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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리가켐바이오
[서울경제]

※한국의 바이오텍들은 자금과 인력 확보의 어려움 속에서도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성장 스토리를 써나가고 있습니다. <김정곤의 바이오 테크트리>는 K바이오텍의 창업과 성장 과정, 기술과 비전 등을 종합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지면과 온라인을 연계해 풍부한 투자 정보를 전달해드립니다.


“한 사람의 꿈은 꿈에 불과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가 2006년 5월 창업하면서 만든 회사의 모토다. 글로벌 신약 개발은 10~15년 동안 1조 원 이상의 돈이 들어가는 어려운 목표지만 임직원 모두가 같은 꿈을 꾸면 이뤄낼 수 있다는 비장한 각오를 담았다. 이 모토는 지금도 회사 홈페이지와 모든 내외부 발표 자료에 항상 사용되고 있다.

리가켐바이오는 한마디로 신약에 미친 사람들이 모인 바이오텍이다. 대전 본사 1층 로비에 ‘오직 신약만이 살 길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세계지도 배경의 시계가 걸려 있을 정도다. 김용주 대표부터 박세진 사장(COO 겸 CFO), 정철웅 연구소장 등 리가켐바이오 임직원 180여명은 신약개발이라는 한가지 목표를 위해 독하게 일하고 있다.

김용주(왼쪽) 리가켐바이오 대표와 박세진 사장(COO 겸 CFO)이 8일 대전 둔곡동 본사 1층 조형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리가켐바이오의 창업 정신인 '오직 신약개발만이 살 길이다’라는 문구가 보인다. 사진제공=리가켐바이오


리가켐바이오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항체약물접합체(ADC) ‘빅(Big) 바이오텍’이 될 가능성이 높은 업체로 꼽힌다. 빅바이오텍은 지속적인 연구개발(R&D) 투자와 혁신 기술로 신약을 개발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성과를 내는 업체다.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 미국 길리어드 사이언스, 리제네론, 버텍스 등이 대표적인 빅바이오텍이다.

리가켐바이오가 ADC 빅바이오텍이라는 빅픽처를 그리는 자신감은 ADC에 특화된 독보적인 플랫폼인 ‘콘쥬올(ConjuALL)’과 이를 기반으로 한 꾸준한 ADC 파이프라인 기술 이전 실적이다. 리가켐바이오는 2016년 이후 거의 매년 ADC 기술 이전 계약을 하는 성과를 올렸는데 계약 규모만 9조 6,500억 원에 달한다.

리가켐바이오가 처음부터 ADC를 주력사업으로 했던 것은 아니다. 설립 초기 합성신약을 개발하던 중 ADC 분야의 성장 가능성에 눈을 뜨고 핵심 사업으로 빠르게 방향을 전환했다. 지금은 차세대 ADC 플랫폼인 콘쥬올은 물론이고 ADC 파이프라인도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40여개(연구단계 20개 포함)를 보유한 1위 업체가 됐다.

리가켐바이오는 2030년까지 시가총액 10~20조 원, 파이프라인 5개를 상용화해 글로벌 톱 ADC업체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상태다. 경영 목표는 2021년 발표한 ‘비전 2030’에 담겨 있는데 오리온이 지분 25%를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된 이후 한층 탄력을 받고 있다.

기술 이전 및 유상증자로 마련한 자금과 오리온에서 유입된 4698억원 등 총 7000억 원의 실탄으로 비전 2020을 조기 달성하겠다는 전략이다. 독보적인 기술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체계적인 경영 전략으로 ADC 명가(名家)를 향해 한발 한발 내딛고 있는 리가켐바이오를 살펴본다.



LG의 신약개발 DNA…김용주 대표는 R&D, 박세진 사장은 살림 맡는 투톱 체제로 성장



리가켐바이오의 뿌리는 LG화학(옛 LG생명과학)이다. 1980년부터 15년간 연구소장으로 럭키중앙연구소(LG화학기술연구원)를 이끌었던 고(故) 최남석 박사의 신약개발 DNA가 그대로 이식된 바이오텍이 리가켐바이오다.

리가켐바이오는 김용주 대표와 박세진 사장(COO 겸 CFO) 등 LG화학에서 근무하던 핵심 인력 7명이 2006년 창업했다. LG화학이 2004년 신약개발을 중단키로 결정하자 연구소장이던 김 대표가 박 사장에게 바이오텍 창업을 제안했고 리가켐바이오의 시작이 됐다.

김 대표는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유기화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LG화학 기술연구원에서 23년간 근무하며 신약연구 그룹장, 미국 현지연구소 법인장, 신약연구소장을 역임한 정통 R&D맨이다. 그는 국내 최초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신약인 ‘펙티브(Factive)’를 포함해 15개 이상의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 단계에 진입시킨 경험을 보유했다.

김 대표는 지금도 매일 집무실에서 나홀로 연구 논문을 읽는 등 신약 개발 아이디어를 구상하며 하루를 보낸다. 김 대표는 “연구가 재미있다. 누가 더 집중해서 뭔가를 발견하느냐가 차이를 만든다. 바이오텍이 뭘 갖고 먹고 살겠나”며 “사이언스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평생 사이언스와 함께 살고 있다”고 밝혔다.

김대표는 별다른 취미도 없다. 유일한 낙이 산책이다. 그는 평일이든 주말이든 산책하면서도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궁금증이 생기면 수시로 연구개발 소장 등 직원들에게 전화를 건다. 옛 LG화학 동료들인 최호일 펩트론 대표, 박순재 알테오젠 대표는 한달에 1~2회는 만나 신약 개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사이다.

김용주 리가켐바이오 대표가 8일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 대표 뒤에 있는 책장에 연구 논문 출력본들이 쌓여 있다. 사진제공=리가켐바이오


박 사장은 LG화학에서 인사팀장, 전략기획팀장, OLED 사업팀장 등 R&D 관리업무를 20년간 맡은 경영 전문가다. 리가켐바이오 공동 창업자 겸 CFO로 초기 창업 과정과 IPO를 주도했다.

또 다른 창업 멤버로는 최고기술책임자(CTO)로 ADC 플랫폼 개발을 이끌었던 박태교 인투셀 대표가 있다.

리가켐바이오가 창업한 2006년 5월은 황우석 사태가 터진 이후라 국내 바이오 투자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리가켐바이오는 2007년 3월 첫 투자 유치에 성공하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다.

리가켐바이오의 강점은 김 대표 등 창업 멤버들이 LG화학에서 20년 이상 쌓은 글로벌 R&D 경험과 선진 시스템이다. 설립 초기에는 자금, 장비, 인력 등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실미도’라는 별명으로 불릴만큼 R&D에 매진하는 전투력으로 회사의 기틀을 마련했다.

리가켐바이오는 1995년 미국 워싱턴포스트지가 지난 1천년 간 가장 위대한 인물로 선정한 칭기스칸의 정신과 실행력을 회사 경영전략에 접목했다. 박 사장은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고비사막을 넘어 유라시아 대륙으로 꿈을 찾아 나아가자는 칭기스칸의 주장은 문자도 없었던 몽고 부족 중 어느 누구도 가보지 않았던 목표였다”며 “세계 정복이라는 비전, 기동력과 정보를 중시하는 전투 전략, 유연한 조직 운용, 능력있는 인재 등용 및 성과 보상을 회사에 그대로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핵심 기술은 ADC 플랫폼 ‘콘쥬올’
지속적인 실적 견인하는 효자



리가켐바이오의 핵심 기술은 ADC 플랫폼인 ‘콘쥬올(ConjuALL)’이다. ADC는 특정 항체에 화학 약물인 페이로드(payload)를 링커(linker)라는 연결고리로 접합해 암세포 같은 표적만 정밀하게 공격하는 차세대 항암 기술이다. 콘쥬올은 링커와 페이로드를 결합하는 플랫폼이다. 링커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높여 페이로드의 독성을 낮추고 암세포에서 높은 농도로 활성화되도록 설계 됐다. ADC의 효과는 높이고 부작용은 최소한다. 콘쥬올은 기존 ADC 기술의 한계를 극복한 차세대 ADC 플랫폼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콘쥬올은 페이로드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동일한 타겟에 여러 페이로드를 결합해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동시에 개발하는 다중 개발 가능성도 있다. 리가켐바이오가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 받는 주요 요인이다. 콘쥬올의 가치는 이미 글로벌 제약사들과의 기술이전 계약을 통해 인정받고 있다. 콘쥬올은 시장에서 충분히 검증된 ADC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지속적인 수익 창출을 기대할 수 있는 효자가 될 전망이다.



주요 파이프라인은…상용화 속도 가장 빠른 LCB14, 기업가치 퀀텀점프 기대되는 LCB84





리가켐바이오는 다수의 ADC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가장 상용화가 빠를 것으로 예상되는 파이프라인은 고형암 치료제인 ‘LCB14’다. 포순제약과 얀센에 기술 이전한 파이프라인인데 경쟁약인 ‘엔허투’를 뛰어 넘는 약효를 보여 글로벌 빅파마에 기술 이전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리가켐바이오가 네이처에 공개한 LCB14의 임상 1상 결과에 따르면 아스트라제네카와 다이이찌산쿄가 공동 개발한 ‘엔허투’와 비교해 안전성 측면에서 우수한 모습을 보였다.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에서 LCB14는 투약 후 3등급 이상 부작용이 발생한 환자비율이 34.0%로 나타났다. 엔허투가 임상 1상에서 기록한 3등급 이상 부작용 발생비율 57.1%의 절반 수준이다.

LCB14는 치료 효과 측면에서도 엔허투와 비교해 뒤떨어지지 않았다. LCB14를 투여한 후 종양이 일정 부분 이상 사라진 환자비율(객관적반응률)은 53.7%로 엔허투의 60.9%를 소폭 밑돌았다. 치료 후 암이 진행되지 않고 환자가 생존한 기간(무진행생존기간) 등을 나타낸 지표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삼중음성유방암, 비소세포폐암 등 다양한 고형암을 치료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인 ‘LCB84’도 주목된다. 리가켐바이오는 2023년 12월 얀센에 LCB84를 역대 최대 규모인 17억달러(2조2600억원)에 기술 이전했다. 계약 규모와 선급금 모두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기술 이전 중 최대 규모다.

LCB84는 향후 리가켐바이오의 기업가치를 퀀텀 점프 시켜줄 수 있는 대표적인 파이프라인으로 평가된다. 글로벌 빅파마인 얀센이 기술 이전을 받아간 만큼 앞으로 나올 임상 결과에 따라 고형암 분야에서 게임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일본 오노약품 공업에 기술 이전한 ‘LCB97’는 전임상 단계 파이프라인을 ADC 플랫폼과 함께 파는 패키지 딜로 기술의 가치를 높여 화제를 모았다. 오노약품과의 계약은 약 9,435억 원 규모로 이전의 전임상 단계 기술이전 계약(2800억~3000억원대)에 비해 규모가 커졌다.



오리온과 전략적 제휴로 충분한 R&D 실탄 마련…비전 2030 목표 가속화





비전 2030은 2030년까지 글로벌 ADC 선두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리가켐바이오의 중장기 사업 전략이다. 리가켐바이오는 비전2030을 통해 2030년까지 파이프라인 5개를 상업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리가켐바이오는 기술 이전이 한창이던 2021년 비전2030을 수립해 5년 이내 독자 임상 1상 파이프라인 5개를 확보한다는 목표를 밝혔다. 박 사장은 “1년에 기술 이전을 3~4건씩 하면서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 다음 단계를 대비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며 “이렇게 좋은 기술을 왜 (조기 기술 이전해) 남한테 싸게 넘기느냐. 독자적으로 끝까지 개발하는 방향으로 사업 전략을 재검토해보자는 게 비전2030의 시작”이라고 배경을 밝혔다.

리가켐바이오는 2년 뒤인 2023년 9월 비전2030을 조기 달성 전략으로 재수정한다. 회사를 둘러싼 글로벌 경쟁 환경에 공격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2023년은 글로벌 빅파마들의 대규모 ADC 기술 도입과 초대형 인수합병(M&A)이 동시에 일어나며 바이오 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시기다.

리가켐바이오는 칭기스칸의 정신에서 나온 ‘성을 쌓는 자는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정신을 되새겼다. 리가켐바이오는 신약 개발 속도를 공격적으로 높이기 위해 대주주 지분을 매각하는 결단을 내린다. 오리온은 2024년 3월 리가켐바이오 지분 25.73%를 인수하며 대주주로 올라섰다. 오리온의 투자 이후 비전 2030은 더욱 공격적으로 수정됐다. 리가켐바이오는 매년 3~5개의 파이프라인에 대해 IND 신청을 진행할 예정이다. 2030년까지 5개의 ADC 파이프라인을 상업화 단계로 진입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HER2 ADC, 항생제, 면역치료제 등을 포함하고 있다.

기술 이전 전략도 변경됐다. 현재의 초기 임상 단계 기술 이전에서 임상 단계를 고도화시키는 독자 개발로 가치를 높이는 전략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이와 함께 파이프라인과 플랫폼을 결합한 패키지 딜로 기술 이전 전략을 확장하고 있다. 리가켐바이오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체 개발한 신약을 글로벌 시장에서 직접 판매하는 빅 바이오텍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박 사장은 “대한민국 바이오 업계에 새로운 변화의 모멘텀이 생기려면 돈을 버는 바이오텍이 나와야 한다”며 “2~3년 안에 안정적인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배당도 할 수 있는 시기가 올 것으로 본다. 실적으로 보여드리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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