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AI 정부로 가자] <1> 인프라 구축이 첫 열쇠
에스토니아 'AI 정부'로 진화
산모가 병원 침대서 출생신고하면
AI가 몇분내 지원금 등 자동 안내
韓은 빅데이터 활용 낙제점
경직된 문화로 '부처 칸막이' 심화
조직 유연화·새 정부법 제정 절실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서울 AI 페스타 2025’에서 참가자들이 생성형 인공지능(AI) 기반 인간로봇상호작용(HRI)을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발트해 연안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에서는 출생신고를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다. 산모가 출산 직후 병원 침대에서 출생신고를 하면 몇 분 안에 의료보험 혜택과 육아 지원금 안내가 자동으로 도착한다. 우리나라처럼 남편이 직접 주민센터를 방문할 필요도, 복지 기관을 찾아갈 이유도 없다. 에스토니아 정부가 운영하는 전 국민 데이터 연계 플랫폼 ‘X로드’에 인공지능(AI) 기반 복지 행정 서비스가 실시간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필요한 공공서비스는 AI가 데이터 분석과 예측을 통해 사전에 제공하고 정부의 정책 설계에도 반영된다. 행정과 민원 상담은 AI 관료인 ‘뷰로크라트’가 수행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AI 기반의 행정 서비스를 구현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모든 부처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AI가 행정에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갖춘 에스토니아와 달리 우리나라는 1948년 제정된 정부조직법 틀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를 보유하고도 빅데이터 활용 능력은 상대적으로 뒤처지고 있는 이유다. 실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2023년 국가 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의 빅데이터 사용 및 활용 능력 수준은 평가 대상 63개 국가 중 31위에 머물렀다.

현행 정부조직법은 각 부처를 기능 중심의 위계적 구조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경직된 구조는 부처 간 칸막이 현상을 심화시키고 협업을 어렵게 만든다. AI와 데이터 기반의 정책 설계를 위한 유연 조직 개념 자체가 없다. 디지털 태스크포스(TF)나 실험 조직을 만들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임시 조직일 뿐이다. 현 정부조직법 체계에서는 데이터가 부처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고여 있게 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AI가 정책 주체로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정부조직법은 행정부의 정책을 사람만이 설계하고 판단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AI가 데이터를 아무리 잘 분석·예측하고 정책을 설계하더라도 그 판단은 공식적으로 채택될 수 없다. AI가 보조 도구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정부조직법을 AI 중심으로 과감하게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먼저 법안에 ‘유연 조직’ 개념을 반영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기능 중심의 조직에서 벗어나 특정 정책 과제를 중심으로 여러 부처와 민간 전문가가 협업할 수 있는 프로젝트형 조직을 상설화하는 것이 골자다. 이 조직에서는 AI가 단순한 보조 수단이 아닌 정책의 공동 파트너 역할을 하게 된다.

법을 개정해 AI 기반 정책 설계를 총괄 조정하는 전담 기구를 설치하는 방법도 있다. 정부 AI 업무 전반을 통할하는 전담 부총리를 두는 동시에 AI혁신처를 신설해 각 부처 간 데이터 흐름을 조정하고 디지털 자원과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조직은 AI 기반의 행정 혁신뿐 아니라 법·제도 개편 역시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실제 싱가포르는 국가 주도로 디지털 전담 조직을 정부 조직 내에 두고 기존 부처 간 경계를 허무는 유연한 구조를 도입해 성공을 거뒀다. 전략 수립은 국무총리실 산하 스마트네이션오피스(SNO)가 맡고 실행은 부처별로 민간 전문가 중심의 기술직인 ‘정부기술청(GTC)’이 수행한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8일 “AI 정부로 전환하려면 단순히 조직만 바꿀 것이 아니라 싱가포르처럼 민간과의 경계가 유연한 개방형 구조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수직적인 인력 구조도 수평적으로 재편돼야 한다는 지적 또한 나온다. AI 시대에는 고위직 관료의 행정 경험이나 노하우보다 AI를 활용해 양질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책 설계에 도움이 되는 답을 도출해내는 역량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기존의 군단형 정부 조직이 게릴라형 또는 1인 유닛 기반 조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얘기다. 김동욱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는 “AI 정부의 조직은 기존의 장관·실장·국장·과장·사무관으로 이어지는 위계적인 구조가 수평적으로 바뀌고, 하위직도 상위직 못지않은 정책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경제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4006 '경선' 발 뺀 한덕수‥'반탄' 일색 국민의힘 랭크뉴스 2025.04.15
44005 트럼프, 자동차 부품 관세 유예 시사…“회사들 시간 필요” 랭크뉴스 2025.04.15
44004 유승민 14→3%…'역선택 방지룰' 적용하니 지지율 요동쳤다 랭크뉴스 2025.04.15
44003 트럼프 또 오락가락…"안 봐준다"더니 하루 만에 "車업계 돕겠다" 랭크뉴스 2025.04.15
44002 국민의힘 해산은 왜 논의하지 않는가 [왜냐면] 랭크뉴스 2025.04.15
44001 구글, ‘트럼프 관세’ 등에 업고 韓 지도 데이터 요구하는데…“시장 잠식 우려”vs“세계 유일의 불허” 랭크뉴스 2025.04.15
44000 [속보] 최상목 "12조대 필수추경안 마련"…당초 발표보다 2조 증액 랭크뉴스 2025.04.15
43999 선배 가고 후배 오고…사외이사 ‘알박기’ 요지경 랭크뉴스 2025.04.15
43998 이준석 "월급쟁이 과잉과세 고리 끊을 것"... 근로소득세 개편 시사 랭크뉴스 2025.04.15
43997 ‘테슬라 매장 방화·머스크 비난 낙서’ 40대 기소…미 법무부 “형량 협상 없다” 랭크뉴스 2025.04.15
43996 트럼프 “자동차 회사들 시간 필요해”…관세 일시 유예 시사 랭크뉴스 2025.04.15
43995 이준석 "월급쟁이 과잉과세 고리 끊을 것"...근로소득세 개편 시사 랭크뉴스 2025.04.15
43994 미 재무장관 “한국과 내주 무역협상 예정···빠르게 진행될 것” 랭크뉴스 2025.04.15
43993 구글, ‘트럼프 관세’ 등에 업고 韓 지도 데이터 요구하는데…“시장 잠식 우려”vs“전 세계 유일의 불허” 랭크뉴스 2025.04.15
43992 "왜곡·조작됐다"‥헌재 판단도 모조리 '부정' 랭크뉴스 2025.04.15
43991 국회, 오늘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최상목 미국 국채 논란 다뤄질까 랭크뉴스 2025.04.15
43990 철 지난 장자승계, 법보다 앞설까…LG ‘2조 상속분쟁’ 판결 촉각 랭크뉴스 2025.04.15
43989 5개월 아기 뇌출혈에 온몸 멍 자국…학대 의심 부부 수사 랭크뉴스 2025.04.15
43988 "선거운동 해야하니 재판 빼달라"…대선 주자들 특권인가[현장에서] 랭크뉴스 2025.04.15
43987 [인터뷰] 홍준표 "정상적인 대선보다 쉬울 수도…이재명 잡을 사람은 나" 랭크뉴스 2025.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