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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우리는 왜 싸웠나
尹 정치 2년 11개월의 기록
검찰, 이재명 향해 7차례 소환·6차례 기소
특검만 11차례 거부권… 검사 탄핵 시도 14번
0.73%p 차로 대권 갈린 '승자독식' 구조
'공격수' 정치에 의회의 물밑 대화도 소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4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재명(왼쪽)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 인사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국회는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했어야 한다. 피청구인 역시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했어야 하지만, 국회를 배제의 대상으로 삼았다."
헌법재판소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요지 일부

헌법재판소는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리며 죽기 살기로 싸우는 한국 정치권의 극한 대치를 꾸짖었다. 야당을 '대화의 상대'가 아닌 '제압의 대상'으로만 인식한 끝에 불법 계엄까지 저지르며 국민을 배신한 윤 전 대통령의 명백한 잘못을 짚는 것과 동시에 더불어민주당의 일방통행식 국회 운영에 대한 따끔한 지적도 빼먹지 않은 것이다. 헌법재판관들은 "일방의 책임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고,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해소돼야 할 정치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헌정 사상 두번째 대통령 탄핵의 비극은 정치가 사라진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를 확인시켜줬다는 평가다.

'정치 멸종' 시대... 25번 거부권·30번 탄핵 시도



2022년 5월 윤 전 대통령 취임 이후 지난 3년여간 한국에서 정치는 실종되다 못해, 멸종했다. 여권과 야당은 공히 서로를 물어 뜯는 데만 골몰했고, 대화와 타협은 점차 설자리를 잃어갔다. 커져가는 불신 속에 악다구니만 남은 정치는 사실상의 전쟁이었다.

출발부터 정치는 없었다. 윤 전 대통령은 취임사부터 민주당과 진보 진영을 민주주의 위기를 불러온 '반지성주의' 세력으로 규정했다. 정권 출범과 동시에 빼든 칼은 '문재인 정부·야당 지우기'로 향했다. 전임 정부가 추진한 국가 정책을 둘러싼 표적 감사와 문재인 전 대통령 가족 수사가 본격화됐고, 지난 대선 맞붙었던 야당 후보를 향한 검찰수사도 휘몰아쳤다. 검찰은 이재명 대표를 향해 '6번 기소, 7번의 소환 조사'를 진행했다. 야당은 '정치보복' '야당탄압'이라 반발하며 맞섰다.

윤석열 정부 거부권


'여소야대' 정국을 대화로 극복 못 한 여야는 거부권과 줄탄핵이라는 무한 대치로 치달았다. 윤석열정부는 행정 권력은 장악했지만, 입법 권력에선 압도적으로 야당에 밀렸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도 대패하며 국정 동력을 확보할 기회를 날려 버렸다. 국회에서 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법안을 밀어붙이면 대통령은 거부권(재의요구권)으로 번번이 맞섰다. 국회 문턱을 넘은 법안에 대해 윤 전 대통령이 탄핵 소추 전 행사한 거부권은 총 25회에 달한다. 윤 전 대통령은 채상병특검(3번)과 김건희특검(3번) 등 본인과 김건희 여사를 겨냥한 특검법에 대해서도 총 7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낸 한덕수 국무총리와 최상목 부총리가 행사한 거부권까지 합치면 41회에 달한다. 최 부총리가 거부권을 행사한 9건의 법률안 중에서도 4건이 특검법이다.

거부권 행사로 돌아온 법안은 재표결에서 폐기되는 일이 반복됐고, 여야의 소모적 기싸움에 이견이 크지 않은 민생 법안이 극단적 대립의 제물이 됐다. 지난 대선 당시 여야 공통공약으로 내걸었던 간호법은 여야 거부권 대치에 2년 가까이 표류하다 의정갈등 이슈로 국민적 공분이 커지자 떠밀리듯 처리됐다.

시각물_탄핵안건


대통령의 거부권 무기에 맞서 야당은 30번의 탄핵 시도로 응징했다. 야당은 정권의 책임을 따져 묻는 차원에서 고위공직자에 대한 탄핵 추진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실제 의결된 13건 탄핵안 중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된 것은 윤 전 대통령 탄핵안뿐, 나머지 9건은 모두 기각됐다. 야권의 힘자랑으로 국정이 마비됐다고 여권이 반발한 배경이다.

박성준(왼쪽)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의 공산주의자 발언과 관련해 박형수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와 설전을 벌이고 있다. 고영권 기자


'전부 아니면 전무' 승자독식이 낳은 '파이터 정치'



이 같은 극단 정치는 한 표라도 더 받으면 전부를 갖고, 한 표라도 지면 전부를 잃는 승자독식 구조에서 오는 폐해라는 지적이다. 지난 대선에서 윤 전 대통령과 이재명 당시 민주당 후보와의 격차는 단 0.73%포인트(24만7,077표). 민심은 팽팽했지만, 이긴 쪽은 진 쪽을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총선 이후 국회 개원식과 예산안 시정연설에 연이어 불참하며 국회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대통령이 시정연설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2013년 이후 11년 만에 처음이었다. 야당 역시 대통령을 밀어붙이는 데만 급급했다. 윤 전 대통령과 이 대표가 영수회담을 한 것은 대통령 취임 후 1년 11개월 만인 지난해 4월이었다.

대선이 끝나도 이긴 쪽은 권력을 유지하려, 진 쪽은 권력을 빼앗으려 양쪽 공히 '파이터'를 정치지도자로 내세워 싸움에만 골몰하는 형국이다. 그동안 여의도 사랑방 역할을 해온 국회 목욕탕에서조차 양당 의원들이 서로가 선호하는 뉴스 채널을 두고 공개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은 정치가 사라진 여의도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네편 내편 진영논리만 가득한 유튜브와 팬덤 정치도 극단 대치를 부추기는 연료가 됐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상대방을 '악의 무리'로 규정한 채 고소, 고발, 탄핵 대상으로 삼는 현실에서 여야를 넘어 서로 만나 대화하는 의회정치가 설 자리를 잃었다"며 "대한민국이 이념, 지역, 세대, 성별로 갈라져 있는 상황에서 정치 지도자들마저 극단적인 대결만 일삼고 있다. '제로섬 정치'의 비극을 끝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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