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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관들 삶 재조명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왼쪽)이 지난 4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결정을 선고한 뒤 김형두 재판관 등을 두드리며 대심판정을 나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저는 1965년 경남 하동군에서 가난한 농부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낡은 교복과 교과서일망정 물려받을 친척이 있어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고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독지가인 김장하 선생을 만나 대학교 4학년까지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2019년 4월9일 국회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장. 마이크 앞에 선 문형배 당시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처음 입을 열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그는 김장하 선생으로부터 받은 바를 사회에 갚기 위해 전력을 다했고, 헌법재판관이 되더라도 그 마음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지난 4일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 김형두 헌법재판관 등 파면을 결정한 재판관들의 개인사도 주목받고 있다.

“사회의 것을 줬으니, 나 말고 사회에 갚거라”

문 권한대행은 청문회에서 “김장하 선생 덕분에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사법 시험에도 합격할 수 있었다”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선생은 제게 자유에 기초하여 부를 쌓고 평등을 추구해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며 박애로 공동체를 튼튼히 연결하는 것이 가능한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몸소 깨우쳐줬다”며 “제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인사하러 간 자리에서 선생은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닌 이 사회에 갚아라’ 하였고, 그 말씀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문 권한대행은 “법관의 길을 걸어온 지난 27년 동안 저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한민국 헌법의 숭고한 의지가 우리 사회에서 올바로 관철되는 걸 찾는 데 전력을 다했다”며 “그것만이 선생의 가르침대로 제가 우리 사회에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길이라 여기며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재판관으로 임명되더라도 초심은 언제나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문화방송(MBC) 경남이 2023년 방영한 2부작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엠비시 경남 제공

김장하(81) 선생은 경남 진주에서 ‘남성당 한약방’을 운영하며 39살이던 1983년 진주에 세운 명신고등학교를 1991년 국가에 헌납했고, 100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그중 한 명이 문 권한대행이었다. 선생의 도움으로 많은 학생이 공부할 수 있었고,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쉼터가 세워졌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제작에 속도를 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늘 낮은 자리를 자처했고, 이는 2023년 ‘어른 김장하’라는 제목의 문화방송(MBC)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 화제가 됐다.

평균의 삶을 살겠다는 판사의 다짐

문 권한대행은 실제 김장하 선생의 뜻을 삶에서 실천해 온 것으로 보인다. 청문회 당시 그의 재산은 6억7545만원으로 신고됐고, “너무 적은 거 아니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문 권한대행은 “제가 결혼할 때 다짐한 게 있다.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최근 통계에서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재산이 한 3억원 남짓 되는 거로 아는데 제 재산은 (아버지 재산을 제외하면) 4억원이 조금 못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평균 재산을 좀 넘긴 거 같아 반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헌법재판관 퇴임 뒤 계획에 대해 당시 “영리 목적의 변호사 개업 신고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문 권한대행은 오는 18일 퇴임한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김형두 헌법재판관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위해 입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자폐 둘째아이가 깊게 빚은 내 삶


김형두 재판관의 가족사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공개됐다. 그는 2023년 4월1일 마이크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2023년 둘째 아들과 등산하며 자폐 아이를 키워온 과정에 대해 인터뷰 중인 김형두 헌법재판관(왼쪽). ‘어른 김장하’ 다큐멘터리에서 김장하 선생에 대해 얘기하다 목이 멘 문형배 재판관. 하이머스타드 유튜브 갈무리, 문화방송(MBC) 경남 유튜브 ‘엠키타카’ 갈무리

저는 1991년 결혼해 아들 둘을 두었는데 둘째가 자폐성 장애 1급 진단을 받은 자폐아입니다. 유난히도 잘 생기고 순한 아이였던 둘째가 자폐 진단을 받고 나서 우리 가족의 생활은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자고 싶을 때 마음대로 잘 수 없고, 쉬고 싶을 때 편히 쉴 수가 없으며, 둘째랑 같이 외출을 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특별한 시선을 받아야 하는 고단한 처지가 됐습니다. 제 처는 천직으로 생각하던 교사직을 포기하고 둘째 뒷바라지에 전념해야 했고, 첫째는 둘째와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자폐아의 형이라는 시선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지금도 제 처와 저의 몸에는 둘째로부터 꼬집히거나 물려서 생긴 상처, 그리고 흉터가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최선을 다해 사랑으로 둘째를 돌봐왔으며 우리 둘째는 가족들로부터 다른 누구보다도 더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 종일 둘째를 돌봐야 하는 힘겹고 고단한 생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이러한 힘겨운 삶의 경험들은 저에게 세상에는 나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고 주변에 우리 가족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며 내 처지가 좀 어렵더라도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가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이 저로 하여금 세상을 좀 더 폭넓고 깊이 있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고, 법관으로서의 자세나 시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김형두 헌법재판관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기일인 지난 4일 헌법재판소로 출근할 때의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김 재판관은 그러면서 “헌법재판소는 헌법 가치를 수호하고 진정한 사회 통합을 이뤄내기 위한 중추적 역할을 요청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만약 제게 헌법재판관으로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헌법의 이념이 어떠한 형태로 구체화되어야 하는지를 항상 고민하겠다”면서 “이를 통해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수자,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실질적 평등의 원칙을 실현하는 한편 헌법 질서가 존중되는 사회를 이뤄나가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 재판관은 실제 ‘혼신의 힘’을 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해 12월25일 부친상을 당했음에도 정상 출근해 이틀 뒤 열릴 윤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첫 변론 준비 기일을 준비했다.

그는 20년 넘게 둘째 아들과 매주 산에 오르고 있으며, 한국자폐인사랑협회가 자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진행하는 달리기 대회나 세계자폐인의 날 기념식 등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2023년 4월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유튜브 채널 ‘하이머스타드’에서 올린, 김 재판관이 아들과 함께 등산하며 진행한 인터뷰 영상엔 누리꾼들의 응원 댓글이 계속 달리고 있다. 댓글에는 “이번 계엄 사태를 지나면서 훌륭한 분들을 많이 알게 됐습니다. 꿋꿋이 버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분들이 우리나라를 지켜내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돌아가는 것 같다”, “나의 평범함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고, 평범하지 않은 일상이 누구에게나 언제나 일어날 수 있음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응원합니다”, “이런 삶이 법정에서도 드러나는 거네요” 등 감사를 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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