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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
우리 사회 가장 큰 문제는 해결 능력이 바닥났다는 것
국민 위해 일하는 새 대통령을 뽑지 못하면 진짜 위기
미국과 이익 접촉면 확대해야 ‘트럼프 스톰’ 극복 가능
‘포용적 성장’ 위한 노동 개혁·규제 혁파 속도 높여야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7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제 복합위기 극복을 위해 우리가 가진 에너지를 결집해야 할 때”라고 말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서울경제]

우리 사회는 계엄·탄핵 정국과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등을 거치며 ‘심리적 내전’ 상태에 빠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갈등이 깊다. 경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국에 대한 25% 상호관세 부과 발표로 최후의 보루인 수출마저 위기에 처했다.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7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의 이견과 갈등을 줄여야 할 정치가 단견적인 정치 셈법으로 되레 분열을 키우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트럼프발(發) 글로벌 관세 전쟁과 국내 경제의 장기 저성장 고착화 등 복합위기 극복을 위해 우리가 가진 에너지를 결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우리 경제 정책의 조타수 역할을 맡았던 그는 “미국과의 이익 접촉면을 넓히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관세 전쟁으로 물가 상승, 실업 문제 등이 야기되면서 국면이 변화할 것이므로 긴 호흡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 큰 충돌은 없었으나 우리 사회가 ‘심리적 내전’ 상태에 있다는 우려가 있다.

△헌재 결정 이후 우리 사회는 상당 기간 정치적 갈등 격화 등 후폭풍을 겪게 될 것이다. 지금은 국가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 능력이 과거보다 크게 떨어졌다는 점이 우려된다. 그런 측면에서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트럼프발 글로벌 관세 전쟁과 국내 경제의 장기 저성장 고착화, 양극화 확대 등 중첩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가진 에너지를 결집해야 할 때다.

-현재의 복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해야 할 역할은.

△정치권에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본질에 충실한 정치가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이다. 타인을 존중하는 자세도 보여야 한다. 정치적 목적에만 몰두하기보다 국가 경제의 미래와 절차적 정당성을 중시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국민의 이견과 갈등을 줄여야 할 정치가 단견적인 정치 셈법으로 대립을 증폭시키는 사례들이 많아졌고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 능력이 심각한 수준으로 약해졌다.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면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상황에서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 국가 지배 구조의 개편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6월 3일 조기 대선이 치러질 듯하다. 대선 이후 우리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포용적 성장 외에는 답이 없다. 혁신과 포용이 어우러져 함께 가야 우리 경제의 생존이 가능하다. 지금은 혁신도 포용도 다 안 되고 있어서 문제다. 혁신에 제약이 많으며 분배 차원의 포용도 갈 길이 먼 상황에서 정치·사회적 포용 또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치·사회적 갈등이 경제 영역까지 침범해 경제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모두 숨 막히게 하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 오승현 기자


-올해 한국 경제의 성장 전망치가 크게 낮아지고 있는데.

△최근 경기 부진과 경제성장률 전망치 하락은 정치적 불확실성, 통상 환경 변화 등 대내외 여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 탓이 크다. 인구구조 변화로 노동·자본 등 요소 투입이 부진한 데다 생산성마저 떨어지고 있다. 일시적 경기 부진은 거시정책으로 대응하면 되지만 구조 개혁이 수반되지 않으면 저성장 추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상품·서비스 시장 규제와 노동시장 관행은 매우 후진적이다. 과감한 규제 개혁과 불합리한 기득권 혁파,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 제고가 긴요하다.

-다시 성장하는 경제를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경제 혁신 의지를 살려내야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기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한편 뒤처지는 계층에 대한 배려를 강화해야 한다. 지금은 후진적인 노사 관계, 정부 규제, 열악한 투자 환경 때문에 기업들이 국내 투자에 선뜻 나서기 어렵다. 제조업 분야 국내 투자가 급감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외국인 투자 잔액은 OECD 국가 중 꼴찌 수준이다. 투자 여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투자의 해외 유출은 더 많아질 것이다. 구조 개혁이 필요한 이유다.

-이번 대선에서 구조 개혁을 끌어낼 리더십의 출현이 가능할까.

△국가의 주인인 국민을 위해 일하는 리더십이 나오기를 바란다. 그러잖으면 나라가 더 큰 위기에 빠질 수 있다. 포용적 성장을 성공시키려면 혁신의 물꼬를 틀 수 있도록 구조 개혁을 본격화하는 가운데 재정 기능을 통해 사회안전망을 더 갖춰야 한다. 대선 과정에서 이러한 비전과 전략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추진할 리더십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25%의 상호관세 부과를 발표했는데 우리의 대응 방안은.

△미국과 이익의 접촉면을 넓히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정치 상황이 안타깝지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정부와 민간이 지혜를 모아 함께 대응해야 한다. 관세 전쟁으로 물가 상승, 공급망 붕괴, 글로벌 투자 위축과 실업 등이 야기될 것이므로 어떤 식으로든 국면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상황을 지켜보고 긴 호흡으로 대응해야 한다.

-우리 경제가 직면한 최대 문제는 무엇인가.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등 관세 갈등 격화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지만 구조적인 현안들이 많다. 하지만 문제의 수준이 과거보다 특별히 더 어렵다고 보지는 않는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충격의 정도가 컸지만 우리가 가진 역량으로 풀어나갈 수 있었다. 반면 지금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대응 능력이 확 떨어져 있다. 지금 우리 경제가 직면한 근원적인 문제는 문제 그 자체가 아니라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 오승현 기자


-어떤 측면에서 문제 해결 능력이 없다는 것인가.

△브랑코 밀라노비치 뉴욕시립대 대학원 석좌교수가 코끼리 곡선을 만들었다. 이 그래프는 세계화가 급진전된 1988년부터 20여 년간 세계소득 증가율을 소득분위별로 집계해 표시한 것이다. 세계화와 기술 혁신의 결과 중국 등 신흥국과 고소득 계층에게 유리해졌고 선진국의 중산층 근로자는 나빠졌음을 보여줬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한 원인 중 하나로 러스트벨트 등 미국 제조업의 몰락과 피해 근로자의 표심을 거론할 수 있다. 우리도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치가 다양한 이견을 절충하고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데 갈등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 정치의 문제 해결 능력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소선거구제 개혁, 입법권 합리화 등 국가 지배 구조의 개혁 방안을 다양하게 논의해볼 때가 됐다. 지금의 국가 권력 체계나 리더십 구조로 우리의 사회·경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미국의 경우 길거리에서 공권력이 과잉 대응을 한다는 지적이 종종 나오지만 국가의 질서 유지나 공권력의 가치를 존중한다. 우리 상황은 어떤가. 개헌을 통한 정치 구조 변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뤘던 대한민국의 성공 방정식은 무엇이었나.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우선 1948년 좌우 대립이 심한 상황에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와 시장경제 체제를 채택했다. 두 번째로 거시경제의 안정을 유지하는 동시에 혁신과 경쟁을 지향한 정책, 수출과 수입에 모두 열려 있는 대외 지향적 정책으로 기업들의 경제 의지를 최대한 발휘하도록 한 것이 중요한 요인이다. 세 번째로 인적 자원을 키워내는 교육 시스템과 우수한 근로 문화, 성과 중심의 보상 체계가 있었다. 네 번째로는 사유재산권 보장과 계약 이행, 사법부의 독립성, 상대적으로 양호했던 소득분배 등 성장 친화적 제도를 거론할 수 있다.

-지금도 그 같은 성공 방정식이 작동하고 있다고 보는가.

△안타깝게도 이러한 성공 요소들이 과거와 달라졌다. 경제 체제 근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가운데 투자와 서비스 시장의 규제와 기득권 보호 등 정책과 제도가 혁신과 경쟁 친화적이지 않다. 그나마 재정이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건전하지만 연금을 포함해 재정 위험도 크다. 변화의 분수령을 이미 지나고 있어서 근본적 변화와 대응이 시급하다.

-한국 금융의 현주소와 나아갈 길은.

△한국의 금융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금융발전지수 평가에서 세계 6위를 차지할 정도로 선진화됐다. 그러나 유효 경쟁이 부족하며 위험을 중개해야 할 금융회사가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하다는 점 등 고쳐야 할 부분도 많다. 금융이 국가 경제의 성장과 혁신을 촉진하면서도 경제 안정을 저해하지 않도록 변화해야 한다. ‘빅뱅’식의 규제 철폐처럼 단숨에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급증은 금융 불안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혁신을 통한 점진적 변화가 바람직하다.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 오승현 기자


◆He is…

1960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서울 인창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 27회에 합격해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과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를 거쳐 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일했다. 이어 기업은행장을 지냈으며 최근에는 그간의 경륜과 지식을 녹여 ‘대한민국 금융의 길을 묻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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