강점기 당시 지어진 공장 외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전북 익산시 춘포면의 도정공장.


전북 익산시 춘포면의 도정공장 내부.


당시의 도정 공장과 가옥 두 채가 잘 보존돼 있다. 도정 공장은 미술 갤러리로 탈바꿈해 전시 기간에는 입장권을 구매해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곡식을 도정하던 설비, 거대한 공장 구조물 등이 당시 상황을 짐작게 한다. 아픈 역사의 기억을 다룬 전시가 공간의 분위기를 살린다.

농장 관리인이 살았던 ‘구 일본인 농장가옥’에서는 복층 목조 적산가옥과 일본식 정원을 감상할 수 있다. 현재도 주민이 거주하고 있지만 이따금 행사에 맞춰 외부에 개방한다. 담장이 낮고 느슨하게 둘려 있어 건물과 정원 외형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당시 주임 관사를 물려받은 한국인 직원이 살던 '김성철 가옥'도 완벽에 가깝게 보존돼 있다.

'카페 춘포'를 운영하는 청년이 직접 디자인한 마을지도가 마을 입구 담장에 걸려 있다.


춘포리에는 젊은 세대들의 귀촌도 늘어나고 있다. 마을 입구와 춘포역 담장에는 이들이 직접 디자인한 귀여운 지도가 붙어 있다. 근대 문화유산 보존과 활용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춘포역에도 지난해부터 즉석 사진기기와 역무원 복장과 같은 촬영 소품이 비치됐다. 귀촌 청년들이 차린 카페·농촌민박도 옛 일본인 대농장인 이마무라 농장터에 자리 잡았다.

1970년대를 툭 떼 온 '전주난장'

전북 전주시 체험박물관 전주난장의 책방 전시관.


전북 전주시 전주난장에 조성된 읍내상점 거리.


익산시 춘포면을 거쳐 전주시에서도 근대 여행을 떠날 수 있다. 한옥마을 외곽 인근 '전주난장'은 여행객을 산업화 이전 근대로 돌려보낸다.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춘포에 이어 전주난장을 방문하면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전주난장은 1970~80년대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체험박물관이다. 조문규 대표가 25년여간 모은 소품과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당대 생활용품을 전시하는 대신,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었다. 당시 마을을 통째 떼 낸 듯 박물관 내부에는 골목이 이어진다. 골목을 따라 걸으면 검푸른 칠판과 나무 책상, 노란 양철 도시락을 데우는 난로까지 추억의 교실이 나오고, 동네 슈퍼, 이발소, 양장점, 전파사, 만화방, 고고장 등이 정겹게 여행객을 맞이한다.

전주난장의 '군대시절'과 '기차역' 테마관.


전주난장 군산극장 테마관 '전통놀이터'에서 어른 관람객이 추억의 게임을 하고 있다.


실제 옛 시절의 때가 묻은 물품을 구해서 공간을 만들었기에 관람객의 몰입이 배가 된다. 가령 전시관의 창틀은 철거된 옛 전북도청에, 바닥 마루는 군산동초등학교에 있던 것이다. 조 대표가 옛 물건을 모으고 다니니 지역 주민이 “저 초등학교 바닥 뜯는덴다, 얼른 가 봐라!”라고 일러줘 부리나케 달려갔다고 한다. 군 내무반을 관통하는 철도조차 울산의 폐선에서 가져왔다.

미로처럼 잘 짜인 동선 덕에 관람이 지루하지 않다. 근대를 경험하지 않은 아이들과 청년들은 이색적인 레트로 여행을, 근대를 경험한 어른들은 잠시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가는 추억의 여행을 할 수 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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